[TF초점] '수구선수 몰카' 일본인, 한국법으로 처벌 가능
입력: 2019.07.17 05:00 / 수정: 2019.07.17 09:18
12일 오후 제18회 2019 광주FINA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막식이 화려하게 열리고 있다. /광주=이동률 기자
12일 오후 '제18회 2019 광주FINA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막식이 화려하게 열리고 있다. /광주=이동률 기자

'속지주의'로 처벌 가능…불법촬영 혐의 입증이 관건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한 일본인 남성이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수구선수를 몰래 촬영하다가 적발됐다. 일본인 관광객 A(37)씨는 수구경기장에서 연습 중인 뉴질랜드 수구선수들의 하반신을 촬영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사건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외국인인 상황에서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처벌 대상이라면 처벌 수위는 어느 정도일지 관심이 쏠린다. 결론은 한국 형사법 체계상 국내에서 발생한 범죄라면 사건 당사자 국적과 관계없이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광주광산경찰서가 15일 밝힌 바에 따르면, 14일 오전 11시경 A씨는 대회가 열리는 수구경기장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 수구선수들의 특정 신체부위, 특히 하반신을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혐의로 적발됐다. 자녀의 연습 장면을 지켜보던 피해자의 어머니가 A씨의 수상한 행동을 발견하고 경기장 내 보안요원에게 알렸고, 대회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A씨의 디지털 카메라 SD카드와 휴대전화 등을 현장에서 압수하고 관할 서까지 임의동행했다. A씨는 이날 오전 8시께 일본으로 출국하려다 법무부의 긴급출국정지로 돌아가지 못했다.

A씨의 범행은 현행법상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에 해당해 최대 징역 5년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가능하다. 일본인인 A씨는 이러한 국내 법 접촉 대상일까. 법리적으로 보면 정답은 '그렇다'다. 성범죄와 같은 형법의 적용 범위는 크게 속인주의와 속지주의로 나뉜다. 속인주의는 범죄자의 국적을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고, 속지주의는 범행 영역을 기준으로 적용하는 원칙이다. 한국 형사법은 후자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광주시 수구경기장에서 범행을 저지른 A씨는 혐의만 확실하다면 한국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불법촬영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A씨가 성적 목적을 가지고 은밀한 부위를 촬영했다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 A씨는 1차 피의자 신문조사 당시 "카메라 클로즈업 기능을 사용하다 모르고 선수들의 하반신을 찍게 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따르면 불법촬영의 기준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타인의 신체를 촬영한 것이다. 장윤미 법무법인 윈앤윈 변호사는 "판례에 따르면 같은 여성이 다른 여성의 신체를 촬영했더라도 수치심을 유발할 부위를 촬영하면 유죄 선고가 나온다"며 "A씨가 단순히 운동 장면을 찍은 게 아닌 성적 욕망을 일으킬 신체 부위를 촬영했다는 점이 명확해야 한다"고 했다.

관할서는 13개 단락으로 구성된 10여 분 분량의 불법촬영 영상물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15일 언론 브리핑을 열어 "하반신 특정부위를 확대해 촬영한 10여 분 영상물을 확보했다"며 "민망한 장면이 다수 포함돼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디지털포렌식 조사를 통해 추가로 촬영한 영상물과 유포 여부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만약 A씨가 불법 촬영물을 타인에게 전달하거나 공유했다면 혐의가 무거워진다. 불법 촬영물 유포에 영리목적이 발견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불특정 다수로 특정된 피해자의 신원이 확실해지고, 그 수가 늘어날 경우 처벌 수위가 높아진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불법촬영 영상물이) 누가 봐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확실시 되면 피해자를 특정해야 한다. 피해자 수가 늘어날수록 형량이 높아진다"고 했다. A씨의 혐의는 피해자가 처벌 의사가 없을 경우 수사를 중단하는 친고죄나 반의사 불벌죄에 해당하지 않아 불법촬영 의도만 확실하면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입건될 수 있다. 불법촬영 등 성범죄에 대한 반의사 불벌죄는 가해자의 합의 압박 등 부작용이 발생해 지난 2013년 6월 폐지됐다.

범행 장소가 관람객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경기장 통로였다는 점에서 성폭력 특례법 제12조 성적 목적을 위한 공공장소 침입 혐의를 별도로 적용할 수 있다. 해당 대회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 관계자는 "수구경기장은 연습경기장과 레일경기장으로 두 개로 나뉘는데, 범행이 발생한 장소는 레일경기장으로 관람객 출입이 자유롭다"고 했다. 양윤숙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여성위원장은 "관람객 출입이 금지된 공간이 아닌 경기장 같은 다중 이용 장소에서 범행이 일어났기 때문에 해당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며 "다만 피의자가 애초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할 목적을 가지고 그 장소에 침입한 점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A씨의 국적과 관계없이 혐의를 적용할 수 있지만, 외교 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실제 처벌수위는 사법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관계가 얼어붙은 만큼 A씨의 처벌은 양국관계에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 위원장은 "속지주의와 관계없이 외국인 범죄는 대외 관계로 번지는 경향이 있어 사법당국에서 어떻게 대응할지가 또 다른 관건"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불법촬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만큼 혐의만 입증되면 최대 벌금형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적발된만큼 초범으로 분류돼 불법촬영 혐의로 징역형까지는 힘들다고 봤다. 장 변호사는 "외교부에서 A씨의 범죄 전력을 조사하고 있지만 한국 형법은 속지주의라 국내에서 발생한 범죄가 아니면 재범으로 보기 힘들다"고 했다.

한국 국적도 아닌 남성이 국내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복잡한 문제지만,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했다는 점에서 각계는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 이사는 "대일관계도 무시할 수 없지만 193개국이 모인 국제대회에서 참가 선수가 피해를 입은 사건인 만큼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장 변호사 역시 “경기를 앞두고 연습 중인 선수의 구슬땀을 악용해 성적으로 희롱한 사건”이라며 “정치적 문제를 떠나 운동선수의 신체를 몰래 촬영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꼬집었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가해자의 국적을 떠나 불법촬영은 재범률이 높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피해를 입은 뉴질랜드 수구선수단은 아직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상태다. 조직위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피해 선수 국적이 특정된 만큼 2차 가해 우려가 크다. 피해자보다는 범행에 집중해달라"며 "조직위로서는 이미 관할서로 사건이 넘어가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했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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