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국민 눈살 찌푸려"…사법농단 판사 측 타이른 재판부
입력: 2019.07.15 14:31 / 수정: 2019.07.15 14:31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입건된 성창호(47) 부장판사외 3명의 첫 공판이 다음달 19일 열린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혐의 등 1심 선고 때 성 부장판사(가운데)가 입장하는 모습. /뉴시스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입건된 성창호(47) 부장판사외 3명의 첫 공판이 다음달 19일 열린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혐의 등 1심 선고 때 성 부장판사(가운데)가 입장하는 모습. /뉴시스

성창호 재판도 공소장 일본주의 갈등…"공소장에 '등' 빼달라" 요구도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인턴기자] "굳이 제가 이런 말씀까지 드리는 이유는 국민이 지켜보는 재판인 만큼 변호인 측에서도 '이 정도면 올바른 재판을 받겠다' 싶으면 그냥 넘어가는 게 좋습니다. 국민이 보기에도 그 편이 낫고…"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입건된 성창호(47)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외 3명의 재판에서도 '공소장 일본주의'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검사가 기소할 때 공소장 하나만을 제출해야 하고 재판부가 예단을 갖게 할 수 있는 기타 서류 등을 첨부·인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날 재판에서도 이 내용으로 공방이 오가자 재판부는 "이 정도만 하자"고 검찰과 변호인 양측을 타일렀다. 앞서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이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공소장 일본주의를 빼들어 비판받은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제23형사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5일 오전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받는 성 부장판사 외 3명의 3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준비기일에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가 없어 피고인은 출석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에서 변호인단은 검찰의 변경된 공소장에 거듭 이의를 제기했다. 검찰은 첫 공판준비기일 당시 재판부와 변호인 측 지적을 바탕으로 12일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신광렬(54)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측 변호인은 "(공소장이 변경됐지만) 마찬가지로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되는 부분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조의연(53)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측 변호인은 "검찰 측의 주된 주장은 피고인들의 범행이 국가기능 중 수사기능에 장애를 초래했다는 것"이라며 "변경된 공소장에는 법원 재판기능까지 방해했다고 나오는데 수사기능과 재판기능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특히 검찰이 공소사실을 열거하며 '등'(그 밖의 것이 있음을 나타냄)이라는 의존명사를 사용한 것에 강하게 반발했다. 조 부장판사 측 변호인은 "다른 건 다 좋다. 그런데 '등' 이 글자만 빼달라"고 요청했다. 변호인 측에 따르면 검찰은 "피고인의 범행으로 경찰의 수사 진행 경과, 국가 영장재판, 검찰의 향후 조사 진행 등에 장애를 끼쳤다"고 공소장에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은 "검찰 측에서 경찰 수사와 재판 등 (피고인의 범행으로) 장애가 발생한 부분을 특정한 것은 다 좋다"며 "그러나 '등'이라는 글자 하나로 어디까지 방어해야할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검찰은 "모든 재판의 공소장에 통상적으로 '등'이라는 의존명사를 쓴다. 대법원 판결문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라며 "혹시 상술한 국가기능에 장애를 초래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에 변호인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재판부 역시 공소장에서 여러 사안을 나열할 때 쓸 수 있는 단어라고 판단했다.

앞서 변호인이 지적한 수사와 재판기능 장애도 연관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수사기능에 장애가 생기면 증거인멸 우려가 큰데, 자연스럽게 재판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검찰 측은 공소장에 언급한 재판의 경우 영장전담 재판을 뜻한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피고인 중 성 부장판사가 당시 영장전담 판사였던 만큼 재판기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취지다. 이로서 변호인 측이 이날 재판에서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기일을 마지막으로 정식 공판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재판부는 유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2월 기소된 후 107일 만에 첫 공판을 맞은 점, 20만 장에 달하는 방대한 수사기록으로 주 2~3회 재판에도 지지부진했던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선례 등을 의식한 듯 소송경제적 측면(소송 제도의 능률성과 실용성을 도모하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검찰의 공소장 변경에도 식지 않는 공소장 일본주의 공방에 재판부는 결국 검찰과 변호인 양측에 웬만한 최종심 판결문을 읽는 수준의 시간을 할애해 타일렀다. 유영근 부장판사의 말이다.

"공소장 일본주의로 자꾸 논란을 야기하는 것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변호인도 신임 판검사가 배울 교과서에 두고두고 회자될 그런 선례를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지속적인 공소장 이의 제기는 검찰에게도 불명예입니다. 국민이 지켜보는 재판인 만큼 소송경제적 측면을 고려해 변호인도 '이 정도면 올바른 재판을 받겠다' 싶으면 (정식 공판으로) 넘어가는 게 좋습니다."

서로의 말을 가로막으며 첨예하게 대립한 검찰과 변호인이지만 재판부의 긴 설득에는 특별히 변론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음달 19일 오전 10시로 첫 공판기일을 잡았다. 첫 정식 재판에는 임 전 차장의 USB와 이메일에서 압수한 문건 9건에 대한 증거인부 절차와 증인채택이 이뤄질 예정이다. 12일 검찰이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임 전 차장과 이민걸(58)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을 포함한 12명의 증인이 신청된 상태다.

신 전 부장판사는 2016년 4월 '정운호 게이트' 검찰 수사 당시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수사보고서 등 공무상 기밀 문건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성‧조 부장판사는 해당 문건을 복사하고 정리해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대법원은 지난 3월 이들 3명을 재판업무에서 배제시켰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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