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의 눈물②]'불법체류 낙인' 추티마의 짓밟힌 꿈을 아시나요
입력: 2019.07.14 00:01 / 수정: 2019.07.15 14:11
이현서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에서 이주민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들고 있다. 이 변호사가 든 그림은 키르기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가, 우측 그림은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이 선물했다. /송주원 인턴기자
이현서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에서 이주민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들고 있다. 이 변호사가 든 그림은 키르기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가, 우측 그림은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이 선물했다. /송주원 인턴기자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 이현서 변호사 인터뷰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한국에는 화교소학교(華僑小學校)라는 대만계 외국인 학교가 있다. 대학이나 어학원에서는 중국 본토에서 쓰는 간체자를 배우지만, 화교소학교는 대만계 교사가 대만식 중국어를 가르친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 이현서 변호사는 이 학교를 다녔다. 일찍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방과후 수업 때 중국어를 가르친 선생님을 특히 따랐다. 선생님은 대만 출신 이주민이었는데 3대 째 한국에 살고 있지만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도 이해가 되지않았다. 지금도 그 선생님이 종종 기억난다.

변호사 자격을 따자마자 이주민을 지원하는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난민부터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달려온 지 4년째다. 2017년 11월 야산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 추티마 사건을 지원하기도 했다. 2006년 나이 열여덟에 한국땅을 밟고 10년 넘게 일한 추티마는 미등록 체류자였다. 살인범인 한국인 남성 김모 씨는 “곧 경찰이 불법체류자 단속을 하러 나온다. 안전한 곳으로 가자”고 피해자를 꾀어 성폭행하려다 살해했다. 이주여성의 약점인 체류자격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대표적 사례다.

◆결혼중개업법·외국인고용법에 이주민은 없다

재한 이주민은 크게 한국인과의 혼인으로 이주하는 결혼이주민, 노동을 하기 위해 온 이주노동자로 나뉜다. 최근 한국어를 못하고 베트남 음식을 고집했다는 이유로 남편 김모(36) 씨에 무차별 폭행을 당한 A(30) 씨는 결혼 이주여성에 속한다. 추티마는 이주노동자였다. 각각 결혼중개업법, 외국인고용법이 적용된다. 얼핏 보면 이주민 당사자를 위한 것 같지만 사실상 한국인을 위한 법이다.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이 법은 결혼중개업을 건전하게 지도ㆍ관리하고 결혼중개업 이용자의 피해를 예방하여 그 이용자를 보호함으로써 건전한 결혼문화 형성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결혼중개업법과 외국인고용법 1, 2조에는 이주민 인권을 보장하고 보호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전반적인 법 내용도 누가 어떻게 이주민을 관리할 것인가가 대부분이에요. 이주민을 물건처럼 대상화해 부품처럼 한국에 데리고 있다가 빼버릴 수 있는 거죠. 이주민의 약점은 법이 만든 거예요.”

'결혼중개업 이용자'가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인 남성을 일컫는 것인지, 상대 여성을 말하는 것인지부터 모호하다. 국내 대부분 국제결혼 중개사이트를 보면 전자에 가까워 보인다.

“한국인 남성과 개발도상국 여성의 결혼을 중매하는 경향 자체를 나쁘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쇼핑몰에서 상품을 고르듯 여성의 사진과 신체사항, 인성적인 면까지 기재해 한국인 남성이 평가하고 선택까지 하는 이런 결혼중개업은 엄격히 규제돼야 합니다. 하나의 인격체인 여성을 도구화하는 시작점부터 잘못된 거예요.”

비인간적인 중개업으로 만난 한국인 남편은 이주여성을 인격체가 아니라 시부모 부양과 노동, 출산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착취하는 경우도 많다. 개발도상국 출신의 한 이주여성은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시댁과 남편에게 본국으로 강제 추방하겠다는 협박성 폭언을 달고 살았다. 또 다른 이주여성은 밭에서 일을 하다 쓰러졌지만 병원비가 아깝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방치됐다. 이후 아이를 출산했지만 성치 않은 몸으로 신생아를 업고 밭에서 일하다 엄마와 아이 둘 다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4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이 변호사는 이주여성이 출산과 노동의 기계로 전락한 안타까운 사례를 수없이 봐왔다. 월경 중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음란물을 강제로 시청하고 따라하라는 등 성적 학대도 부지기수다.

이주민에게 가장 큰 공포는 바로 체류자격이다. 물리적으로 약하고 성범죄에 취약한 이주여성은 이를 빌미로 많은 범죄에 노출된다.

"가정폭력을 당해도 남편이 신원보증을 해주지 않을까봐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사례도 적지 않아요. 추티마 역시 결혼 이주여성은 아니지만 체류자격이 약점이 돼 목숨까지 잃었다는면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어요.”

2살 아이가 보는 앞에서 베트남 출신 부인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A(36)씨가 8일 오전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2살 아이가 보는 앞에서 베트남 출신 부인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A(36)씨가 8일 오전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신원보증제’ 폐지됐지만 여전히 사각지대

이주여성이 체류기간을 연장하거나 귀화를 신청할 때 반드시 필요한 절차가 신원보증제도다. 국내 배우자와 결혼한 이주여성이 체류 기간을 연장하거나 귀화를 신청하려면 그 배우자가 신원을 보증해야 한다. 신원을 보증할 유일한 존재인 배우자는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셈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법무부는 2011년 12월 이 제도를 폐지했다. 현행법상 한국인 배우자가 아무리 주장해도 이주여성의 귀책사유가 확실할 때만 체류 연장 및 귀화 신청이 취소 가능하다. 그러나 이 변호사나 당사자들의 말은 다르다.

“법무부는 신원보증제를 폐지했다지만 각 지자체 현장에서 여전히 남편의 동행 하에서만 행정적 처리를 하고 있어요. 더 나아가 혼인관계가 정리됐을 때 이주여성이 한국에 더 머물기 위해서는 귀책사유가 100%에 가깝게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해요. 이혼해서도 남편의 권력 안에 있는 거죠. 한국어도 서툴고 통역원을 고용할 경제력도 없다보니 말 그대로 ‘사각지대’예요.”

이런 상황에서 최근 대법원 판례는 가뭄 속 단비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10일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N(23)씨가 서울남부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체류 기간 연장 불허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N씨의 손을 들어줬다. 2015년 12월 한국인 남성 정모(40) 씨와 혼인한 N씨는 임신한 몸으로 편의점 노동을 강요받아 유산까지 했다. 2017년 정씨와 이혼했지만 “남편에게 귀책사유가 많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체류자격을 박탈당했다. 대법원은 “한국인 배우자가 (이러한 판례를) 악용할 소지가 충분하다”고 원심을 뒤집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은 체류자격을 빌미로 이주여성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한다. 이혼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라며 “주체적으로 한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인격체로 인정해 배우자와 혼인관계 중심으로 체류 심사를 하는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격체로 가는 첫걸음한국어 교육 의무화부터

당장 한국에 거주하는 것 만큼 “얼마나 잘 사는가”도 중요하다. 대부분 결혼 이주여성은 만 18세 무렵에 한국에 오는 경우가 많다. 어린 나이에 낯선 땅에 와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가정에만 고립될 염려가 있다. “밖에 나가면 돈 쓸까봐”, “바람 날까봐”라는 이유로 시댁과 남편이 여성을 고립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각 지자체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한국어 교육을 실시해도 많은 이주여성이 가정에만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이유다.

이주여성이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다양한 문제에 부딪힌다. 문화가 달라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는 시부모와 남편에게 의사를 표현 할 수 없고, 최악의 경우 범죄에 노출돼도 신고마저 어렵다. 성장할수록 자녀와 의사소통이 어려워 관계가 멀어진다. 언어능력은 한국사회에서 한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변호사는 각 지자체에서 문화 프로그램처럼 운영되는 한국어 교육 시스템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봤다.

“각 지자체 차원에서 가구조사를 실시해 구성원 중 미성년자가 있는 다문화가정에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우편물부터 송달해보면 많은 게 달라질 겁니다. 실제로 연령대가 높은 시부모나 한국인 남편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존재도 모르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국어 교육 홍보와 더불어 한국 생활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생활정보를 주기적으로 송달하는 시스템도 고려할만 하다. 낯선 땅을 밟은 아내 혹은 며느리만큼이나 외국인 가족구성원이 낯설 한국인 가족을 위해 서로의 문화를 배우는 프로그램도 지자체 차원에서 개발할 필요도 있다. 이 변호사는 “서울 및 수도권은 현지 음식 만들기라든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정작 외국인 아내가 많은 농촌은 인프라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소규모 지자체일수록 이러한 특수성을 감안해 더욱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이주여성 피해자 A(30)씨의 한국 국적 취득을 반대하는 청원(위), A씨에게 폭행을 가한 가해자 김모(36) 씨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아래). 위 청원에는 상간녀에 혼외자까지 낳은 여자에게 국적을 주면 안된다. 폭행도 유도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대한민국 청와대
베트남 이주여성 피해자 A(30)씨의 한국 국적 취득을 반대하는 청원(위), A씨에게 폭행을 가한 가해자 김모(36) 씨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아래). 위 청원에는 "상간녀에 혼외자까지 낳은 여자에게 국적을 주면 안된다. 폭행도 유도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대한민국 청와대

2017년 추티마 사망에 이어 이주여성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 다시 공론화됐다. 추티마 사건을 맡았던 이 변호사의 마음은 편치 않다. 그는 “아직 영상도 끝까지 못봤다. 차마 못 보겠더라”며 안타까워 했다. 폭행 범죄라는 본질을 흐리는 갖가지 소문과 억측에는 분노했다. 특히 피해 여성이 미리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놓는 등 계획적으로 폭행을 유도했다는 2차 가해성 여론에는 “소송을 해보면 백이면 백 한국인 남편이 그런 방법(증거를 조작하는 행위)을 쓴다”며 “아내가 칼을 들었다는 녹취록을 제출해 귀책사유를 전가했는데 자녀의 증언으로 판세가 뒤집힌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주여성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영상이 공개됐는데도 국적을 바라고 일부러 폭력을 유도했다는 등 2차 가해가 만연한 것에는 “현대 한국식 국가주의”라고 비판했다.

“이번 피해여성에게 달린 포털사이트 댓글 중 ‘한국 남편이 싫으면, 한국이 싫으면 떠나면 될 것 아니냐’였어요. 사실 피해여성은 한국이 싫다고 말한 적 없어요. 오히려 한국에서 잘 살아 보려고 스스로 선택해서 왔죠. 그냥 (댓글을 단) 한국인이 이주여성이 싫으니 떠나라고 하는 말에 불과해요. 우리도 누군가는 결혼 등의 이유로 외국에 나가 체류자격을 염원하는 이주민이 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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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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