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김동원 씨(왼쪽)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뉴시스 |
문 대통령도 좋아하는 '오현 스님' 작품...드루킹 "양승태와 나, 한일관계 회복 힘써"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서울구치소에 함께 수감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드루킹 김동원 씨가 각각 첫 공판과 결심 공판에서 오현 스님의 시로 자신들의 입장을 대신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평생 베품과 안빅낙도의 삶을 살았던 오현 스님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포털사이트 댓글조작 혐의로 기소된 드루킹 김동원 씨는 1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자신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오현 스님의 시 '오늘'을 읽으며 최후진술을 마쳤다. 드루킹은 "잉어도 피라미도 다 살았던 붓도랑. 맑은 물 흘러들지 않고 더러운 물만 흘러들어 기세를 잡은 미꾸라지 놈들 용트림할 만한 오늘"을 읽었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시조 시인이었던 오현스님의 실제 법명은 무산스님이다. 1932년 경남 밀양 생이며 1939년 출가했다. 1968년 등단해 한글 선시를 개척했으며 문학으로 불교를 알리는 업적을 쌓았다.
2017년 2월 14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오현 스님은 2018년 열반에 들기 한 해 전인 2017년 2월 10일 겨울 설악산 백담사에서 90일간의 안거를 끝내면서 동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자기를 먼저 보라"고 법문 했다. 이 자리에서 오현 스님은 "대통령, 대기업 회장, 고위 공직자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검판사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이므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보고, 자신의 행위를 똑바로 보라"는 것이다. "자기의 허물을 먼저 봐야 공명정대해질 수 있다"며 "미꾸라지나 잡룡이 아닌 잠룡이 있느냐"며 '오늘'이라는 시를 읊었다.
잉어도 피라미도 다 살았던 봇도랑
맑은 물 흘러들지 않고 더러운 물만 흘러들어
기세를 잡은 미꾸라지놈들
용트림할 만한 오늘
드루킹 김 씨는 최후 진술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언급했다. 김 씨는 "문재인 정부가 일본과 외교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며 "대법원장이나 일본과 관계를 회복하려 한 정치인, 저 같은 사람을 모두 감옥에 넣고 반일 외치다 나라가 망국으로 가는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김 씨 보다 앞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5월 29일 첫 공판에서 오현 스님의 시 '마음하나'로 자신의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그 옛날 천하장수가 천하를 다 들었다 다 놓아도 모양도 빛깔도 향기도 무게도 없는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며 '마음하나' 시 전체를 읊었다. 그러면서 "저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도 넘는 공격에 대해 이런 마음 하나로 견뎌왔다"고 말했다.
그 옛날 천하장수가/ 온 천하를 다 들었다 놓아도
모양도 빛깔도 향기도/ 무게도 없는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
문재인 대통령이 2016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오현스님의 시조/뉴시스 |
공교롭게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드루킹 김동원 씨는 감정이 좋지않을 문재인 대통령도 오현 스님의 시를 즐겨 읽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에서 물러난 2016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냥 좋아서"라며 오현스님의 ‘아득한 성자’, ‘인천만 낙조’ 를 소개했다.
대통령 취임 뒤인 2018년 5월26일 오현스님이 입적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야 털어놓자면 스님께선 서울 나들이 때 저를 한 번씩 불러 막걸릿잔을 건네주시기도 하고 시자 몰래 슬쩍슬쩍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시기도 했다. 물론 묵직한 '화두'도 하나씩 주셨다"며 "언제 청와대 구경도 시켜드리고, 이제는 제가 막걸리도 드리고 용돈도 한 번 드려야지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문 대통령은 "스님은 제가 만나 뵐 때마다 늘 막걸릿잔과 함께였는데 그것도 그럴듯한 사발이 아니라 언제나 일회용 종이컵이었다"며 "살아계실 때 생사일여, 생사를 초탈하셨던 분이셨으니 '허허'하시며 훌훌 떠나셨을 스님께 막걸리 한잔 올린다"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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