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비틀 음주공화국②] '100만 구독' 음주 유튜브까지…술 권하는 미디어
입력: 2019.07.07 00:01 / 수정: 2019.07.08 11:19
지난해 1월1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국군부산병원에서 지난 9월 만취 운전자가 몰던 BMW 승용차에 치여 숨진 윤창호(22) 씨의 영결식이 끝난 이후 관이 운구차량으로 옮겨지자 고인의 친구들이 관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월1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국군부산병원에서 지난 9월 만취 운전자가 몰던 BMW 승용차에 치여 숨진 윤창호(22) 씨의 영결식이 끝난 이후 관이 운구차량으로 옮겨지자 고인의 친구들이 관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회식 강요 회사문화도 한 몫…'음주조장' TV·광고 이어 SNS로 확산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한국은 음주운전 등 주취자 범죄부터 알코올 중독과 간암 등 보건 분야까지 술 문제로 골병을 앓고 있다. <더팩트>가 취재한 각계 전문가들은 자연스러운 술 권유 문화와 만취할 때까지 마시는 습관이 폐해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근절되지 않는 음주운전의 원인으로 "한국인은 만취할 때까지 마셔야 '오늘 술 잘 마셨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어 음주운전자 비율도 줄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회사 내 동료애를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강압적 회식문화가 자리 잡은 현실도 문제다. 손애리 삼육대학교 보건관리학과 교수는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퇴근 후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곧 동료애라는 문화가 생겼다. '원샷'과 폭탄주 제조도 회식 문화의 산물"이라고 꼬집었다.

음주운전으로 목숨을 잃은 고인의 이름을 딴 '윤창호법' 시행 첫날 음주단속을 피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서버가 마비됐다. 일평균 알코올성 질환으로 사망한 환자는 13명에 달하지만 1인당 알코올소비량은 13억 인구 중국보다 높다. 법과 질병 앞에서도 물러설 줄 모르는 한국인의 술 사랑을 돌아볼 때다.

◆"회사 사랑하는 만큼 원샷" 음주문화 이끄는 회식

잘못된 음주 문화를 가장 조장하는 곳은 직장이다. 주52시간 근무제와 '워라밸' 열풍으로 귀가 시간이 앞당겨 졌지만 상사의 회식 제안과 술 권유를 이겨내기 어려운 현실이다. 취업포털 커리어에서 직장인 5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인사담당자 및 직장인 대상 음주문화'(2019)에 따르면 직장 생활 중 음주 강요를 경험한 비율은 60.36%에 달했지만 자신의 주량을 밝히는 음주 팔찌 도입에는 과반수인 53.1%가 "부정적이다"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 "어차피 팔찌 착용이 자유롭지 않을 것 같아서(눈치 보여서)"라고 대답한 비율이 75.28%를 기록했다. 사내 음주문화가 개선돼야 할 이유로는 ▲업무 지장(36.53%) ▲숙취‧피로(22.75%) ▲건강(21.71%)을 꼽았다. '사회생활'이라는 미명 아래 형성된 잘못된 음주문화로 업무부터 건강까지 피해를 본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행위 금지법이 시행된다. 매뉴얼에 나타난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상대방 의사와 상관없이 회식과 음주를 강요하는 행위가 명시됐다. 괴롭힘을 당한 노동자는 사용자(사업주)에게 신고할 법리적 근거가 생겼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매뉴얼상 회사는 사업장 규모에 맞춰 괴롭힘 행위에 대응하는 전담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5~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전담기구를 설치해도 객관적인 조사를 기대하기 힘들다. 전문기관에 공식조사를 요청하는 기준도 "공정성과 전문성 등을 위해 외부기관 위탁을 고려하라"로 애매하다.

괴롭힘 행위를 신고할 사용자가 음주를 강요할 경우 해결이 더 어렵다. 개정법 76조 3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문제는 사용자인 대표이사나 사장에게 음주 강요 등 괴롭힘 행위를 당했을 때 신고가 어렵다는 것이다.

모 은행 고위 간부는 퇴근 후 거의 매일 회식 참여를 강요했다. 중국음식점에서 회식한 날은 다 먹은 짜장면과 짬뽕 그릇에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마시게 하는 등 가혹행위도 일삼았다. 민간 공익단체 '직장갑질119'에 실제 들어온 제보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개정법상 음주 강요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분류하고 사용자에게 신고하도록 했지만 이 사례처럼 사용자가 음주 강요를 할 경우 상당히 곤란해진다"며 "음주 문제는 사내에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고용노동부에 직접 신고하도록 해야 한다. 대표이사라도 명확히 처벌할 조항을 신설하는 것도 남은 과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기 연예인이 술을 마시는 직접적인 장면이 미디어에 그대로 노출되며 음주 조장 문화가 짙어졌다고 지적한다. 2020년부터는 광고모델이 술마시는 장면을 전면금지할 예정이다. /유튜브 캡처
전문가들은 인기 연예인이 술을 마시는 직접적인 장면이 미디어에 그대로 노출되며 음주 조장 문화가 짙어졌다고 지적한다. 2020년부터는 광고모델이 술마시는 장면을 전면금지할 예정이다. /유튜브 캡처

◆미디어 속 스타 "소주 한 잔?"…성인물 규제도 오락가락

국내 주류회사는 광고모델로 인기 여성 연예인을 선호한다. 화장품, 믹스커피와 함께 인기 연예인이라면 반드시 거치는 광고계 트로이카로 불릴 정도다. 광고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주로 젊은 여성과 남성이 데이트하는 상황을 연출해 술잔을 따르고 건넨다. 모델이 스스로 꿀꺽꿀꺽 한 잔을 들이키기도 한다. 미디어 너머 안방극장 시청자들이 술이 당기도록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손애리 교수는 “국내 주류광고 술맛과 목 넘김, 만취를 강조해 음주를 조장한다”며 “어리고 인기 있는 여성 모델을 기용해 지나치게 섹슈얼하게 소비함은 물론 아직 주량을 모르는 청소년부터 20대 초반에게 '술을 마시는 건 좋은 거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는 이미 주류광고를 엄격하게 규제한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와 독일은 25세 이하 모델 기용을 금지하고 지나친 음주를 묘사하는 광고를 규제한다. 특히 미국은 심의를 거쳐 실제 나이는 25세 이상이지만 21세 이하처럼 보이는 '동안모델'까지 규제한다. 더 자세히 뜯어보면 노르웨이는 알코올 함량 2.3% 이상의 주류 광고를 전면금지했다. 핀란드는 시청률이 높은 오후 7~9시 TV 주류광고를 모두 내렸다. 추운 날씨로 알코올 함량이 높기로 유명한 러시아조차 도수 5% 이상 주류광고를 인쇄매체 외에는 내보내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정부도 주류광고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을 내놓았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발표한 '절주문화 확산을 위한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에는 ▲연예인 모델의 영향력 고려 ▲불필요한 음주 장면 최소화 ▲폭음․만취 등 해로운 음주 행동 묘사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군 휴가 중 음주운전 차량에 숨진 고 윤창호 씨의 이름을 딴 '윤창호법' 영향을 받아 같은 해 11월 광고모델이 술을 마시는 장면을 전면금지하기로 했다. 이 법안은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TV와 영화, 주류광고 포스터 등에 국한됐던 음주조장 시각물은 스마트폰, 1인 크리에이터 활동이 유행하며 유튜브로 옮겨가는 추세다. 구독자를 100만 명 이상 보유한 한 유튜버는 "술 먹다 개가 됐다"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기도 하고 일반적인 소주병 크기보다는 작지만 '소주 한 짝 먹방'(먹는 방송) 영상도 올라와 있다. 구독자를 70만여 명 가까이 보유한 또 다른 유튜버 역시 연령 제한 없이 마음껏 '술방'을 하고 있었다. 영상 후반부에는 알코올을 분해할 체내 효소가 적어 발생하는 '아시안 플러시'(Asian flush) 현상으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모습도 여과 없이 나타났다. 구독자들은 "얼굴과 눈이 점점 빨개지는 게 킬링포인트(Killing point)", "같이 술 마시면 재밌겠다" 등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두 영상 모두 조회수는 수십~수백만 단위였으며 연령 제한은 없었다. 유튜브 연령 제한은 영상제작자가 직접 설정하거나 유튜브 본사에서 규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유튜버는 더 많은 조회수를 얻기 위해, 또는 영상 등록에 절차가 하나 더 늘어나니 번거로워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본사도 1분 1초를 다투며 천문학적인 수의 영상이 올라오는 만큼 일일이 규제하기 힘든 실정이다. 한 유튜버는 매운 음식을 먹었을 뿐인데 '지나치게 붉은 색'으로 연령 제한물이 되는 등 기준도 오락가락하다.

TV와 언론 등 대중매체에서 음주 장면 및 주류광고 규제가 심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정부 규제가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까지 관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튜브 캡처
TV와 언론 등 대중매체에서 음주 장면 및 주류광고 규제가 심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정부 규제가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까지 관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튜브 캡처

국제보건기구(WHO)는 술을 1급 발암물질로 보고 3대 규제정책으로 접근성과 광고규제, 단기개입을 들었다. 잠금장치만 풀어도 만취한 채 시청자와 소통하는 유튜버를 볼 수 있는 현재로서는 음주 접근성을 막는데 심각한 허점이 생긴 셈이다. 시대 흐름에 따라 대중매체와 미디어의 범위를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까지 넓히고 법망을 좁혀가야 한다.

손애리 교수는 경쟁적으로 많은 술을 마시고 만취하는 모습을 희화화하는 미디어가 음주 조장에 가장 큰 기여를 한다고 분석했다. 손 교수는 "미디어에서 많은 양의 술을 먹고 만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일반인도 음주와 폭음 심각성에 무뎌진다"며 "혼자 미디어를 보며 술을 마시는 '혼술 문화'가 강세인 만큼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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