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양승태 재판 방청석이 썰렁해진 이유는
입력: 2019.07.04 05:00 / 수정: 2019.07.04 05:00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5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5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변호인 요구 증거조사에 하세월...'파일 설명의 달인'된 검찰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은화 기자] "(파일) 본문 3쪽의 6번째 행부터 한 줄씩 밀려서 출력 된 것을 확인했다. 이로 인해 출력물에는 전부 한 줄씩 밀렸는데, 내용은 같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1차 공판에서 검찰이 이같이 설명한 뒤 재판부와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의 조판까지 동원해 한 줄씩 밀린 이유를 고민하자, 고영한 전 대법관측 변호인이 "쪽수를 수정하면 해결된다"고 방법을 알려줬다. 의문이 해결되니 다음 순번의 증거조사로 넘어갈 수 있게 돼 검찰과 재판부는 홀가분해 보였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파일의 해시값을 화면에 띄워 재판부와 변호인 측에 보여주며 일일이 확인했다. 검사가 "저희가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압수수색 당시 순차적으로 파일의 해시값이 생겼다. 압수해 온 개별 파일에 해시값이 우선적으로 먼저 생성되고 현장보고서용으로 바로 출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부 박남천 재판장은 이 과정을 즉각 이해하진 못했다. 잠시 혼란스러워 하던 박 판사는 검사에게 몇 차례 질문한 뒤 다음 검증으로 넘어갔다. 해시값이란 복사된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한 암호같은 수치로, 일반적으로 수사과정에서 '디지털 증거의 지문'으로 통한다.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이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검찰이 증거조사 중 "이번에는 분량이 상당이 많다. 어제 박병대. 고영한 변호인들은 다 확인하고 갔는데 양승태 변호인만 참석 못해서 아쉽다"며 "증거번호10981, 10984, 10985, 10997, 10998 ~ 15페이지는 전부입니다"라고 50개의 증거번호를 말하자, 고영한 측 변호인이 "양승태 변호인이 어제 검찰에 출석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양 변호인측에선 외교부 압수수색 파일들이 전자정보가 아닌데다 USB 자체가 압수된 것도 있어서,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많이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대신 설명했다. 또 "외교부에서 압수수색한 파일 뒷부분 18개 가량은 무결성에 대해선 이미 확인했고, 동일성 확인 차원이니 예상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며 반복되는 증거 검증 작업에 지친 검찰과 재판부를 달랬다.

박 부장판사는 고영한측 변호인이 "이 부분에서는 파일의 첫 부분과 끝쪽만 비교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자 "아~ 그렇습니까?"라고 즉답하며 검증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인데 대해 기뻐했다. 검찰은 문건의 증거순번을 비롯해 파일명, 실제 파일을 열었을 때 첫 페이지의 제목, 끝 페이지의 한 문장정도를 읽었고, 변호인 측에서 별 이의제기가 없으면 판사는 "원본과 출력물을 대조한 것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하는 과정을 매 공판 오전부터 저녁까지 반복하고 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고영한 전 대법관이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고영한 전 대법관이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이날은 검찰이 2018년 10월 23일 오후에 참고인 조사를 받은 송 모 전 법원행정처 재판사무국 민사과장이 조사과정에서 임의제출한 자료, '미쓰시비중공업, 신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보고 문건',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관련 법률 전문가 간담회 보고' 등의 파일에 대한 검증 작업이 진행됐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등을 이유로 증거번호만 달라진 채로 거의 똑같은 이런 과정이 몇주째 반복되다 보니 검사들은 이제 파일 설명의 달인들이 됐다. 그러는 동안 원래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재판처럼 지지자들이 찾는 공판이 아니어서 방청석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5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재판을 방청하고 있다. 심지어 사법농단 재판을 취재하는 기자수도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5월 29일 첫 공판날 방청석 2/3 정도가 찼던 것에 비하면 재판 지연으로 사법농단 공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현저히 줄어들었음 확인할 수 있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사법농단 재판을 감시하기 위해 두눈부릅 사법농단 재판 시민방청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제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사법농단 재판을 감시하기 위해 '두눈부릅 사법농단 재판 시민방청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참여연대 제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이들의 재판이 '제식구 감싸기' 재판이 되지 않도록 감시할 '두눈부릅 사법농단 재판방청단'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운영하고 있지만 이날은 서울지법을 찾지 않았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여러가지 여건상 실제로는 월 1회 사법농단 재판을 방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8월 10일로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추가 기소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은 8월부터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재판이 다른 일반 국민들 재판처럼 정상적으로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며 "중요 사건이기 때문에 객관적 자료와 진술, 증거를 수집했고, 검찰은 이는 최선을 다해 최대한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도 재판을 적절히 진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재판부에 신속하고 정상적인 재판 진행을 요구했다.

happ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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