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에서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전환 민주노총 투쟁본부' 노조원들이 한국도로공사 용역업체 소속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직접고용 등을 촉구하며 구조물 위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
"몸만 불린 용역업체" vs "기타공공기관 협의 중"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30일 오전 4시부터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톨게이트에 농성에 들어갔다. 빽빽히 늘어선 차들로 가득 찬 명절에도, 새벽이슬을 맞으며 출근하는 1톤 트럭이 간간이 지나갈 뿐인 새벽에도 1평 남짓 수납 창구에 앉아 미소 띤 얼굴로 운전자를 맞이하던 노동자들은 10m 높이에 달하는 톨게이트 옥상 위에 올랐다.
한국도로공사 (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을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데 따른 결과다. 6500여 명의 노동자가 바라던 '정규직'이다. 그럼에도 노동자 1400여 명은 여전히 "정규직 전환"을 주장한다.
요금수납원은 좁은 톨케이트 수납 창구에서 24시간 3교대로 근무한다. 하이패스 설치 구간에도 미납 차량을 감시하고 잘못 인식된 차량번호를 육안으로 판독하는 등 기계가 할 수 없는 세심한 업무까지 담당한다. 대우는 최저임금을 벗어나기 힘들다. 경력이 10년이 되든 20년이 되든 재계약 때마다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마저도 계약연장이 급선무라 수십 년간 일해도 마음 편하게 '연봉 협상'을 할 수 없다. 남정수 민주일반연맹 교선실장은 "20년 째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건 우리들 사이에서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고용이 불안정한 외주업체 노동자로서 당연한 현실"이라고 씁쓸해 했다.
작은 희망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었다. 수납원들은 2013년 도로공사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요금수납원의 손을 들어줬다. 도로공사의 지휘·명령을 받아 일한 점이 인정돼 2년 이상 일한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로, 2년 이하 노동자는 직접고용 형태로 채용할 것을 선고했다. 계류 기간이 길어졌지만 대법원 최종심만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로공사는 6700여 명의 요금수납원을 자회사로 옮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1일 출자한 한국도로공사서비스(주)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본사의 직접고용만을 기다린 요금수납원들은 반발했다. 해고의 두려움 속 자회사로 옮기겠다는 이도 있지만 톨게이트 위 1400여 명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노동계에서 자회사는 몸만 불린 용역업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남 실장은 "누가 봐도 직접 고용을 하지 않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며 "본사는 무인화 시스템 도입 등 일련의 사유로 자회사를 얼마든 떼어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수납원들은 또 갈 길을 잃고 만다"고 우려를 표했다. 무늬만 정규직 전환일 뿐 사실상 외주업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도로공사는 요금 자동 수납시스템 '스마트톨링'을 2020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고속도로에서 통행권을 뽑을 필요 없이 카메라가 번호판을 인식해 자동으로 통행료를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6월 3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에서 '한국도로공사 정규직 전환 민주노총 투쟁본부'노조원들이 한국도로공사 용역업체 소속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직접고용 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
자회사는 실질적으로 또 다른 용역업체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2017년 고용노동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이래 꾸준히 지적된 부작용이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파견·용역 비정규직 인력은 조직성격 및 규모·업무특성 등을 고려해 노사 협의 등을 거쳐 직접고용·자회사 등 방식을 결정하도록 명시했다. 기업이 본사 직접고용과 자회사 정규직 전환 중 후자를 택하면서 본사 측과 노동자 사이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베이커리 전문 매장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이 그 선례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9월 외주업체 소속 제빵기사의 정규직 지위를 인정했다. 직접고용 지시를 받은 SPC그룹은 제빵기사들을 자회사 PB파트너즈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3년내 본사 고용자와 동일수준의 임금을 보장하고 노사 간담회 및 협의체를 운영한다는 합의도 함께였다. 그러나 지난 1월부터 본사 앞에서 약 100일간 농성을 벌인 PB파트너즈 소속 노동자에 의하면 합의는커녕 사실상 자회사와의 실무적 대화를 모두 끊고 ‘불통’의 태도로 일관했다. 요금수납원들이 "비동의자까지 끌어안겠다"고 팔 벌린 도로공사의 말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본사 직접고용이 아니면 사실상 정규직이란 이름이 무색하다는 것이다.
도로공사 측은 본사 정규직에 상응하는 업무환경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이다. 도로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경력이 쌓여도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을 감안해 임금을 30% 인상하고 정년도 1년 늘려 61세로 상향 조정했다. 이외에도 복리후생을 전반적으로 상향조정할 다양한 사안을 협의 중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현재 톨게이트 노동자 수가 약 6700명으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 더 체계적인 조직 아래 근무하도록 자회사를 설립한 것일 뿐 다른 목적은 없다"며 "140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노동자들은 동의한 사안이다. 남은 노동자도 원한다면 자회사 정규직으로 근무하도록 설득 중이다"라고 했다. 자회사 정규직 전환 사례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자회사 용역업체화' 선례를 밟지 않기 위해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도록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탁선호 변호사는 "자회사 정규직 전환은 결국 직접고용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탁 변호사는 "본사에 꼭 필요한 노동력을 이용하면서 고용주로서 책임은 안 지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라는 미명 아래 자회사 정규직 전환이라는 '여지'를 줬다며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탁 변호사는 “직접고용도 명시돼 있는데 어디까지나 '옵션'일 뿐인 자회사 전환만 택한 건 기업이다. 고용주로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며 "기업은 정규직 전환 문제에 있어 무엇보다 노동자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ilraoh_@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