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
지연 전략.방어권 보장vs 궐석재판, 최종 승자는 누구?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양승태 전 대법관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의 공판은 기자들 사이에서 기피 1호다. 절차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이 자주 있는데다, 사법농단 재판의 핵심 증거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 파일 1142개를 하나하나 검증하는데 매 재판마다 5~7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검찰, 재판부뿐 아니라 방청석에 앉아있는 기자들도 체력적으로 지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원래도 많지 않았지만, 갈수록 떨어지는 부분도 기자들의 사기저하 요인이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판은 2017년 10월 박 전 대통령이 법정 출석을 거부한 시점 이후부터는 적어도 피하고 싶은 재판 리스트에선 제외됐다.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는 궐석재판으로 진행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판 진행 속도가 지연되진 않아서다.
그리고 두 재판 사이에 이명박 전 대통령 항소심 공판이 있다. 비교적 다른 주요 형사사건 공판의 흐름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데, 이 전 대통령측에서 보석을 신청해 석방됐고, 직권남용죄가 헌법상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는 등 방어권 행사도 적절하게 하고 있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라 매 공판마다 양측의 법정 공방이 벌어지지만, 뇌물수수 및 횡령, 배임, 직권남용 등 10개가 넘는 혐의를 다투는 재판에서 이 정도 수준의 법리적 공방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재판이 소법정에서 열리다보니 30명 넘는 지지자들과 일반 시민, 취재진들의 열기로 답답함이 느껴질 때가 많아 이 전 대통령 재판 역시 취재가 쉬운 편은 아니다.
사법농단 의혹의 최고 책임자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
취재의 어려움을 토로하려는 것은 아니고 공판마다 판사와 검사, 변호인들의 성향과 특징에 따라 재판 진행 방식 등이 달라진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어 세 재판의 특징을 꼽아봤다.
사법농단 재판이 역대급, 거의 사상 최초로 원칙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심지어 피고인들과 변호인들 조차도 지치는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의 공판이야말로 재판의 모범답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이유로 지금까지 이렇게 진행된 경우가 없었을 뿐이지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의미다. 재판을 방청하다 보면 피고인 중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향후에는 이 재판을 모범사례로 삼아 증거를 철저하게 검증하는 등 조금의 아쉬움도 남지 않게 공판이 원칙에 따라 진행된다면 오히려 좋은 관행이 될 수도 있으 것 같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세 사람측 변호인 등의 주장대로라면 그동안 재판들은 관례에 따라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반해 진행됐으니, 다소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재심을 요청해 다시 재판할 경우 형량이 줄 수도 있겠고, 패소했다면 승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재판 일정을 이유로 증인 소환에 불응한 현직 판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법농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본인들이 진행하는 재판을 연기하게 되면 소송 당사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논리라 납득이 간다. 하지만 직장인이 회사 차원에서 중요한 미팅이나 계약건이 있어 해당 날짜에 증인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법원에 통보하면 재판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현직 판사라는 프리미엄이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대로 법을 잘 아는 양.박.고 세 사람의 피고인은 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자신들의 방어권을 잘 행사하고 있다. 여기다 비공식적으로 이 재판을 돕는 변호사들이 다수 있으니 굳이 갑과 을로 구분한다면 이들이 갑임은 부인할 수 없겠다. 세 사람은 방어권 보장 및 지연 전략, 전방위적인 지원 등으로 재판 진행을 잘 피해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측도 재판을 비교적 잘 이끌어 가고 있다. 당초 항소심 초반만 해도 7월에 선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아직까지도 2심 재판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있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8차례 증인 소환에 불응하면서 재판이 늘어졌고, 최근 공소장이 변경되면서 공판 절차는 더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다스 뇌물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전 대통령에게 51억원의 뇌물 혐의를 추가한 공소장 변경을 재판부에 요청했고, 재판부는 21일 변경을 허가했다. 이로써 이 전 대통령의 다스 관련 뇌물액은 기존 67억원에서 51억여원이 더해진 총 119억여원이 됐다.
검찰이 추가 제출된 증거들의 입증을 위해 삼성전자 미국법인 관련자 3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부도 김 전 기획관과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증인 신문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마무리될 것 같았던 재판은 7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이 전 대통령측에서 재판 흐름상 실형 선고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공판 지연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해 구치소에서 여름을 지내본 경험이 있는 이 전 대통령이 적어도 가장 더운 시기에 구치소로 돌아가는 일 만큼은 피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는 것.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7월 30일부터 8월 4일까지 5일간 수면무호흡 및 당뇨질환 치료를 이유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처음에는 7월 30일 하루 진료로 예상됐지만, 이 전 대통령측은 각종 검사들을 받아야 한다며 닷새나 병원 특실에 머물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5월 8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휠체어를 탄 채 나오고 있다. /남용희 기자 |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 보이콧 중이다. 공판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출석조차 하지 않고 있다. 궐석재판, 우리 국민들 다수가 이 법률용어를 몰랐는데, 박 전 대통령 덕분에 익숙해졌다. 이유야 어쨌든 박 전 대통령의 결단(?) 덕분에 복잡한 쟁점 등에 반해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신속하게 끝났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재판을 피하고 있는 세 사람 중 최종 승자는 누가될까? 법을 잘 아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이명박 전 대통령? 아니면 재판에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박 전 대통령? 8월께나 되야 대략적인 판세가 분석될테고, 대법원 선고까지 마무리 되려면 최소 1년 이상은 걸릴 듯 하니 조급함을 버리고 공판들을 지켜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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