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난민의 날' 175일째 공항에 갇힌 아이들
입력: 2019.06.20 19:28 / 수정: 2019.06.21 08:54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난민인권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출입공항 난민신청자 인권침해에 대한 실태 고발 및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난민인권네트워크 관계자들이 출입공항 난민신청자 인권침해에 대한 실태 고발 및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난민인권단체, 인권위에 진정서 제출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이집트에서 온 모하메드 아보지드는 난민심사 당시를 잊지 못 한다. 그는 고향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던 대학생이었다. 2011년 부패정권을 비판하는 이집트 혁명에 참여하면서 반정부 인사가 됐다.

신변 위협을 피해 한국에 온 아보지드는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당시 그는 심사 면접관에게 "당신은 혁명 중 시위에 참석했다고 주장하는데 대사관에 확인한 결과 2013년 이후 군부 독재의 탄압이 심해져 어떤 시위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아보지드는 "당시 언론보도만 몇 개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를 면접관은 모르고 있었다"며 "게다가 출입국은 조심성 없이 이집트대사관과 지속적으로 연락해 본국 가족들이 위험에 처했다. 제 동생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비호신청자(난민 인정은 받지 못 했으나 보호받을 권리를 얻은 망명자) 자격으로 공항에서 나올 수 있었다.

20주년을 맞은 세계 난민의 날, 난민신청자를 지원하는 변호인과 난민 인권단체가 모였다. 난민인권네트워크와 공익법센터 어필, 사단법인 두루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에 난민신청자들이 공항에서 겪은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진정서를 냈다.

인천국제공항은 2004년부터 11년 연속 세계 공항서비스평가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쾌적한 서비스를 자랑하지만 한국을 찾은 망명자에게는 '지붕 없는 감옥'과 다름없다.

마한얼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8년 본국으로 강제 송환된 난민신청자들이 당한 폭행을 고발했다. 마 변호사에 따르면 신청자들은 송환과정에서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비행기에 올랐고 가스분사총과 곤봉에 맞기도 했다. 마 변호사는 "그들이 보낸 영상을 보며 인간의 존엄이 뿌리 채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며 "유사한 진술을 여러 차례 듣다보니 송환과정에서 폭력이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그는 피해자에게 받은 폭행 영상을 진정서와 함께 제출했다.

공항에 기거하는 신청자들이 변호사 접견권을 누리지 못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헌법재판소의 2018년 판례에 따르면 공항 내 송환대기실에 수용된 신청자는 변호사를 접견할 권리가 있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헌재 판례가 있음에도 한국 공항에서 변호사 접견권은 매우 요원하다"며 "특히 제주공항에서 변호사와 (공항 내에서) 만나기로 한 신청자를 별다른 설명없이 본국으로 송환한 적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앙골라의 콩고 이주민 박해를 피해 지난해 12월 한국으로 도망친 루렌도 가족은 100일 넘게 인천국제공항 라운지에서 살고 있다. 왼쪽부터 첫째 레마(9), 셋째 실로(8), 둘째 로드(8), 아내 보베트(40), 응쿠카 루렌도(47). 뒤편에 자고 있는 아이가 막내딸 그라스(6). /인천국제공항=송주원 인턴기자
앙골라의 콩고 이주민 박해를 피해 지난해 12월 한국으로 도망친 루렌도 가족은 100일 넘게 인천국제공항 라운지에서 살고 있다. 왼쪽부터 첫째 레마(9), 셋째 실로(8), 둘째 로드(8), 아내 보베트(40), 응쿠카 루렌도(47). 뒤편에 자고 있는 아이가 막내딸 그라스(6). /인천국제공항=송주원 인턴기자

앙골라에서 온 난민신청자 루렌도 가족의 변호를 맡은 이상현 법무법인 두루 변호사는 인천국제공항 보안구역에서 6개월 가까이 체류 중인 그들이 보낸 편지를 낭송했다. 편지에 따르면 아픈 아내와 네 명의 아이들은 2시간을 기다린 끝에 공중화장실에서 겨우 샤워를 하는 등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

정치적 이유로 올해 딸과 함께 3시간 동안 후쿠오카 국제공항에 발이 묶인 경험이 있는 김어진 ‘난민과 손잡고’ 대표는 루렌도 4남매의 인권 침해를 가장 무겁게 봤다. 김 대표는 "공항에서 3시간 억류됐을 때 공포에 떨던 딸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면서 "막내는 7살, 쌍둥이까지 있는 루렌도 가족의 4남매는 무려 175일(20일 기준)째 공항에 갇혀 있다"고 눈물을 보였다. 루렌도 가족을 직접 만난 적이 있는 김 대표는 "떠나려는 자신을 붙잡던 4남매는 어린이집에서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눈물을 보이는 아이 같았다"며 "정치적 박해로 쫓겨난 가족과 어린 아이들을 175일간 가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공항 구금은 살인과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년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아프리카단결기구(OAU)가 1975년 정한 ‘아프리카 난민의 날’에서 유래했다. 유엔은 난민을 보호하고 세계인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2000년 이날을 세계 난민의 날로 의미를 확장해 지정하고 매년 기념한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인구 대비 난민 수용률은 세계 139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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