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범죄는 없다①] 누가 이들에게 '혐오' 낙인을 찍었나
입력: 2019.06.16 00:01 / 수정: 2019.06.16 08:02
이정하 파도손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들고 있는 그림은 이 대표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지금도 부업으로 디자인 일을 한다. /이동률 기자
이정하 파도손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들고 있는 그림은 이 대표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지금도 부업으로 디자인 일을 한다. /이동률 기자

조현병 환자는 잠재적 범죄자 아닌 '범죄의 피해자'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조·현·병(調絃病).

언제부터인가 조현병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다. 정신질환인 조현병은 원래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좀더 인권친화적으로 2011년 새롭게 이름 붙였다. 정신질환자를 향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자는 의미다.

한자어인 병명을 한 글자씩 뜯어보자.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이다. 현악기는 잘 조율되지 않으면 잠시 거슬리는 소리가 나지만 얼마든지 아름다운 화음을 되찾을 수 있다. 이 병도 마찬가지라는 걸 말해준다. 그렇게 개명까지 했지만 조현병은 여전히 혐오의 대상이다. 편견으로 뭉친 대중과 언론 탓이 가장 크다. 일부 범죄사건 피의자가 가진 조현병 병력에 초점을 맞춰 앞다퉈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다'는 프레임을 씌운다. 편견부터 혐오까지, 좀처럼 낙인을 지울 수 없는 환자와 부양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거절을 모르는 딸바보 아빠 큰형은 조현병 환자였다

유복한 집안의 7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이병범(62) 씨는 어린 날의 자신을 “엄마 아버지 말씀 지지리도 안 듣던 소년”으로 회상했다. 소년 병범 씨의 호전적 기질은 부모 말이라면 거절을 몰랐던 착한 형과 늘 비교대상이었다. 7살 위의 큰형 병은 씨는 학업 때문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지냈다. 열여덟 남짓 어린 나이에 서울 유학길에 오른 병은 씨지만 특유의 순수하고 선한 성격은 때타지 않았다. 장남을 귀하게 여기던 시대, 착하고 공부 잘하는 큰형은 집안의 자랑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병은 씨가 갑자기 길거리에서 이상 행동을 보였다. 허공을 보며 중얼거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손짓을 하기도 했다. 결국 병은 씨는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 충남 예산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장남을 예산에서 가장 유명한 정신과로 데려갔다. 그날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자식만 바라보고 살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와 남은 6남매 역시 그랬다. 병범 씨는 당시 상황을 “무너졌다”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우리 가족, 그때 다들 무너져 내렸어요. 그래도 형을 원망하진 않았어.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형제에게 양보할 줄만 알았던 우리 형은 그대로였거든.”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지난 그는 대학에서 의료행정학을 전공했다. 형처럼 조현병을 앓는 환자 곁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병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부회장(중간)이 지난해 충청북도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정신장애인 생활시설 사랑채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병범 부회장 제공
이병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부회장(중간)이 지난해 충청북도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정신장애인 생활시설 '사랑채'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병범 부회장 제공

큰 형은 가족들의 극진한 사랑과 체계적인 치료를 받아 결혼해 세딸까지 뒀다. "우리 형이 인물도 좋고 인기도 많았거든."(웃음) 사회생활도 꾸준히 하며 식구를 돌봤다.

"오히려 조현병 환자는 내면이 보통사람보다 더 착해요. 거절을 못 해. 형님은 살면서 모든 걸 저에게 양보했어요. 저는 아버지한테 대들고 따지기도 하고 했는데 형은 정말 착한 아들이었지. 다른 조현병 환자를 봐도 공통된 게 착해. 치료교육을 받으면 하지 말라는 건 절대로 안 해요. 너무 착하니까 가끔 자기 주장하면 강하게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비장애인들은 공격적이라고 오해하죠."

이순을 넘긴 그는 현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수석 부회장, 대전지부장을 맡고 있다. 별명은 '조현병 환자의 대부'다. 그의 60 평생을 좌우한 큰형은 2009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병범 씨는 큰형이 남긴 3명의 조카를 돌봤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조카들이 성장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모습도 지켜봤다. 딸들을 위해 중년의 나이에도 막노동도 피하지 않던 딸바보 큰형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진주 안인득 사건에 병범 씨의 마음은 무거웠다. 무고하게 생명을 잃은 피해자도 안타까웠지만 가뜩이나 취약한 조현병 환자에게 비난이 쏠렸기 때문이다.

‘2017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일으킬 확률은 주취자보다도 낮다. 살인 범죄자를 정신상태에 따라 분류하면 ▲일반인 47.3% ▲주취자 47.5% ▲정신질환자 9.3% 순이다. 방화 범죄자 역시 ▲일반인 41.5% ▲주취자 47.5% ▲정신질환자 11.0%였다. 전체 범죄자 중 정신질환자 비율은 0.4%에 그쳤다. 이에 반해 보건복지부가 2016~2017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자살률은 전체인구보다 8배 높았다.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도 인구 10만명당 조사망률 역시 2.9배 더 높다.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위협 당하는 존재'인 것이다.

조현병 환자를 향한 혐오는 그들이 항상 망상에 빠져있다는 오해에서 많이 비롯된다. 그러나 이런 증상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등만 조심하면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나마 치료와 관리를 받으면 문제가 없다. 병범 씨는 조현병에 무지한 사회가 야속하다.

"비장애인은 '쟤들은 365일 미쳤어' 생각하니 적개심을 갖죠. 관리만 잘 해줬으면 안인득 사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어요.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아쉬워요."

그런데도 사회는 조현병 환자들에게 색안경을 낀다. 정신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스템이 미흡해 제대로된 치료를 받기 어렵고 '정신병자'라는 낙인을 찍어 취업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막는다. 상처받은 가족도 감추려드니 환자들은 더욱 외톨이가 되고 피해의식에 시달린다. 공공, 민간, 개인이 돌이켜봐야 할 일이다.

“국가는 조현병 환자에 대해서 잘 몰라요. 사기업은 조현병 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자격이 충분한 입사자를 중도 탈락시키기도 하고, 중장년층 환자는 어린 시절 겪은 전기치료 트라우마로 아직도 힘들어해요. 그런데 사람들 이런 거 다 모르잖아. 정신질환을 불치의 병으로 만드는 건 우리 사회에요.”

◆'워커홀릭' 조현병 당사자 들어보셨나요

이정하(48) 파도손 대표는 어린 시절 그림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사람 없었지만 그의 실력은 빼어났다. 재능을 살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이 대표는 그날로 자취를 시작했다. 예술을 사랑한 이 대표에게 미대생 생활은 행복했다. 스스럼없이 깔깔댈 수 있는 친구들도 여럿 사귀었다. 이제 학생 티를 제법 벗고 3D 전문 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하던 20대 후반 어느 날, 지독한 불면증이 그를 찾아왔다. 곧 환각이 보이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이정하 파도손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이정하 파도손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이 대표는 조현병 발병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 신세를 졌다. 그러나 대학 친구들과 옛 직장동료의 변함없는 지지는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병세가 회복된 이 대표는 회사에 복직했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20대 때 빠릿빠릿하기로 유명했던 그의 손은 3주면 끝날 작업물도 두 달은 붙잡고 있었다. 그래도 동료들은 그를 변함없이 믿어줬다. 예전 같지 않은 손놀림, 고마운 동료들을 바라보던 이 대표는 같은 당사자(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로서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권단체 ‘파도손’이 만들어졌다. 2009년부터 구상해 2018년 정식으로 사단법인 인가를 받은 파도손에서 이 대표는 주말도 없이 일한다. 그래도 9명의 직원들은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등 ‘워라밸’을 지켜주고 있다고 뿌듯해한다.

당사자로서 정신질환자를 지원하는 일에 뛰어드니 많은 것이 보였다. 조현병 환자 특성상 내면세계가 약한 것을 약점 잡아 금전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근 불거진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이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이 대표는 많이 속상했다. 그러나 놀랍지는 않았다. 조현병은 물론 정신질환자에게 사기 피해란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 당사자는 성범죄에 노출돼 더욱 취약하다. 이 대표는 “정말, 나쁜 남자들 눈에는 딱 보이나 보다”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경미한 추행부터 성적 학대에 이르기까지 여성 당사자의 삶은 벼랑 끝이다. 고소도 어려워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쉽지 않다. 주말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90% 이상의 대다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능력이 없어요. 말도 잘 못하고 어리숙하고 오히려 범죄의 대상이죠. 범죄는 비장애인이나 주취자가 훨씬 더 많이 저질러요. 그런데 언론은 어쩌다 피의자가 조현병 병력이 있으면 병명만 부각시키며 혐오 프레임을 씌우죠. 그럴 수록 정신장애인 자살률은 높아져요. 이건 약자를 향한 살인이고 마녀사냥이에요."

서울 중구에 위치한 사무실 건물 옥상에는 작은 정원과 안방이 있다. 사회에서 고립된 당사자들이 언제든 찾아와 같은 당사자들과 교류하는 공간이다. 정원은 예쁜 꽃들이 가득하고 안방에는 텔레비전과 이불, 조현병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으로 빼곡하다. 병세가 심하지 않은 만성기 환자들이 사회생활을 하다 어느 날 가슴이 답답할 때 들어와 쉬는 곳도 이곳이다. 그들이 올 때 마다 커피를 타주다보니 이 대표의 커피 제조실력은 바리스타 못지않게 됐다.

이정하 파도손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이정하 파도손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이 대표는 취재진에게 어렵게 구했다는 자료를 보여줬다. 2017년 대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조사(국립정신건강센터) 보고서였다. 누구나 정신질환을 겪을 수 있다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 비율이 80%가 넘었다. 자신이 사는 곳에 정신질환자 이용 시설을 수용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그렇다” 응답 비율은 2015~2018년 연속 30%에 불과했다. 누구나 정신질환을 겪을 수 있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정신장애인을 끊임없이 타자화하는 모순이다.

"조현병이 범죄의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온 게 없어요. 병이 문제인지, 그의 인격이나 환경이 문제인지 진지하게 논의된 바도 없어요. 정신 비장애인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건 어떻게 설명하죠. 낙인 찍힌 정신장애인 당사자들만 죽어가요. 이런 혐오야말로 범죄입니다."

오늘도 이 대표는 모순과 혐오로 가득찬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병범 부회장 역시 당사자들의 사회 진출을 염원하는 한편 애지중지 돌본 그들이 나갈 사회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애브라함 링컨, 윈스턴 처질, 찰스 다윈, 프리드리히 니체, 빈센트 반 고흐는 모두 정신장애인이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모델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포브스 내쉬는 45년간 조현병을 앓았다. 세계가 기억하는 이들도 정신장애인을 보듬지 못 하는 사회에 태어났다면 잠재적 범죄자로 눈총을 받다 짧은 생을 마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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