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불안하다①]'홀로 여성' 노리는 검은손…대한민국에 안전지대 없다
입력: 2019.06.09 00:01 / 수정: 2019.06.09 15:06
한 남성이 5월 28일 새벽 6시 20분경 몰래 따라가던 여성의 집에 들어가려 시도하고 있다. 가해 남성 조모(30)씨는 다음날 스스로 자수했지만 성범죄 의도는 부인했다. /CCTV 영상 캡쳐
한 남성이 5월 28일 새벽 6시 20분경 몰래 따라가던 여성의 집에 들어가려 시도하고 있다. 가해 남성 조모(30)씨는 다음날 스스로 자수했지만 성범죄 의도는 부인했다. /CCTV 영상 캡쳐

CCTV 많아도 버젓이 범행…"1인가구 여성은 어디서나 표적"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오후 6시를 넘긴 시각, 평일인데도 서울 신림동의 한 작은 골목은 초여름을 식힐 맥주 한 잔을 들이켜는 직장인들로 가득 찼다. 서로의 손을 꼭 쥔 앳된 얼굴의 대학생 커플도 눈에 띄었다. 시간이 더 흐르자 골목은 모텔과 노래방이 내뿜는 네온사인에 물들었다. 날이 저무는 신림동에서 어둠을 찾기란 힘들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정말 몰랐어요. 특히 최근 2년 들어 동네 분위기가 많이 밝아졌는데…” 이곳에서 15년간 호프집을 운영했다는 사장 A씨는 소금에 절인 닭을 손질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6시 20분경, 한 남성이 귀가하던 여성의 뒤를 밟았다. 남성은 여성이 사는 빌라 집 문 앞까지 쫓아가 들이닥치려 했다. 여성이 다급히 문을 닫자 약 10분 간 문고리를 흔드는 등 앞을 서성이다 자리를 떴다. 원룸과 인근 상가에 설치된 CCTV는 남성이 여성을 쫓아 집에 침입하려는 긴박한 순간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해 남성은 조 모(30) 씨로 다음날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했으나 “성범죄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애초 조씨를 주거침입 혐의로 체포했으나 성범죄 의도가 확실하다고 보고 성폭력특례법상 주거침입·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주변 유동인구가 많아도 안전하지 않다. 사고 지점과 가까운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골목의 풍경.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한 골목은 오후 6시부터 불을 밝히더니 어둠이 깔리자 손님들로 가득 찼다. /송주원 인턴기자
주변 유동인구가 많아도 안전하지 않다. 사고 지점과 가까운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골목의 풍경.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한 골목은 오후 6시부터 불을 밝히더니 어둠이 깔리자 손님들로 가득 찼다. /송주원 인턴기자

◆ 신림동 원룸촌 가보니…젊은층 중심 왁자지껄한 동네

사건이 발생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일대는 ‘자취촌’으로 유명하다. 인근에 서울대학교와 각종 고시학원이 즐비해 학생 인구가 많고 회사가 밀집한 강남구, 서초구와 가까워 직장인들이 집을 구하려 눈을 돌린다. 특히 여성 1인 가구가 밀집해 서울시가 추진하는 '불안해소 4종세트' 시범사업 대상지이기도 하다.

이를 증명하듯 5일 이른 저녁 사건 현장과 맞붙은 신림동 골목의 한 24시간 셀프빨래방은 젊은 남녀로 북적였다. 다들 방금 집에서 나온 편한 옷차림이었다. 이곳에서 3년간 부동산 중개업을 했다는 A씨는 “높은 월세가 부담스러운 젊은 층이 학교‧직장과 가까우면서 집세가 합리적인 신림동을 많이 찾아 1인가구가 월등히 많다”고 했다.

다만 주민들은 이번 사건이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 혼자 사는 여성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현실은 어느 곳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한 주민의 말이다.

“여성 1인가구가 많아 CCTV도 많이 설치됐고 여성 안심귀가 서비스도 활발한데 이번 강간미수 사건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사방에 CCTV가 있고 유동인구도 많은데 환한 아침 시간에 미치지 않고서야… 동네 문제가 아니라 1인가구 여성이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혼자 사는 여성 주민의 의견도 비슷했다. 직장 때문에 상경해 신림동에 자리를 잡았다는 한 20대 여성은 “오히려 이 동네는 1인가구에 특화된 시설이 많아 나은 편"이라며 “여자 혼자 산다면 어디서나 부딪히게 되는 일”이라고 했다. 또다른 20대 여성은 취업 후 통근시간을 줄이기 위해 신림동에서 홀로 산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여성용 주거시설로 이사를 고려중이긴 하다”면서도 “여성용 원룸, 여성용 오피스텔 등을 생각 중인데 월세와 보증금이 (여성용이라는 이유로) 두 배로 뛰어 부담스럽다. 어차피 여성이 혼자 사는 이상 범죄의 표적인데 다른 곳이라고 얼마나 다를까 싶다”며 한숨을 쉬었다.

◆ 홀로 사는 여성 삶은 ‘만족’ 안전은 ‘글쎄’

1인가구란 말 그대로 혼자 사는 가구를 말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8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1인가구 수는 2016년 540만 가구로 집계돼 2인가구 수를 초월하며 한국의 가장 주된 가구유형이 됐다.

여성 1인가구의 만족도는 20대 82.7%(남성 71.2%) 등 전연령대에서 남성보다 높았다. 그러나 주거침입 등 안전을 우려하는 여성은 49.2%로 17.7%를 기록한 남성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사회 변화로 혼자 사는 여성 수는 늘어났지만 그 중 절반이 불안에 떠는 것이다. 실제로 1인 여성가구는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강지현 울산대학교 경찰학과 교수의 ‘1인 가구의 범죄 피해에 관한 연구’(2017년)에 따르면 여성 1인가구는 남성보다 범죄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2.276배 높았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를 받는 조모(30)씨가 5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를 받는 조모(30)씨가 5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로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소름끼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서울 마포구에 혼자 사는 직장인 여성 이 모(29) 씨는 2015년 누군가 현관문잠금장치(도어락)를 열려고 수차례 시도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씨는 “누르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여성 혼자 사는 걸 들킬까봐 말 한마디 못하고 떨기만 했다”며 “이번 신림동 피해자도 아무도 없는 좁은 방 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이해가 간다”고 했다.

스토킹 피해도 드물지 않다. 취업준비생 최 모(27) 씨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던 2016년 무렵 한 남성이 수차례 따라오고 지켜보는 등 스토킹 피해를 당했다. 최씨는 “알 수 없는 남성이 문을 열려고 시도하다 안 되니 그냥 내려가더라. 빌라 공동현관에 들어서는데 뒤에서 지켜보며 내가 몇 층에 사는지 세는 시선도 느꼈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결국 귀가할 때마다 당시 남자친구에게 신세를 져야 했다. 그래도 남성의 미행은 그치지 않았고 남자친구가 직접 따지기도 했으나 알 수 없는 헛소리만 늘어놨다. 뒤늦게 경찰에 2차례 신고했지만 CCTV가 없어 수사가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 그는 “경찰에 신고해도 해결되지 않아 학기 중에도 몇 달간 집밖에 나가지 못했다”며 “혼자 사는 여성이 위험에 처해도 막을 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한때는 사랑을 속삭이며 함께 걸었을 귀갓길이 공포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서울 중구에 혼자 사는 익명의 20대 직장인 여성은 2주 전 집주소를 아는 전 연인이 만취해 찾아왔다. 그가 허락도 없이 찾아와 공포감을 조성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이 여성은 “전에 사귀었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집을 찾아오는 경우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며 “연애할 때는 나를 지켜줄 것 같아 알려줬던 집주소인데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악용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고 전했다. 이번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며 “여성이 혼자 산다고 소문난 대학가나 원룸촌이면 어디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가해자 조모(30)씨는 피해자가 문을 닫은 후에도 10분간 문앞을 서성이며 초인종을 누르는 등 위협을 가했다. /CCTV 영상 캡쳐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가해자 조모(30)씨는 피해자가 문을 닫은 후에도 10분간 문앞을 서성이며 초인종을 누르는 등 위협을 가했다. /CCTV 영상 캡쳐

이번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피의자 조씨는 피해자의 집 안에 들어가지 못하자 10분 간 초인종을 누르며 위협을 가했다. 겁에 질린 피해자는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112를 눌렀다. 5분 만에 도착한 경찰은 건물 안에 들어오지 않고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초인종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철수했다. 피해자는 CCTV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른 시간을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결국 10시간 후 피해자가 직접 확보한 CCTV 영상을 제출했다. 관할서인 관악경찰서는 당시 출동한 경찰관의 대응이 바람직했는지 검토 중이다.

신원미상의 남성이 집 앞까지 쫓아온 비슷한 경험을 한 최 모 씨는 경찰에 분통을 터뜨렸다. 당시도 경찰은 CCTV가 없어 수사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최씨는 “이렇게 가시면 저는 어떡하냐”고 따졌으나 “수사해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결국 값비싼 잠금장치에 방범창까지 달고 방안에 숨어지내듯 살 수밖에 없었다.

최씨는 현재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자치구로 이사 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귀갓길마다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피게 됐다. “스토킹 기간이 오래됐다고 더 심각하고 말고 경중을 따질 일이 아니에요. 나보다 힘이 센 남자가 원하지 않는데 쫓아온다는 것 자체가 중요해요. 혼자 사는 여자는 어느 날 무슨 일을 당하면 그걸로 끝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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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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