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환섭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장이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대회의실에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뇌물수수 및 성범죄 의혹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
김학의 사건 외압 의혹 못 밝혀…"공수처 도입되면 재수사해야"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김학의 검찰수사단이 청와대와 전현직 검사의 부실수사, 외압 의혹을 하나도 밝혀내지 못 해 뒷말이 많다. 이 때문에 국회 패스트트랙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왜 필요한지 보여줬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이후 진행된 검경 수사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의혹의 규명은 검찰수사단에게 주어진 핵심과제 중 하나였다.
당시 사건을 초기 수사하던 경찰 지휘라인이 한꺼번에 물갈이된 게 첫번째다. 특히 임기가 넉넉했던 김기용 경찰청장이 김학의 차관 임명과 동시에 전격 경질됐다. 이어 수사 핵심 간부인 경찰청 수사국장, 수사기획관, 특수수사과장, 범죄정보과장이 모두 한직으로 물러났다. '오비이락'이라고 믿기 쉽지않은 상황이다.
수사단은 이를 '경찰청장 교체에 따른 통상적인 인사'라고 결론냈다. 경찰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별장 성접대 동영상을 입수 못 했다고 허위 보고한 경찰 지휘라인을 문책한 인사라고 반박해왔는데 그보다도 뒷걸음질친 수사 결과가 나온 셈이다.
법조계에서는 당시 수사의 기본 방향부터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당시 고검장이던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인 윤중천 씨의 관계 정황을 볼 때 당연히 뇌물수수 혐의를 조사하면서 김 전 차관의 통신, 계좌를 살펴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차관 체포영장과 출국금지 요청은 물론 건설사업자 윤중천 씨 등 관련자의 계좌, 통신 조회, 거주지 압수수색 영장 등 경찰의 영장 신청을 10차례 기각했다. 경찰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수뢰 혐의 대신 특수강간 등 성범죄 혐의만 파고 들었다. 특히 결국 김 전 차관을 한 번도 제대로 조사 못 한 채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검찰 역시 부패 혐의는 수사하지 않고 성폭행 피해자들의 진술을 검증하는데 치중했다. 김 전 차관은 무혐의 처리 직전 한 차례 비공개 소환해 "윤중천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진술을 받았을 뿐이다. 2014년 김 전 차관과 윤 씨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이 모 씨의 고발 건도 거듭 무혐의 처리했다. 외압이 없었다고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외압이나 의도가 아니었다면 무능했다는 이야기다.
이를 조사한 수사단은 당시 검경 수사 담당자들이 외압이 없었다고 진술했고 증거도 찾지 못 했다는 설명이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가 윤중천 씨와 유착관계를 의심해 수사를 촉구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고검장 등 고위 간부들도 6일만에 "단서가 없다"고 마무리했다.
뇌물수수·성범죄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
수사외압이 없었다는 결론은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4월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2013년 당시 수사 담당자들이 전화를 받고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고 답변한 것과도 어긋난다. 당시 인사조치됐던 이세민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도 수사단 발표 후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번 검찰 수사단 조사에서 당시 외압 정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밝혀 의문이 커진다.
김학의 전 차관은 2013년 초 차기 검찰총장 하마평에 오를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자 측에서 선호한다는 소문이 돈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총장 최종 후보에서 누락된 뒤 법무부 차관에 임명된 것도 이례적이었다. 법무부 차관은 보통 초임 고검장이 맡는데 검찰총장 후보들과 동기(사법연수원 14기)인 김 전 차관이 낙점됐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전 차관이 나오는 성접대 동영상이 있다는 첩보를 확인하고 "김 차관을 임명하면 정치적 부담이 예상된다"고 보고서를 올렸으나 묵살당했다고 밝혔다. 이번 검찰수사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처럼 미스터리한 과정이 모두 우연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검찰수사단은 2013년 성접대 동영상을 가장 먼저 입수했다고 알려진 이철규 자유한국당 의원(전 경기경찰청장)도 조사하지 않았다. 이 동영상 CD를 입수해 박영선 의원을 거쳐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에까지 동영상의 존재를 알렸다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서 "검찰이 나는 서면조사 한 번 안 했다. 이러니 제 식구 감싸기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수사단의 수사결과 발표 후 판사 출신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나뭇가지는 흔들렸는데 바람이 불지않았다는 말"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이 당시 검찰 수사라인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면서 공수처 찬성론의 입지가 커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공수처는 판사,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등 고위공직자의 범죄 혐의를 수사하고 일부 기소하는 기관이다. 검찰이 '제 머리를 못 깎으면서' 역시 검찰이 얽힌 의혹은 제3의 수사기관이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검찰과거사위에서 활동한 김용민 변호사는 5일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김학의, 장자연 사건 등 가운데)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사건들은 특검 수사를 하거나 아니면 조금 빨리 공수처가 도입된다면 공수처에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