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의 최고 책임자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
1차 구속 만기 8월 10일... 불구속 재판 가능성 높아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만기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통상 6개월 안에 끝내야 하는 구속 사건의 1심 재판이 4개월 만에 처음 열렸다. 공판 시작부터 양 전 대법원장이 1차 구속 만기일인 8월 10일이면 석방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35부는 5월 2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1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 정식 재판을 열기 위해 재판부는 그동안 모두 5차례에 걸친 공판준비기일을 거쳤다. 이들의 공판준비기일은 3월 25일부터 4월 15일, 22일, 30일, 5월 9일 진행됐다.
공판준비기일이 5번에 걸쳐 열리는 것은 다른 일반인들 형사사건과 비교해서도 이례적이지만, 중요 형사사건 공판에서도 전례가 흔치 않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 노골적으로 공판에 비협조하는 등 앞으로도 재판 지연 전략을 쓸 것으로 예상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사법 농단 의혹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첫 정식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
임 전 차장은 2일 법원에 재판부를 바꿔달라는 기피 신청서를 제출해 재판은 앞으로 더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상 검사나 피고인은 법관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을 때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법원은 기피 신청이 소송 지연을 목적으로 한 것인지 등을 판단한 뒤 기각 결정을 하거나 기피신청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앞서 임 전 차장측 변호인 11명 전원은 지난 1월 30일로 예정됐던 첫 재판을 앞두고 모두 사임했다. 이에 따라 임 전 차장의 첫 공판은 3월 11일에야 시작됐다.
검찰은 이미 재판이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갑자기 기피 신청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민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간사 최용근 변호사는 임 전 차장의 기피 신청을 놓고 "기피 신청 절차가 형사(절차)든 민사에서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문 일로도 보기 힘들다"며 "어느정도 재판을 지연하려는 의도로 풀이할 순 있겠지만, (기피 신청 자체를) 굉장히 희귀한 일로 볼 순 없다"고 설명했다.
서기호 변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8월에 풀려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본인만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려니 억울해 (자신의) 구속을 연장한 재판부에 불만을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출석을 앞둔 1월 11일 대법원 정문 앞에서 대국민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공판준비기일부터 정식재판까지 검찰의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등을 지적하며 재판 진행 속도를 지연시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측 변호인은 29일 첫 재판에서 검찰이 공소사실 요지를 낭독하며 입증계획을 설명하자 형사소송법상 부적절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또 증인신문 순서 등을 놓고도 공방이 이어지면서 재판부의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재판부는 이날 오후 서류증거 조사를 예정했지만, 대부분 사안에 양측의 의견이 대립하면서 공판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검찰은 변호인이 심리와 관련이 없거나 중복되는 주장을 한다며 재판장의 신속한 재판 진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고려대 로스쿨 하태훈 교수는 "재판에서 피고인에게는 보장된 방어권이 있지만, 통상 재판에서 피고인은 재판부에 잘못 보일까 염려해 양 전 대법원장측처럼 강력한 주장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도 "일반적으로 변호사들이 재판부에 양 전 대법원장측 변호인들처럼 강력하게 본인들의 주장을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재판부 역시 변호인들의 주장 등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차 구속 만기일인 8월 10일까지 앞으로 남은 기간은 69일. 지금처럼 주 2회 재판이 진행된다고 해도 이전에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이 끝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형사재판에서 불구속 재판은 기본원칙이다. 하지만 구속과 불구속 판단이 피고인 신분에 따라 달라진다면 더이상 원칙이 될 수 없다. 그런만큼 재판부는 첫 공판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공정성 시비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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