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이 되고 싶어요②] "우리는 죽기 싫다…생존할 기회를 바랄 뿐"
입력: 2019.05.26 00:01 / 수정: 2019.05.26 12:31
앙골라에서 탈출한 루렌도 가족은 반년째 인천공항에서 난민 인정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난민 심사 소송 패소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루렌도./뉴시스
앙골라에서 탈출한 루렌도 가족은 반년째 인천공항에서 난민 인정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난민 심사 소송 패소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루렌도./뉴시스

난민 특수성에 무지한 인정 심사…아동 인권도 ‘나 몰라라’

[더팩트ㅣ인천국제공항=송주원 인턴기자]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난민을 허용한 지 25년이 됐다. '최초 허용'이라는 수식어와는 달리 한국은 지난해 5월 말 기준으로 4만 470명의 난민 신청자 중 단 4.1%만을 난민으로 인정했다. 최근은 더욱 엄격하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2015~2017년 난민 인정률은 1%대에 그쳤다. OECD 36개국 중 34위(2017년 기준)로 최하위권이다. 난민에게 한국의 문은 매우 좁다.

콩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구금과 폭행에 시달린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 역시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28일 한국에 온 루렌도 가족은 1월 난민 신청을 했지만 출입국관리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부는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인정을 받으려는 등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루렌도 가족 측의 주장은 다르다. 루렌도는 앙골라 내 콩고 출신이 겪는 신변 위협 등을 이유로 난민신청을 했지만 법무부가 주한 앙골라대사관에 조회 뒤 답변이 충분치 않자 경제적 이유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출입국관리소의 불회부 결정 때에는 조회조차 되지않았고 소송이 제기되자 뒤늦게 알아본 내용이라는 설명이다.

응쿠카 루렌도(47)는 지난 22일 <더팩트> 취재진을 만나 휴대전화를 빌려가더니 한 유튜브 영상을 보여줬다. 앙골라 경찰이 민간인을 도로 한복판에서 사살하는 영상이었다. 루렌도는 영상 속 피해자를 두고 "이너선트(innocent, 무고한)"라는 단어를 연신 반복했다. 영어로 '앙골라 경찰'을 검색하자 클릭하기 망설이게 되는 미리보기 화면의 영상들이 줄을 이었다. 영상 제목은 "경찰의 고문", "경찰 학대" 등이다.

루렌도는 지난 1월 법무부의 이같은 결정을 듣고 본국으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눈물을 흘렸다. "돌아가면 죽는다"는 일가족의 눈물에도 한국 난민법이 꿈쩍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 목숨 걸고 왔는데 강력범죄자 취조식 심사

일반적으로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망명자는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난민 신청을 한다. 이후 심사에서 난민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검토하고 회부 결정을 내린다. 불회부 결정이 나면 본국으로 강제 송환된다.

문제는 난민심사 과정에서 이뤄지는 조사다. 난민 인정을 원하는 망명자는 대부분 본국에서 박해에 시달리다 급히 입국한 경우가 많은데 심사를 진행하는 법무부는 이러한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수연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우리나라 난민 심사는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사유를 찾는데 초점을 둔다”며 “난민 심사 시 박해를 당한 구체적 장소와 날짜를 집중적으로 캐묻는 등 마치 강력범죄자를 취조하듯 심사한다”고 지적했다.

루렌도 가족 역시 유사한 경험을 했다. 심사관은 콩고 출신이란 이유로 앙골라에서 박해를 받았다는 그에게 “한국에도 지역감정이 있는데 그 정도 차별은 원래 있는 것 아니냐”며 신청자의 현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 루렌도 가족의 변호를 맡은 이상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한국 난민 심사는 난민 신청자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매우 부족하다”며 “전체적인 맥락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따져야 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의 날짜처럼 세밀한 부분에 집착하며 ‘말꼬리 물기’식으로 심사한다”고 했다.

또한 주된 난민 인정 사유인 소수민족 탄압, 반정부 활동 등을 증명하기 위해 체포 당시 구속영장이나 판결문 사본처럼 망명 중 챙기기 어려운 서류를 증거로 제출하라는 사례도 있다. 증거 자료를 요구해 신청자가 이를 제시하지 못하면 ‘난민으로 인정할 명백한 이유 없음’으로 분류된다. 전 변호사는 “난민 심사가 엄격히 이뤄져야 하지만 미국 대법원 판례는 박해 가능성이 10% 정도만 돼도 체류를 허가하는데 견줘 지나친 잣대”라고 했다. 유엔난민기구에서 발표한 난민지위 인정기준 및 절차 지침서에 따르면 "박해 사실이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신청인에게 유리하게 하라”고 규정한다.

예멘 출신 난민 인정자 이스마일씨가 2월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우리 곁의 난민이란 주제로 열린 청년정책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난민 관련 영상을 보며 눈물을 닦고 있다. /남윤호 기자
예멘 출신 난민 인정자 이스마일씨가 2월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우리 곁의 난민'이란 주제로 열린 청년정책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난민 관련 영상을 보며 눈물을 닦고 있다. /남윤호 기자

◆ 법적 절차가 간과한 아동인권…병원 진료도 안 돼

루렌도 부부에게는 3남 1녀의 자녀가 있다. 레마(9), 로드(8), 실로(8), 그라스(6)는 한창 학교에서 공부하고 뛰어놀 나이에 먼지가 가득한 공항 라운지 소파 위에서 빈약한 식사로 하루를 보낸다. 어머니 보베트(40)는 자녀의 학업 걱정도 크다. 궁여지책으로 공항 이용객이 선물한 한글 교재로 매일 한국어를 연습시키고, 간단한 산수 문제를 숙제로 내준다.

4남매는 짐을 푼 라운지 맞은편에 있는 키즈존의 ‘초통령’ 뽀로로와 사랑에 빠졌다. 얼마 전까지 자주 놀러갔지만 이제 그마저도 녹록치 않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이 수차례 찾아와 “나가라”고 소리쳐 많이 놀랐기 때문이다. 보베트는 그 남성 때문에 4남매가 화장실 가기도 무서워한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루렌도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였다"고 말했다.

정병수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난민 인정 문제와 별개로 루렌도 가족 아이들을 이대로 공항에 방치하는 것은 명백한 학대”라며 “의식주를 포함해 모든 것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 노출된 아동을 외면하는 것은 아동 기본권에 위배된다”고 했다. 한국을 포함해 193개국이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기본권을 생명권, 의사표시권, 고문 및 형벌금지, 불법해외이송 및 성적학대금지 등으로 분류한다. 최근 정 국장은 4남매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법무부에 왕진 목적으로 의사의 보안구역 진입을 요청했다. 법무부 역시 인천공항공사 측에 이러한 뜻을 밝힌 상태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영국으로 탈북한 난민 중 아동이 포함된 2건의 경우 성인이 될 때까지 체류자격을 부여한 판례가 있다”며 “부모가 동반한 경우에도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아동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적극적으로 고려한다”고 했다. 그는 영국으로 망명한 탈북자의 난민 심사 당시 영국 법정에서 직접 전문가 증언을 했다. 황 변호사는 "영국은 아동이 망명을 할 경우 성년이 될 때까지 보호한 후 성인이 되면 난민 심사를 진행하는 절차를 거친다"라고 설명했다.

루렌도 가족은 인천국제공항 라운지에 이어 붙인 소파 위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사진은 노트북을 하고 있는 3남 실로(왼쪽)와 간밤에 라운지가 유독 소란스러워 잠을 설쳤다는 막내딸 그라스(오른쪽). /인천국제공항=송주원 인턴기자
루렌도 가족은 인천국제공항 라운지에 이어 붙인 소파 위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사진은 노트북을 하고 있는 3남 실로(왼쪽)와 간밤에 라운지가 유독 소란스러워 잠을 설쳤다는 막내딸 그라스(오른쪽). /인천국제공항=송주원 인턴기자

법무부는 24일 테러대책실무위원회에서 국내 난민신청자 현황 및 문제점과 주요 개선사항을 설명하며 국내체류 난민신청자 신원검증과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명백히 이유 없는 신청’에 대한 불인정결정 절차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루렌도와 보베트는 “명백한 이유 없음”이라는 이유로 결정된 난민불회부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항소심을 앞둔 그들은 재판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루렌도는 “재판부에 전하고 싶은 말은 이뿐이다”라며 “우리는 죽음의 위험 속에 있었다. 그래서 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오랜 시간 고심하던 그의 아내는 번역기 특유의 어투로 옮겨진 호소를 내보였다.

“우리는 죽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 생존할 기회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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