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여성혐오 논란까지 번진 ‘대림동 여경 사건’
입력: 2019.05.22 05:00 / 수정: 2019.05.22 05:00
여성 경찰관이 취객 체포 중 미숙함을 보였다는 논란이 일자 서울 구로경찰서는 이를 반박하며 전체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기존 편집된 영상에 없었던 여성 경찰관이 취객을 제압하는 모습. /서울 구로경찰서 제공
여성 경찰관이 취객 체포 중 미숙함을 보였다는 논란이 일자 서울 구로경찰서는 이를 반박하며 전체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기존 편집된 영상에 없었던 여성 경찰관이 취객을 제압하는 모습. /서울 구로경찰서 제공

"경찰 근무환경부터 개선해야"…체력검정 강화도 추진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13일 오후 10시가 다 돼갈 무렵, 서울시 구로구 한 식당에서 술에 취한 중년 남성 2명이 난동을 부렸다. 신고를 받고 남녀 경찰관 2명이 출동했으나 취객은 남성 경찰의 뺨을 때리고 여성 경찰을 밀치는 등 위협을 가했다. 온라인에는 여성 경찰이 취객에 밀려나는 장면만 편집돼 떠돌며 “대한민국 여경의 현주소”라고 조롱당했다. 이에 구로경찰서는 여성 경찰이 취객을 무릎으로 누르고 제압하는 장면이 추가된 1분 59초 분량의 전체 영상을 공개했다. 이른바 ‘대림동 여경 논란’의 전말이다.

그러나 전체 영상 공개 후에도 여경의 취객 진압 능력에 대한 논란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여경이 주변에 있는 시민을 향해 “남성분 나와 달라”고 외친 것, 동료 남성 경찰에게 수갑을 채우라고 말한 것이 문제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경찰이 보호 대상인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수갑 하나 채우지 못해 동료에게 부탁하는 등 여경의 능력이 부족했다고 질타했다. 해당 여경은 강도 높은 비난을 한 누리꾼을 고소한 상태다. 구로경찰서는 “정신적 충격이 심하다”며 여경에게 휴가를 권고했다고 전했다.

여성계에서는 여경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을 넘어선 여성 혐오라는 의견이 나온다. 여성운동단체 '불꽃페미액션'의 한 활동가는 "이번 논란의 원인은 여경의 미숙함보다는 여성에게 쉽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사회 분위기에 바탕을 둔다"고 풀이했다. 그는 “최근 불거진 버닝썬 게이트 등 남성 경찰이 문제가 됐을 때는 ‘이래서 남성 경찰을 뽑으면 안된다’는 비난이 없었다”며 “해당 여경이 실제로 미숙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영상 속 여경 한명의 행동만 보고 여경 무용론까지 제기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설명했다.

13일 발생한 대림동 여경 논란이 여경무용론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경찰대학생 간부후보생 합동임용식장에 입장하는 여성 임용자들./뉴시스
13일 발생한 '대림동 여경 논란'이 여경무용론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2016년 경찰대학생 간부후보생 합동임용식장에 입장하는 여성 임용자들./뉴시스

신미영 대구여성회 사무처장 역시 이 논란은 영상 속 경찰의 성별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신 처장은 “만약 남성 경찰 2명이 동일한 방식으로 진압했다면 술에 취해 공권력을 방해한 취객에게 비난이 집중됐을 것”이라며 “직접적으로 경찰에게 위해를 가한 취객보다 진압하던 여경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지는 것은 여성에 가혹한 풍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 문제점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여경의 현장 대응이 논란이 될 정도로 미숙했는지도 의문이라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김양현 신라대학교 경찰학 전공 교수는 "진압 중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한 행위는 일반적인 상황이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평소에는 ‘경찰을 도와 범죄자를 진압한 용감한 시민’이라는 미담으로 승화될 해프닝”이라며 “경찰이 시민에게 협조를 요청해서라기 보다 여경이 부탁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여경 혐오를 넘어선 여성 혐오”라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경찰학 전공자로서 영상 속 여경은 인사불성인 상태에서 경찰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취객을 무릎으로 눌러 수갑을 채울 수 있게 도왔다. 미숙한 진압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구로경찰서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남성 동료에게 수갑을 채우라고 한 발언은 요청이 아닌 대답이었다. 여경이 난동을 부리는 취객을 무릎으로 누른 후 동료 경찰이 “(수갑) 채워요?”라고 묻자 “네, 채워요. 채우세요”라고 재차 대답한다. 당시 함께 업무를 수행한 동료 교통경찰관 역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여경이) 수갑을 준 것은 맞지만 함께 수갑을 채웠다”며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는데 여경이 취객을 완전히 제압했다"고 증언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21일 경찰 채용 체력검정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면서도 대림동 여경의 현장 대응은 적절했다고 평가했다./김세정 기자
민갑룡 경찰청장은 21일 경찰 채용 체력검정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면서도 '대림동 여경'의 현장 대응은 적절했다고 평가했다./김세정 기자

이번 논란은 경찰 선발 체력검사 기준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기초체력측정을 위해 실시되는 팔굽혀펴기의 경우 남성은 1분에 12개 이하를 하면 과락, 여성은 무릎을 대고 1분에 10개 이하면 과락이다. 팔굽혀펴기도 정자세로 하지 못하는 등 기초적 체력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여성 경찰이 배출된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경찰대학은 지난 4월 2021년 입시부터 남녀를 통합선발하고 여성 체력 검사기준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예를 들어 무릎을 땅에 대고 했던 여성의 팔굽혀펴기 자세를 남성과 똑같이 변경한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경찰 채용 때 체력검정 기준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21일 밝혔다.

그러나 체력 문제를 이유로 여경을 비하하는 건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가정폭력, 성폭력 등 여성 피해자가 절대다수인 범죄가 많은데 여경을 뽑지 말자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난색을 표했다. 팔굽혀펴기 자세 및 횟수에 대해서는 체력검정기준 자체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기준으로도 기초적 체력을 측정하는데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며 “실제 경찰 업무는 민원이 70%고 물리적 진압이 30%에 불과하다. 성별을 떠나 체력 측정 기준 자체가 과잉 수준”이라고 했다.

이현재 한국여성학회 대외협력위원장은 "여경 논란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사회적 약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심리에서 비롯됐다"며 “경찰의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보다는 경찰의 성별을 문제 삼으며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족한 인력과 장비 속에서 과잉진압까지 조심해야 하는 근무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번 논란을 두고 "대림동 여경의 행동은 침착하고 지적이었다.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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