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10년의 기다림' 장자연 하늘에서 운다
입력: 2019.05.21 02:23 / 수정: 2019.05.21 10:37
재수사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장자연 사건이 20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가 수사 권고를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사실상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사진은 2009년 당시 분당 서울대병원 고(故) 장자연 씨의 빈소. /더팩트DB
재수사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장자연 사건이 20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가 수사 권고를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사실상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사진은 2009년 당시 분당 서울대병원 고(故) 장자연 씨의 빈소. /더팩트DB

과거사위, 성범죄 재수사 권고않기로…확인 혐의도 공소시효 지나

[더팩트 | 장우성 기자] 10년 만에 재수사에 착수해 진실을 밝힐지 기대를 모았던 고 장자연 씨 사건이 사실상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됐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의 핵심인 성폭력 혐의를 수사 권고하지 않기로 20일 결정했다. 이밖에 확인된 혐의도 공소시효 문제로 처벌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초 장자연 사건은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맡은 사건 중에서도 가장 난항이 예상됐다.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피해자가 사망해 조사가 출발점부터 꼬였다. 검경의 부실한 수사로 변변한 증거가 남아있지 않았다. 강제 수사권이 없는 진상조사단의 한계도 뚜렷했다. 10년 전 사건이라 대부분 혐의가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아슬아슬해 수사 권고 결론을 내기에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했다. 장자연 씨의 옛 동료인 윤지오 씨가 뒤늦게 적극적으로 증언에 나섰으나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시비에 휘말려 동력마저 잃었다.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는 미궁에 빠졌다. 장 씨가 성접대를 강요받았다는 인물들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것으로 알려진 목록이다. 2009년 조사 당시 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했던 유족과 고인의 전 매니저 유모 씨는 이번 조사에서 애초 진술을 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이 있는 리스트를 봤다고 일관되게 증언한 사람은 윤지오 씨뿐이었다.

유일하게 공소시효(15년)가 남아 주목됐던 특수강간, 강간치상 혐의도 수사 권고에 이르지 못 했다. 고인이 약물에 따른 성폭행을 당했다는 윤지오 씨의 진술이 정황에 따른 추정인데다 다른 인물들의 진술도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20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과천정부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이 장자연 리스트 의혹 사건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20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과천정부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이 '장자연 리스트' 의혹 사건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뉴시스

13개월에 걸친 진상조사단의 활동이 성과가 없지는 않다. 의혹만 이어지던 검경의 부실 수사가 윤곽을 드러냈다. 당시 검찰과 경찰은 일반적인 수사관행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수사를 벌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장자연 씨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중요한 단서인 수첩, 다이어리, 명함 등을 빠뜨린 것이 확인됐다. 특히 핵심 증거인 장자연 씨 휴대전화의 통화내역 원본과 디지털포렌식 결과를 수사기록에 남기지 않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장자연 문건에 언급된 '조선일보 방사장'이 방상훈 사장이 아니라는 점만 확인했을 뿐 누구인지 수사를 하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소속사 대표인 김종승 씨의 접대 강요, 강제추행 혐의도 석연치않게 불기소 처분했다는 판단도 나왔다. 다만 부실 수사 정황이 드러난 당시 수사 인력들은 시효가 지나 처벌은 불가능하다.

조선일보 관계자의 연루 의혹을 좀더 구체화했다. 10년 전 장자연 문건에 언급된 '조선일보 방 사장'과 '방 사장님 아들'을 각각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대표와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로 거론했다. 이동한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 강희락 경찰청장,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을 만나 압력을 넣은 정황도 밝혀냈다. 다만 특수협박죄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는 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즉각 반발했다. 과거사위의 발표 후 "일부 인사의 일방적 주장과 억측에 근거해 마치 조선일보가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것처럼 단정적으로 발표해 유감을 표명한다"며 "사실을 바로잡고 조선일보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법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이밖에 장자연 씨가 직접 쓴 문건이 대체로 사실에 부합한다는 점, 술접대 강요와 폭행, 협박에 시달렸다는 사실도 확인했으나 모두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 대상은 되지 않는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장자연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코리아나호텔 홈페이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장자연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방용훈 코리아나 호텔 사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코리아나호텔 홈페이지

앞으로 장자연 사건의 진상이 규명될 가능성이 100% 없는 것은 아니다. 검찰과거사위는 2024년 6월 29일까지 이 사건 기록 및 조사단 조사기록을 보존하라고 권고했다. 공소시효 완성 전에 특수강간, 강간치상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등 증거가 확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 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는 전 조선일보 기자 조 모 씨의 재판도 진행 중이다. 조선일보가 국회에서 '방사장'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던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재판에서 위증한 김종승 씨도 수사 권고 대상에 올랐다. 국외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씨는 진상조사단의 소환에는 불응했다.

장자연 사건 조사에 참여했던 진상조사단 김영희 변호사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찰이 스스로 성폭행 혐의를 수사를 하리라고는 정말 기대하기 어렵다"며 "그나마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부분은 정치권, 시민이 잘 판단하셔서 장자연 씨의 진실이 묻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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