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버스재벌' 놔두면 버스대란 못 막는다
입력: 2019.05.15 11:11 / 수정: 2019.05.15 11:11
서울시버스사업조합과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의 2차 노동쟁의조정 회의에서 합의안이 도출된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서종수(왼쪽부터)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피정권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시버스사업조합과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의 2차 노동쟁의조정 회의에서 합의안이 도출된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서종수(왼쪽부터)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 피정권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모럴해저드' 준공영제 개선 목소리…완전 공영제 도입 주장도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이 주52시간 노동에 따른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며 추진했던 11개 지역 234개 사업장 동시 파업이 막판 노사합의로 철회되거나 일부는 유보됐다. 정부는 이 기회에 버스 준공영제를 확대한다는 방침이지만, 오히려 도입 15년을 맞은 준공영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비슷한 위기는 되풀이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파업의 표면상 이유는 52시간 노동제 실시에 따른 버스노동자들의 임금 감소다. 이들의 임금은 초과근무수당이 평균 절반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임금 보전을 위해 버스요금 인상, 준공영제 및 재정지원 확대 등의 정책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나 2004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처음 도입해 전국 주요 광역단체로 확산된 버스 준공영제를 이 기회에 개선해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현재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제주 등 7개 광역시도에서 실시 중인 수입금관리형 버스 준공영제는 민간기업이 버스노선 소유권을 갖고 운영하고, 지자체는 버스회사의 적자를 보전해주면서 노선 조정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버스는 대중교통으로서 공공성이 크다. 적자가 나지만 시민 편의를 위해 유지해야 하는 노선이 대부분이다.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요금인상도 가능한 억제된다. 이에 따른 버스회사의 고질적 경영난과 서비스 질 추락, 승객 안전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민간 버스회사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서울시의 경우 2018년 시내버스 회사에 지급된 지원금은 5400억원에 이르며 2004년부터 계산하면 3조원이 넘는다.

서울시 한 시내버스 정류장. /더팩트DB
서울시 한 시내버스 정류장. /더팩트DB

그러나 버스회사들은 적자상태를 유지해도 지원금으로 채울 수 있어 경영을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 임원에게는 수억원대 연봉을 지급하는 등 '모럴 해저드'도 보였다. 일반버스 면허는 한번 얻으면 기간 제한이 없어 상속, 족벌경영도 가능하다. 상황이 이러니 승객 서비스나 버스노동자 처우 개선도 한계가 명확하다.

지난 1월 민중당 서울시당과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시내버스 준공영제가 '버스재벌'을 양산하고 있다"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버스회사가 지원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무리한 운행을 요구하는 등 기사에게 부당한 업무지시를 한다는 지적도 했다. 지난 2월에는 부산의 한 버스업체 대표가 친인척 등을 허위로 직원 등재해 급여를 지급한 뒤 이를 되돌려받는 등 수법으로 회삿돈 32억원을 빼돌려 재판을 받게된 적도 있다.

버스노동자들의 권익도 침해받는다. 특히 일부 버스회사들은 버스 대수 당 표준인원을 정해 정비인력 인건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악용하기도 했다. 표준인원에 맞춰 인건비를 지원받고 실제로는 더 적은 인원을 저임금에 높은 노동강도로 운영해 절감효과를 보는 것이다. 운전인력도 서울을 제외하면 처우가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같은 불법·비리, 방만경영 실태가 발견돼도 지자체가 민간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게 문제다. 또 버스면허 취소권은 지자체가 아닌 국토교통부 소관이라 강력한 제재 수단도 마련할 수 없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실에서 이해찬 대표와 버스관련 협의를 한 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실에서 이해찬 대표와 버스관련 협의를 한 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 때문에 준공영제를 아예 완전공영제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처럼 지자체가 개별 버스사업자의 사업권을 인수해 시내버스를 직접 운영하자는 것이다. 부실 사업자 퇴출로 경영 전문성과 공공성이 강화돼 서비스가 향상되고, 버스노동자들의 처우도 더 나아질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취임 초기인 2012년 완전공영제 실시를 검토한 적이 있다. 아무리 지원해줘도 만성적자를 벗어나지 못 하는 버스업체 대신 지하철공사처럼 버스공사를 설립해 서울 시내버스를 운영한다는 구상이었다. 공공운수노조는 "적자노선과 신설노선부터 완전공영제로 운영하고 사유화된 노선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법·제도를 개선하여 공공재인 노선권을 지자체가 소유하고, 직접 운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완전공영제는 사업권 인수에 막대한 비용이 들고 자칫 사유재산 침해 시비를 부를 수 있다는 게 걸림돌이다.

준공영제 아래서 표준운송원가 산정방식을 개선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표준운송원가는 지자체가 버스회사에 주는 지원금을 산출하는 기준이다. 인건비, 보험료 등 버스 한 대 운영 비용에 총운송수입의 3.61%를 더하면 표준운송원가가 된다. 여기에 실제 수익이 미달하면 지자체가 지원금으로 채워준다. 그러나 버스회사가 제공한 회계 자료에 의존하는 등 원가계산이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2018년 발표한 버스준공영제 보고서에서 지자체와 버스 노사,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버스준공영제 운영관리법인을 설립해 표준운송원가 항목별 전용을 금지하는 등 원가를 객관적으로 결정·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버스업체들이 한번 노선면허를 얻으면 영구 소유가 가능한 일반면허 방식을 한정면허 방식으로 바꿔 지방정부의 재갱신 심사를 받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 버스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권이 강화되고 부실한 업체는 노선면허를 회수할 수 있는 효과가 기대된다. 정부가 준공영제를 확대할 때 노선을 새로 조정하면서 아예 한정면허제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이영수 연구위원은 "현재 준공영제는 준공영제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준공영제를 명시해 지원금을 받는 버스회사들이 법적 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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