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5일 오후 경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
"아직 선고가 남았다" 서로 위로…반대 시민과 설전도
[더팩트ㅣ수원지법 성남지원=송주원 인턴기자] 과거 아이돌그룹 팬클럽은 가수의 이미지와 팬덤의 성격을 살린 색깔의 풍선을 응원 도구로 썼다. 이를테면 1998년 데뷔한 핑클 팬클럽은 '펄레드'(은빛이 도는 붉은 색) 풍선을 썼다.
25일 오후 2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허위사실공표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1심 결심 공판이 열린 날, 지지자들은 노란 풍선을 들었다. 지지자들은 풍선 색깔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희망"이라고 답했다.
공판이 열리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있다. 출구를 나와 법원으로 가는 길에 ‘희망 이재명’이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은 지지자 3명이 잔뜩 찌푸린 날씨와 대비되는 커다란 노란 풍선을 차에서 서너 개 가량 꺼냈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불지 않은 풍선 몇 개, 공기주입기도 꺼냈다.
25일 이재명 경기지사 결심공판을 앞두고 이 지사를 지지하는 문구가 적힌 깃발이 노란 풍선과 함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
법원 정문 앞에는 이 지사의 무죄를 촉구하는 ‘100만인서명운동본부’에서 나온 지지자 두 명이 작은 부스를 차려 놓고 서명운동 중이었다. 부스에는 역시 노란 풍선이 굴러 다녔다. 서명을 받고 있던 본부 성남지부 소속 C씨는 "오늘 재판에서 검찰의 구형이 이 지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나오길 바라는 희망, 그리고 이번 일이 잘 해결돼 이 지사와 지지자들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고자 하는 희망이 (풍선에) 담겼다"며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지자들은 이 지사를 향한 마음을 고수하겠다는 약속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지사가 받은 혐의에는 "이 지사가 워낙 청렴한 분이라 다른 정치인들과 출발점부터 다르니 정적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이 지사의 혐의는 정적이 정치적으로 개입한 의도가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짧은 인터뷰를 하는 사이 서명이 쉼없이 이어졌다. 자리를 뜨기 전 C씨는 "언론은 다들 이 지사 혐의 자체에만 관심이 있지 이 지사의 평소 성품, 혐의에 개입됐을 정치적 의혹에 대한 기사는 하나도 없더라"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 지사 결심공판이 열린 수원지법 성남지원/송주원 인턴기자 |
비교적 아담한 법원 맞은 편에 위치한 종합민원실 앞에는 100명이 넘는 이 지사의 지지자가 모였다. 일부는 목에 ‘일반인 방청권’을 걸고 방청을 기다리며 이 지사를 응원했고 또 다른 지지자들은 셀카봉을 들고 ‘개인 방송’을 했다. 스마트폰을 향해 이 지사의 무죄 이유를 열거했다. 누가 취재진이고 지지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재판 시각이 다가올수록 분위기는 격해졌다. 이 지사가 자신을 납치해 정신병원에 감금했다고 주장한 김사랑(가명) 씨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 씨를 본 지지자들은 일제히 "김사랑은 나가라", "민주경찰 파이팅, 김사랑을 끌어내라"고 소리쳤다. 김 씨가 주차차단기를 붙잡고 놓지 않은 탓에 경찰이 주춤하자 "경찰관들 뭐하냐. 지지자들은 이렇게 막아 놓고 저 여자는 왜 그냥 두냐"며 "곧 지사님 들어오시는데 질서 유지해라"고 호통쳤다.
김 씨는 2015년 5월 2일 이재명 지사의 페이스북에 댓글을 단 후 성남시와 이벤트업자로부터 9건의 고소·고발을 당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항소를 준비하던 중 성남경찰관들에게 체포 연행돼 정신병원에 감금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지사는 "김 씨가 SNS에 자살 암시글을 게재해 신병확보 신청을 했다. 경찰이 신병확보에 따라 보호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5일 오후 경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
김 씨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 씨와 함께 온 한 남성은 지지자들을 향해 "야, 이 빨갱이 XX들아"라고 소리쳐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졌다. 그러나 이 지사가 나타나자 응원 분위기로 전환됐다. 이 지사는 지지자의 응원에 옅은 미소로 답하며 빠른 걸음으로 법원에 들어섰다. 이 지사는 법정에 들어가기 직전 "법정에서 성실하게 (모든 의혹에 대해) 진술하겠다"며 "(친형 강제입원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의무였다"고 분명히 했다.
오후 2시 재판이 시작되자 지지자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이 지사의 지사직에 영향을 줄 결심공판인 만큼 구형량을 추측하는 발언에도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공직선거법 제266조에 따르면 공무직에 있는 자가 징역 또는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은 때에는 퇴직 처리된다.
검찰이 이 지사의 직권남용혐의에 징역형을 구형할 것이라는 말에 결과를 기다리던 한 지지자는 "(징역형이 확정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지사 죽이기’다"라며 "이번에 조현병 환자가 일으킨 범죄를 봐라. 그 지역 주민들은 시장에게 제발 강제입원 조치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어 "이 지사의 친형이 모 백화점에서 난동을 부리고 조울증 약을 복용하는 등 입원이 불가피한 질환자였다"며 "가족이지만 지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지난 22일 9시간에 걸친 피고인신문에서 "형님은 2002년부터 조증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는 어머니에게 패륜적 발언을, 성남시청 직원에게 갖은 욕설을, 백화점 직원에게 폭행을 행하기도 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3시간 30여 분에 걸친 재판 끝에 이 지사는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선거법위반 혐의로 벌금 600만 원을 구형 받았다. 거세지는 비에 법원 내 카페에 모여 대기하던 30여 명의 지지자들은 판결 소식을 듣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고 격분했다. 말없이 눈물을 삼키는 지지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구형이 선고는 아니다"라며 "(선고라 하더라도) 아직 항소심이라는 기회가 있다. 우리는 끝까지 함께 한다"고 서로를 북돋았다.
이재명 지사가 받는 혐의는 크게 네가지다. 우선 성남시장으로 재직한 2012년 4~8월 보건소장․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인 고 이재선 씨의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하고, 이를 부인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지난해 지방선거 운동 중 대장동 개발업적을 과장했고, 검사를 사칭해 벌금형을 확정받고도 누명을 썼다는 취지로 말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도 있다.
이 지사의 운명을 가를 최종심은 선거법 위반 사건 선고기한(6월10일)에 따라 5월 중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