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영수증 없어 피해신고 못 한다
입력: 2019.04.25 15:32 / 수정: 2019.04.26 08:53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이 25일 오전 서울시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이 25일 오전 서울시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사망·중증 폐질환 피해만 주목…경미한 피해도 인정해야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수많은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태 피해 신고가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증거가 없어서인 것으로 드러났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2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및 피해자 찾기 예비사업 결과보고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2011년 4월 한 임산부가 급성호흡부전 증세로 입원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해 5월 30대 여성 2명이 사망하고 6월에 가족내 집단발병이 발생하며 시작됐다. 보건당국이 8월 가습기 살균제 성분에 의혹을 제기하며 원인 물질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와 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PHG)을 지목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8년간 피해가 신고된 접수자는 6384명에 달한다. 특조위는 직접적인 피해가 드러나지 않았으나 유해물질이 포함된 가습기에 노출된 2646명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노출자 2646명 중 심층설문조사에 응한 303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신고를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증거(영수증, 사진 등)가 없어서"(237명, 78.2%)를 꼽았다. "건강피해를 증명할 방법을 몰라서"(229명, 75.6%), "피해인정질환에 해당하지 않아서"(187명, 61.7%), "피해신고 및 피해인정 절차가 까다로움을 인지하여서"(183명, 60.4%) 등이 뒤를 이었다.

이경석 (사)환경정의 유해물질대기센터 국장이 발언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이경석 (사)환경정의 유해물질대기센터 국장이 발언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이경석 환경정의 유해물질대기센터 국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 피해 중) 사망과 심각한 폐질환 피해만 주목하는 사이 경미한 질환 피해자의 피해사실은 파악되지 않았다"며 "라면 냄비에 손을 대더라도 냄비 온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환자 피부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피해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눈에 보이는 피해만 조사하는 조사기관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의 피해사실 신고를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용역수행으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은 "2012년 오늘(25일) 오전 10시경 두어 달 사이 임산부 폐렴 환자가 7명으로 급증했고 그 중 1명은 이미 사망했다는 의료기관의 신고가 들어 왔다. 이것이 이 사태가 알려진 첫 계기였다"며 "7년이라는 시간동안 정부의 피해자 조사는 자리에 앉아서 피해자 신고 전화를 기다리는 것에 불과했다. 노출자 중에 피해자라는 인식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더 적극적인 피해자 조사를 촉구했다.

특조위가 조사한 노출자 중 건강이상, 병원치료 경험 현황에 따르면 비염(14.7%), 기침(11.8%), 고열(3.9%) 등 살균제 내 유해성분에 따른 질환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운 증세를 겪은 것이 확인됐다. 안질환(2.6%), 아토피피부염(5.5%) 등 호흡기질환 이외 피해를 입은 노출자도 있었다. 경미한 피해를 입은 노출자의 경우 병원치료를 받은 경험이 2646명 중 485명(18.3%)에 그쳤다.

특조위는 4개월 간 진행된 조사사업을 통해 정부에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전국규모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및 피해자 찾기 시행 ▲전국 보건소 및 병원, 지자체 관계기관 및 초중고 등 교육시설 동원 ▲피해인정질환 확대 및 신속한 피해 구제 등을 제안했다.

검찰은 지난달 15일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이 만든 가습기를 유통한 애경산업 고광현 전 대표, 양모 전 전무, 직원 이모 씨를 증거인멸·증거은닉 교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박철 SK케미칼 윤리경영부문장 역시 지난 1일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고 전 대표 등은 살균제 원료 물질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등의 유독성을 알고도 은폐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폐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부문장은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이 진행한 ‘가습기살균제의 흡입 독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은폐한 혐의를 받는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사건으로 생명 또는 건강상 피해를 입은 피해자 및 그 유족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구제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지난 2월부터 시행 중이다.

ilraoh_@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