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탐지견 메이는 여기서…굳게 잠긴 서울대 연구동
입력: 2019.04.24 18:09 / 수정: 2019.04.24 18:28
동물권행동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2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수의생물자원연구동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복제사업 영구 폐지와 이병천 서울대 교수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동물권행동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2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수의생물자원연구동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복제사업 영구 폐지와 이병천 서울대 교수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동물단체 "복제사업 중단하고 책임자 파면하라"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송주원 인턴기자] 24일은 세계 실험동물의 날이다. 드넓은 서울대 캠퍼스에서 동물학대 의혹의 무대인 수의생물자원연구동 ‘85-1’ 건물은 사람의 발길조차 쉽게 닿지 못 할 곳에 있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캠퍼스안에서만 버스를 두번 타고 나서야 수의과대학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의과대학 ‘A85' 건물은 눈에 띄었으나 연구동이라는 ‘85-1’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등교하는 재학생 몇을 붙잡고 물어 봤지만 "’A85‘ 건물밖에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A85‘ 건물로 가면 뭐라도 보이겠지 싶어 앞을 기웃거렸다. 마침 건물 안에 있던 관리인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다. 인사를 건네고 ‘85-1’ 건물이 어디인지 물었다. 관리인은 굳게 잠긴 건물 문을 열지도 않은 채 퉁명스레 대꾸했다. "왜요. 이거 거쳐서 거기로 가게요? 안돼요. 돌아서 갓길로 가요."

서울대 수의생물자원연구동 85-1 건물./송주원 인턴기자
서울대 수의생물자원연구동 '85-1' 건물./송주원 인턴기자

이 건물을 거쳐서 갈 생각도 없었는데 싸늘한 태도가 언짢았다. 갓길로 들어서 좁은 길목을 지나자 이제서야 ‘85-1’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에 놓인 우산꽂이에는 꽤 많은 우산이 꽂혔지만 잠긴 건물은 조용했고 어둡게 코팅된 창문은 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다.

5년 동안 검역탐지견으로 일한 비글 ‘메이’는 지난 2월 이 건물 동물실험실에서 눈을 감았다. 동물단체들은 서울대 수의대에서 이뤄지는 복제사업 중단 및 이병천 서울대 교수 파면을 요구했다.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비글구조네트워크는 2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대학교 동물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윤리적인 복제관련 연구 및 사업의 원천 취소와 이병천 교수의 파면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은 ‘85-1’ 건물 근처에 있는 서울대 동물병원 앞 공터에서 열렸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단체에서 키우는 비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비글은 비에 젖은 풀 냄새를 맡느라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아가야, 까꿍," 사람들의 추파에도 아랑곳없었다. 비글은 곧 유 대표 품에 안겨 ‘85-1’ 건물 안에 갇혀 있을 친구들을 위한 공동성명을 가장 가까이서 듣게 됐다.

비글구조네트워크에서 키우는 비글 한마리가 85-1 건물 근처에서 주변을 탐색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비글구조네트워크에서 키우는 비글 한마리가 '85-1' 건물 근처에서 주변을 탐색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유 대표는 "관리탐지견으로 일하다 실험실에서 사망한 비글 ‘메이’를 보고 많은 분들이 분노하셨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 일한 사역견을 실험용으로 쓰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며 "개 한 마리를 복제하기 위해 수십 마리의 개가 죽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개식용 국가라 소모성으로 쓰일 복제견 공급 시장이 무한하다"고 했다. 이어 "국가가 지원하는 개 복제사업에 쓰이는 세금은 국익을 위해 일하는 사역견 복제 비용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수치"라며 "이렇게 거대한 금액을 들여 사업을 하는 이유에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이’는 2012년 이 교수 연구팀의 체세포 복제를 통해 태어났다. 농림축산식품부 소속으로 5년간 검역 탐지견으로 일하다 지난 해 3월 자신이 태어난 고향 ‘실험실’로 돌아갔다. 8개월 후 동물실험 윤리 감사 기간에 잠깐 모습을 드러낸 메이는 뼈만 앙상한 몸에 생식기가 비정상적으로 돌출됐고 사료를 먹으며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동물단체는 정액 강제 체취 등 학대에 가까운 복제실험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대는 지난 2월 ‘메이’의 사망을 발표했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송주원 인턴기자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사역견을 데려다 실험용으로 쓴다는 의혹을 접한 후 이 교수를 찾아가 탐지견을 입양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는 표정 하나 안 바뀌고 "(개를) 데려온 적 없다"고 했다. 그러나 관세청과 서울대에 직접 의뢰한 결과 탐지견 15마리를 데려와 복제연구 관련 인사인 이병천, 황우석, 신원을 알 수 없는 수의독성학과 교수 1명에게 양도한 사실을 확인했다. 조 대표는 "개를 복제하는 나라는 개 식용국가인 우리와 중국 등 하등한 윤리의식을 가진 사회에서만 이뤄진다"며 "서울대 수의학과 연구자로서 품격 있는 연구를 진행해 달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시민은 "여기 오는 길에 85동에서 울부짖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었다. 내내 조용하다가 우리(동물단체 등)가 몇 명 지나가니까 울더라"며 "나라를 위해 일하던 개를 데려가 실험하는 이런 일을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서 하고 있다. 이런 교수 밑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겠냐"고 울먹였다.

기자회견은 사회를 맡은 박선아 동물자유연대 활동가가 복제사업 철폐와 이 교수 파면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서를 읽고 마무리됐다.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참았던 활동가들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85-1’건물과 동물병원을 원망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성명서에는 ▲서울대 총장 사과 및 이 교수 파면과 영구적 복제연구 폐지 ▲실험동물법 및 동물보호법 개정 ▲서울대에 계류 중인 탐지견 ‘페브’와 ‘천왕이’ 동물권 단체로 이관 등의 요구안이 담겼다.

서울대는 지난 16일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통해 이 교수의 직무를 19일부터 정지하고 제기된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동물실험 계획서를 심사하고 사후 점검한 박모 교수 또한 스스로 사임했다고 밝혔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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