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피고 임종헌의 말말말..."언론플레이+프레임 전략"
입력: 2019.04.17 05:00 / 수정: 2019.04.23 08:32
사법 농단 의혹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3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첫 정식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사법 농단 의혹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3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첫 정식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검찰 "방청석 언론 상대로 변론하려는 시도 차단해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판 중 발언들이 연일 화제다. 그는 법적인 접근뿐 아니라 '미세먼지'나 '신기루'라는 비유를 쏟아내며 '변호인보다 더 변호인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튀는 발언에 견줘 효과는 미지수다. 서기호 변호사(전 판사)는 "임종헌 발언에 재판장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사실관계 주장도 아니고 법률적 주장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야 말로 언론을 의식한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이 만든 프레임에 재판부를 끌어들여 사건판단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이어 "성공적인 재판 전략일지는 불확실하지만, (사법농단 사태를) 잘 모르는 일반 대중, 특히 사법농단 수사를 반대해왔던 사람들에겐 일정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16일은 임종헌 전 차장의 공판 10회차다. 그동안의 재판을 진행하면서 '재판의 달인', '비유의 달인' 등의 별명이 생긴 임 전 차장의 말들을 정리해 봤다.

화가 페테르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작품, 시몬과 페로(로마인의 자비)/더팩트 DB
화가 페테르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작품, 시몬과 페로(로마인의 자비)/더팩트 DB

지난 3월 11일 임 전 차장의 1차 공판에, 별안간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이 소환됐다. 바로 17세기 화가 페레트 루벤스의 작품인 '시몬과 페로'인데, 이 때 법정에서 재판을 방청하던 기자들조차 일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 작품으로 봤다면 더 빨리 이해했겠지만, 예상치 못한 임 전 차장의 명화 변론에 당황한 것.

이 작품은 손발이 묶인 늙은 노인이 딸의 젖가슴을 물고 있는 모습이 담긴 그림으로, 로마시대 페로라는 여성이 아버지 시몬이 역모죄로 몰려 아사형, 즉 굶어 죽이는 방식의 사형 선고를 받자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감옥에 찾아가 간수들 몰래 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물렸다는 사연을 그린 작품이다. 로마 역사학자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쓴 '로마의 기억할 만한 업적과 기록들'에 나오는 일화를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차장은 이 그림을 통해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했다.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사람은 포르노라 하고, 어떤 사람은 성화라고 한다"면서 "그러나 노인과 여인은 아버지와 딸 사이로, 포르노가 아닌 성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고,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는 주장을 위해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을 자신의 재판에서 언급했다.

그리고 같은날 검찰의 공소장을 '신기루'에 빗대며 자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임 전 차장은 이날 재판부에 "공소장에 켜켜이 쌓인 검찰발 미세먼지로 생긴 신기루가 만든 허상에 매몰되지 말고 피고인 주장과 증인들의 주장을 차분히 듣고 무엇이 진실인지 심리, 판단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재판이 열린 3월 11일은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다. 여기에 특히 3월 5일부터 일주일 간 최악의 초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쳐, 2015년 초미세먼지 농도를 공식 관측한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라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 상태여서 임 전 차장의 '미세먼지' 비유는 시의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임 전 차장의 '신기루' 발언에 대해 검찰은 "신기루인지는 이 사건을 통해 규명돼야 할 것"이라며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왜곡하거나 재판부가 아닌 방청석의 언론을 상대로 변론하려는 듯한 임 전 차장의 시도는 차단돼야 한다"고 강력히 반박했다.

사법 농단 의혹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3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첫 정식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사법 농단 의혹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3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첫 정식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남녀 간에 썸만 타고 있는데, 불륜관계라는 것과 마찬가지"

이 말만 보면 친구나 지인들간의 대화라고 느껴지겠지만, 임 전 차장이 15일 자신의 재판 중에 한 발언이다. 이날 임 전 차장은 강제징용 사건에 외교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과 법관의 재외공판 파견이 재판을 두고 거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서로 대가관계가 없다는 것을 이같이 빗대어 답했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 법원행정처가 2013년 10월 작성한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 설명자료'를 증거로 법원행정처가 외교부 관계자를 지속적으로 만나 법관 해외파견을 성사하기 위해 설득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임 전 차장은 "외교부와 저의 인식은 전혀 두 사건을 대가관계로 인식하지 않았다"면서 "마치 남녀 간에 썸만 타고 있는데, 확대해석해 불륜관계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임 전 차장은 비유뿐 아니라 검찰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고, 검찰을 상대로 강의를 펼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은 지난달 19일 자신의 2차 공판에서 2014년 7월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을 불법으로 편성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놓고 검찰 측과의 법리 공방을 벌이던 중 반대 측에 앉아있던 한 검사가 미소를 띄자 "검사님, 웃지 마세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에 검사 측이 재판부에 곧바로 "주의를 주셔야 할 것 같다"고 항의하자, 재판부는 "그것은 재판부가 지적할 사항"이라며 "설령 그렇게 보였을지라도 앞으로는 그와 같은 발언은 삼가달라"고 지적했다. 이에 임 전 차장은 "주의하겠다"고 답했다.

임 전 차장은 같은날 검찰을 상대로 '행정법 강의'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직권남용 혐의를 부인하면서 검찰 측에 "행정법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라고 밝힌 것.

검찰이 "단순 위법한 지시를 한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을 시킨게 아니라는 주장은 처음 봤다"며 "그런데 지금 피고인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임 전 차장은 "공무원은 행정 조직의 일원으로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고, 직무상 명령이 명백하게 위법한 경우 복종의무가 없다고 행정법 교과서에 씌어 있으니 자세히 보라"고 맞섰다.

또 2일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의 증인신문에서는 증인신문 규칙에 대해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어기는 방식으로 신문이 이뤄지면 "피고인 측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것"이며 "재판부도 전향적으로 소송지휘권을 행사해 달라고"고 밝힌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임 전 차장의 행동에 대해 "여전히 자신이 판사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는 피고인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지적과 함께 "대선배인 피고인을 모시고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재판부가 매우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happ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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