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임정 마지막 부주석 김규식…삼청장 복원은 언제쯤
입력: 2019.04.11 05:00 / 수정: 2019.04.11 13:48
우사 김규식 생전 가족 사진. 앞줄 왼쪽 두번째가 우사와 손녀 김수옥 여사.
우사 김규식 생전 가족 사진. 앞줄 왼쪽 두번째가 우사와 손녀 김수옥 여사.

김구·이승만과 '동격' 민족지도자…복원 탄원에도 정부는 냉담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소녀는 미처 몰랐다. 무릎을 기꺼이 놀이터로 내어주시던 할아버지가 위대한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소녀는 더욱 몰랐다. 포연이 자욱했던 그날, 할아버지와 영원한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 할아버지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외롭게 자라셨어요. 그래서 저를 끔찍히도 예뻐라 해주신 거에요."

그 소녀는 어느새 할아버지 만큼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70년 전 어여쁜 손녀딸로 돌아간다. 김수옥(76) 여사의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는 우사 김규식(1881~1950)이다.

11일 10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마지막 부주석 우사 김규식은 후대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대표적 민족 지도자다. 당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0개국어를 구사하는 보기드문 엘리트였지만 중국에 망명해 독립군을 양성할 군사학교 설립을 추진했고, 몽양 여운형과 창당한 신한청년당 대표로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여해 국제사회에 독립을 호소했다.

1930년대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할 때 거꾸로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와 약산 김원봉과 민족혁명당을 창당해 독립운동의 통일전선을 구축했다. 상해 임시정부 초대 외무총장이자 백범 김구와 더불어 중경 임시정부의 기둥이었던 임정의 산역사다. 해방 이후에는 김구, 우남 이승만과 3영수(領袖)로 꼽히며 좌우로 갈라진 정세에서는 좌우합작을, 분단 위기로 치닫을 때는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등 남들이 가지않는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우사의 위상은 해방 후 그의 거처 '삼청장'(종로구 삼청동)에도 나타난다. 삼청장은 김구의 경교장, 이승만의 이화장과 더불어 해방정국의 3대 핵심 정치공간이었다. 이곳은 좌우합작위원회, 민족자주연맹의 본거지이자 1948년 민족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한 남북협상운동의 주무대였던 역사 현장이다. 분단이 현실화돼가던 1948년 4월21일, 우사는 마지막 희망인 남북협상을 위해 삼청장을 떠나 평양행 길에 올랐다. 38선에 도착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가 짚고 있는 38선 푯말을 뽑아버려야만 한다. 그것은 나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온 겨레가 합심한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후 귀국 환영대회에서 연설하는 우사 김규식
해방 후 귀국 환영대회에서 연설하는 우사 김규식

그러나 임정 100주년을 맞은 삼청장의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경교장과 이화장이 사적으로 지정돼 국가의 관리를 받는 반면 주택은 온데간데 없이 철거됐고 터만 남아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에게 넘어갔다가 국유지로 팔려 손을 델 수 없다. 우사의 손녀 김수옥 여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가보훈처에 삼청장 복원 탄원서를 냈다. '친일파는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가는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새 정부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정부는 소극적이다. 청와대는 삼청장 원형이 남아있지 않고 청와대와 가까워 대통령 경호상 문제로 복원이 어렵다고 통보해왔다. 지난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삼청장 복원에 관심을 비추기도 했으나 총리실 측은 "현재 진척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우사에 대한 국가의 예우도 늦었다. 이승만이 1949년, 김구가 1962년 국가훈장을 받지만 우사는 1989년에서야 차례가 돌아왔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납북 논란으로 왜곡하는 일부의 분위기도 한 몫 했다. 그러다 정부가 납북자로 공식 인정한 게 2013년이 돼서다.

김수옥 여사는 그날을 어렴풋 기억한다. 신당동 집밖에 놀러 나왔는데 거리에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하고 쓰러진 사람들이 보였다. 생전 처음 보는 시체였다. 주변에서 어딘가 "빨리 집에 돌아가라. 옆도 보지 말고 뛰어라"라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영문도 모르고 달아났지만 전쟁이 시작됐다는 건 뒤늦게서야 알았다. 당시 우사는 북한군이 징발한 삼청장에서 쫓겨나 후원서동 한옥에 묵었는데 9월18일 납북돼 같은해 12월10일 북한 만포진 부근 민가에서 눈을 감았다. 김 여사는 "70대 연로한 나이에 북한군에 끌려다니다가 참혹한 전쟁터에서 돌아가셨다"며 "부귀영화를 버리고 독립과 통일에 평생을 바치신 할아버지를 매도했던 사람들에게 당신은 나라를 위해 어떤 삶을 살았나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옥 여사는 지난해 8.15 하루 전 독립유공자 후손 중 한명으로 청와대에 초청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는 한번 했지만 삼청장 이야기는 꺼낼 기회가 없어 안타까웠다.

"올해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고 내년이면 할아버지가 서거하신 지 70주기가 됩니다. 하루빨리 삼청장이 복원된다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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