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출판업<하>] 독서인구 감소 '빨간불'…눈높이 맞춰야 '녹색불'
입력: 2019.04.02 05:00 / 수정: 2019.04.02 05:00
서울 반포동 센트럴파크 반디앤루니스 서점 /더팩트 이효균 기자(2018.07.28)
서울 반포동 센트럴파크 반디앤루니스 서점 /더팩트 이효균 기자(2018.07.28)

국내 출판산업계에 큰 충격을 준 출판도매상 송인서적 부도사태가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이 사태로 통합적 도서유통정보 시스템 미비, 어음관행 등 낙후된 출판 유통 구조 등 출판업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가뜩이나 독서인구 감소로 위축된 출판산업에 쓰나미급 태풍이 몰아친 것이다. 이후 정부는 '4차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내놓고 5년 동안 총 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이 사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출판유통통합시스템'의 개발은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본격화 되고 있다. 서점과 유통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보니 협의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이유다. 5G 시대, IT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어떤 책이 얼마나 팔렸고, 어디(서점)에 얼마나 남아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에 <더팩트>는 한국 출판업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출판사와 서점 업계 관계자 뿐 아니라 정부, 관련 학계 전문가 등에 대한 인터뷰 및 취재를 통해 우리 출판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도서앱·오디오북 등 전달방식 개발…독립출판 등 다양한 실험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최근 책 한권을 제대로 읽은 적이 언제인가요?'

문화체육관광부가 2017년 11월 발표한 '2017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1년 동안 일반 도서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의 비율인 독서율은 성인이 59.9%, 학생 91.7%로 집계됐다. 일반 도서는 교과서와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을 제외한 종이책이다. 2년 전인 2015년보다 성인은 5.4%포인트, 학생은 3.2%포인트 줄어든 수치다.

종이책 독서량은 성인 평균 8.3권으로 2015년 9.1권과 비교해 0.8권 줄어든 반면 독서자(책을 1권 이상 읽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면 평균 13.8권으로 지난 2015년 14권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에 반해 웹소설과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연간 전자책 독서율은 모두 증가 추세를 보였다. 2017년 기준 전자책 독서율 기준은 성인은 14.1%, 학생은 29.9%로 2015년과 비교해 각각 3.9%포인트, 2.7%포인트 증가했다.

독서 방해 요인으로는 성인과 학생 모두 '일(학교, 학원)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성인의 경우는 '휴대전화 이용, 인터넷 게임을 하느라’(19.6%), 다른 여가 활동으로 시간이 없어서(15.7%) 등이 뒤를 이었고, 학생은 ‘책 읽기가 싫고 습관이 들지 않아서’(21.1%), ‘휴대전화, 인터넷, 게임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18.5%) 순으로 집계됐다.

또 책 읽는 사회를 만들려면 '독서환경 조성 정책' 분야에서 '지역의 독서환경 조성', '생애주기별 독서활동 지원', '다양한 매체에서 독서 권장' 등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독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줄어드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본인의 독서량에 대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성인의 비율은 59.6%로, 2011년 74.5%, 2013년 67.0%, 2015년 64.9%로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는 반면 '만족한다'는 의견은 증가했다.

서울 반포동 센트럴파크 반디앤루니스 서점.
서울 반포동 센트럴파크 반디앤루니스 서점.

◆전문가들 "독자들이 찾는 매체로 콘텐츠를 전달해야"

하지만 책을 안 읽는 사람들만 원망하면 출판업계의 미래는 없다. 전문가들은 독서인구 감소 등 책이 외면받는 현실만 고민할 때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독자가 어떤 매체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주리 서일대 미디어출판학과 교수는 "최근 도서 관련 앱이라든지 오디오북 등과 연계돼 개발되는 것은 좋은 신호"라며 "기존 출판 콘텐츠가 새로운 형태로 옷을 입어 소비자들과 연결되는 것처럼 출판업계도 좋은 콘텐츠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눈높이를 출판업자가 아닌 소비자에 맞춰야 돌파구가 생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역시 "독서율이 떨어지고, 책 판매가 저하되고, 산업 규모도 축소되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수요자 맞춤형으로 가야만 해답이 나올 것"이라며 "출판사든, 유통사든, 서점이든 책 구매자들의 눈 높이에 맞는 전략들을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 상황을 단순히 출판계의 문제로만 볼 수도 없다. 독서습관과 책 구매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얽혔다. 실제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입시모드'로 전환돼 그 이후부터 학생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도 학교에서는 독서 교육을 이유로 학생들에게 독후감을 쓰라고 과제를 내줘 더 책 읽기 싫어지는 상황을 만든다. 백 대표는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독서=공부'라고 여긴다"면서 "고등학생들에게는 입시, 대학생들에게는 취업이라는 암초가 있지만 최소한 책이 싫어지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공부를 위해서 읽는 책도 있지만 오락이나 즐거움을 위한 책들도 많지 않느냐"면서 "책 읽는 풍경이 일상화되도록 산업적, 정부적 측면에서도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특히 "어릴때 부터 책은 즐겁게 재미있게 읽는다는 인식을 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출판산업 한 단계 도약 시킬 출판유통통합시스템" 기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올해부터 본격화하는 '출판유통통합시스템' 구축은 출판업계를 살릴 대안으로 꼽힌다.

한주리 서일대 교수는 "송인서점 부도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당시 정부는 근본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 정도만 내놓았다"며 "출판업계만 여전히 제대로 된 데이터가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지금이라도 출판유통통합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통계가 명확해지면 업계가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정부의 역할(출판유통통합시스템 구축)도 중요하지만 전국 단위로 서점들이 많이 생기고 대안적 직업으로 책과 관련된 직업들이 많이 생길수록, 우리 사회가 지적으로도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상상력이 기반인데 책을 읽지 않고는 답이 없다"고 덧붙였다.

통합시스템 구축과 함께 '도서정가제' 문제도 중요하다. 백 대표는 "2014년 11월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최대 15%까지만 도서할인이 허용되는데, 일반적으로 10% 할인, 5%마일리지 적립이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출판사 등이 미리 15% 할인을 대비한 가격을 염두해 두고 가격을 올려 책을 팔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모세혈관의 역할을 하는 중소서점들은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사진=아크앤북 인스타그램>
<사진=아크앤북 인스타그램>

백 대표의 이 같은 지적은 '도서정가제' 시행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출판사 편집자도 "취지는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내용은 고민해봐야 할 제도"라고 주장했다. 한 중소 서점 대표도 "책 가격이 동일해지면 큐레이션에 신경 쓰는 작은 책방들의 경쟁력도 훨씬 높아질 것"이라면서 "각각의 서점들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탄생 하게 되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서점을 찾는 독자들도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베스트셀러 만능주의 사라져야...다양성 필요

3년 여전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독립출판', '독립책방'이 인기다. 독립출판은 기성출판에서 다루지 못하는 주제나 규격화된 책의 형태에서 벗어나 작가가 기획, 편집한 대로 소량의 책을 내는 것을 말한다. 독립책방 역시 소규모로 이렇게 탄생한 독립출판물을 중점적으로 판매하는 곳을 칭한다.

오히려 최근에는 독립출판된 서적이 역으로 기성 출판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형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독립책방을 다니며 많이 팔렸거나 잘 기획된 책을 선택해 재편집 과정을 통해 다시 판매하는 것이다. 기성 출판에 비해선 적은 인원이지만 이미 한 차례 독자들의 검증을 받았고, 새롭고 특이한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보니 편집자들에게 인기다.

전문가들은 "대형 서점이 정한 베스트셀러는 무조건 좋은 책이라는 인식이 없어져야 한다"면서 "대형 출판업 중심으로 책이 향유되면 문화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양성이 생태계의 건강함을 증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도 "서점에 가서 책을 찾다 보면 엄청 많은 종류가 있는 듯 하지만 막상 자신이 원하거나, 적합한 책을 찾지 못하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라면서 "더 다양한 주제와 형태의 책들이 출판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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