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김학의가 던진 화두 '소훼난파'…실제 삶은 달랐다
입력: 2019.03.29 05:00 / 수정: 2019.03.29 05:00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당시 대전고검장)이 2012년 10월 대전고검 전 직원 대상 특강에서 자신의 화두 소훼난파를 설명하고 있다./대전고검 제공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당시 대전고검장)이 2012년 10월 대전고검 전 직원 대상 특강에서 자신의 화두 '소훼난파'를 설명하고 있다./대전고검 제공

평소 '법질서' 역설했지만 검찰에 역사적 오점 남겨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중국 후한 시대를 빛낸 선비 공융(153~208)은 조조(155~220)에게 눈엣가시였다. 일찌감치 조조의 야심을 간파한 공융은 촌철살인으로 '간웅'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는 조조가 형주 정벌을 위해 대군을 일으켰을 때도 서슴지 않고 비판했다. 구실만 찾던 조조는 마침내 군사를 보내 공융을 잡아갔는데 그 아들과 딸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바둑만 뒀다. 이웃들이 피신하라고 재촉하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새 둥지가 부서졌는데 알이 깨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安有巢毁而卵不破乎)

이야기를 전해들은 조조는 죽음 앞에 의연했던 두 아이마저 처형한다. 오빠는 9세, 여동생은 7세였다. 후한서 '공융전'에 나오는 이 일화는 '소훼난파'(巢毁卵破)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다. 국가와 사회가 무너지면 구성원도 온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소훼난파'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평소 좌우명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지검장 시절부터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대목에서 이를 즐겨 인용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법질서가 무너지면 국민도 설 자리가 없으니 이를 지키는 게 검찰의 사명이라는 취지였다.

김 전 차관은 검사장 승진 이듬해인 2008년 첫 부임지인 춘천지검에서부터 공개적으로 '소훼난파'를 화두로 던졌다고 한다. 지검은 물론 지청과 경찰서까지도 열심히 전파했다. 자신을 나락에 빠뜨린 성접대 동영상은 같은해 1~2월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한달여 뒤 인 3월 춘천지검장에 취임했다. 사건의 무대인 윤중천 씨의 별장이 있는 원주는 춘천지검 관할이기도 하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당시 광주고검장)이 2012년 8월 이임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광주고검 제공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당시 광주고검장)이 2012년 8월 이임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광주고검 제공

울산지검에서는 아예 '소훼난파' 상을 만들어 매달 근무실적이 우수한 팀에게 이 상을 수여했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노사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울산지검을 떠날 때 "재임 중 소훼난파의 정신을 지킨 덕분에 울산 노사문화가 안정됐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고등검사장으로 영전한 2011년 광주고검장 시절에도 취임 때부터 '소훼난파'를 강조했다. 당시는 이른바 '검사 성접대 사건'(2010), '벤츠 검사 사건'(2011) 등으로 검찰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을 때다. 그는 취임사에서 "국민의 눈은 정의의 칼보다 더 무섭고 매섭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최근의 몇몇 사건으로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소훼난파' 정신으로 개인과 조직이 함께 번영해야 합니다."

2013년 3월 법무부 차관에 임명되기 전 마지막 부임지인 대전고검에서도 '소훼난파'를 잊지않았다. 취임사는 물론 전 직원 대상 특강에서도 계속 화두로 꺼냈다.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소훼난파의 정신과, 즐겁게 일하는 낙락고취의 자세로, 꿈과희망, 뜨거운 열정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국민감동·국민신뢰·국민행복의 문을 활짝 열어나갑시다."

김학의 법무부 전 차관이 춘천지검장을 지내던 2008년 5월 직원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춘천지검 제공
김학의 법무부 전 차관이 춘천지검장을 지내던 2008년 5월 직원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춘천지검 제공

김 전 차관은 '소훼난파'와 함께 '충전형 조직'이란 논리도 즐겨 썼다고 한다. '방전형 조직'이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의존한다면 '충전형 조직'은 꾸준한 구성원 재교육으로 역량을 극대화한다. 이 때문에 직원 대상 외부 전문가 초청 특강을 자주 열었고 연구모임도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 앞에 서기를 즐겼고 친근한 화법으로 유명했다. 자신이 특강을 할 때도 파워포인트를 직접 준비하는 CEO식 특강으로 주목을 끌었다. 구성원에게도 허물없이 다가가 "친화력이 지나쳐서 탈"이라는 걱정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검찰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별장 성접대 의혹에 얼룩져 세번째 검찰 수사를 받게된 김 전 차관은 자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화두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돌이키기 힘든 과오로 스스로 '소훼난파'를 저지른 셈이 됐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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