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사상 최악 미세먼지'는 부풀려졌다
입력: 2019.03.25 05:00 / 수정: 2019.03.25 05:00
수도권에 닷새째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5일 오전 서울 도심 일대가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답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이동률 기자
수도권에 닷새째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5일 오전 서울 도심 일대가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답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이동률 기자

과거보다 개선 뚜렷…"공포 조장해 잘못된 정책 불러"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사상 최악,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

지난 5일 서울의 하루 평균 미세먼지(PM10) 농도가 186㎛/㎥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135㎛/㎥를 기록한 뒤 나온 한 일간신문 사설 제목이다. 이날은 지난 3월1~7일 7일 연속 미세먼지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기간 중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았다. 이 신문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언론을 비롯해 정치권, 시민까지 '사상 최악', '환경재앙'을 외쳤다. 시민들은 대부분 "미세먼지가 갈수록 악화된다" "요즘이 최악이다"라고 확신하는데 과연 그럴까.

정부가 전국 초미세먼지 농도를 공식 측정하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2015년부터다. 비교값 범위가 5년간이라면 '사상 최악'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사실 겸연쩍다. 2018년 8월1일 강원도 홍천의 기온이 41도를 기록해 '사상 최악 폭염'이란 말이 나왔다. 이는 1907년 기상관측 이래 111년간 최고 기록이라 설득력이 있다.

공식 측정 이전 좀더 과거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럼 최근 미세먼지가 정말 '사상 최악'인지 판단이 가능하다. 서울시가 자체 측정한 초미세먼지 농도 기록은 2014년치부터, 미세먼지 농도 기록은 1990년치부터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초미세먼지 농도는 미세먼지 농도의 50~80%정도다. 이를 근거로 1990년부터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를 유추할 수 있다.

서울시 대기환경통계 자료에 따르면 2003년 5월22~24일의 하루 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각각 221㎛/㎥, 216㎛/㎥, 205㎛/㎥로 3일 연속 200대를 기록했다. 70%로 잡고 계산하면 초미세먼지 농도는 154㎛/㎥, 151㎛/㎥, 143㎛/㎥가 된다. '사상 최악'이라던 지난 5일 농도보다 8~19㎛/㎥ 높다. 2003년 12월24일 미세먼지 농도는 246㎛/㎥이었으니 초미세먼지 농도는 172㎛/㎥에 이른다. 2004년 3월11일 미세먼지 농도는 289㎛/㎥에 달해 초미세먼지 농도는 202.3㎛/㎥이다. 2006년 4월8일에는 황사 영향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하루 평균 860㎛/㎥까지 치솟았다. 이밖에도 최근보다 훨씬 심각했던 고농도 미세먼지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1993년 6월27일 한겨레신문 사회면 톱기사. 당시 6월 한달간 이어진 고농도 미세먼지 영향으로 심각해진 대기질을 진단하고 있다.
1993년 6월27일 한겨레신문 사회면 톱기사. 당시 6월 한달간 이어진 고농도 미세먼지 영향으로 심각해진 대기질을 진단하고 있다.

개인적인 연구로는 더 오래된 측정치도 있다. 장재연 아주대 의대 교수(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의 1988년 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에 따르면 1986년 서울의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109㎛/㎥로 2018년 서울 연평균 초미세먼지 농도(23.0㎛/㎥)의 5배에 가깝다. 1986년 월별로 가장 나빴던 1월은 평균 160㎛/㎥로 2018년 가장 나빴던 2~4월의 53㎛/㎥보다 3배가 넘는다. 장 교수에 따르면 그해 초미세먼지는 하루 평균 최고 200㎛/㎥를 넘긴 날도 많았다. 2018년 3월 제정된 정부 미세먼지 예보기준을 보면 76㎛/㎥ 이상이 '매우 나쁨'이다. '사상 최악'이라던 올해 3월5일 초미세먼지 농도가 135㎛/㎥이다. 1980년대 대기질이 지금보다 훨씬 '최악'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라고 보기도 어렵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8년 발표한 전세계 194개국 2016년도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를 보면 한국은 125위 수준이었다. 가장 초미세먼지 농도가 낮은 1위는 뉴질랜드, 꼴찌인 194위는 네팔이었다. '미세먼지 조기사망자수'도 한국 미세먼지가 세계 최악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근거로 거론된다. 그런데 같은 해 WHO가 2016년 추정치로 발표한 초미세먼지에 따른 183개국 조기사망자를 보면 한국은 1만5800명이다. 한국과 총인구수가 비슷한 이탈리아는 2만8900명이고 가까운 일본은 5만4700명이다. 하루 시간대별로 보면 한국 미세먼지가 세계 최악인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간대별 농도로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것은 시민 건강과 대기질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장재연 교수는 "시민들이 계속해서 '사상 최악 미세먼지'라는 잘못된 정보를 믿으면 분노와 과도한 공포에 빠지고 정부는 제대로 된 해법을 실행할 수 없게 된다"며 "특히 언론이 왜곡된 미세먼지 지식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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