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기념 '낙태죄 존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기자회견이 2018년 11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리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여성 74.5%, "낙태죄 규정 형법 개정해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형법 제 269조 1항 및 제 270조 1항, 각각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다.
쉽게 설명하면 형법 제 269조 제 1항은 본인이 낙태를 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고, 제 270조 제 1항은 의사가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법규이다.
이같은 형법상 낙태 처벌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4월 중 위헌 여부를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4월 18일 임기가 끝나는 서기석·조용호 재판관 퇴임을 고려해 4월 11일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8월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이다.
2012년 당시에도 재판관 8명 중 4(합헌)대 4(위헌)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법률 조항의 위헌 선고에는 재판관 6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규정에 따라 합헌 판정이 났지만 양측 의견이 4대 4로 비슷하게 갈렸기에 이번 결정이 더 주목된다.
7년 전에는 재판관 9명 중 1명 자리가 공석이었으나, 이번에는 재판관 9명 모두가 참여한다. 이 때문에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위헌 의견을 내야만 낙태죄가 위헌으로 결정된다. 법조계에서는 단순한 합헌,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나 '한정위헌'이 될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헌법불합치'는 대상 법의 위헌성만 확인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론 위헌이다. 하지만 당장 이를 적용하지 않고 추후 해당 조항을 개정하라고 입법부에 요구하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그러니깐 임신 초기부터 말기까지 전 기간의 낙태를 금지한 것은 지나친 제약이라는 이유를 들어 헌재가 헌법위반이라고 결정하게 되면 국회는 임신중절이 가능한 기간을 정한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헌법불합치' 역시 위헌에 해당하므로 과거 낙태죄로 처벌받은 사람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재심 청구를 할 수 있어 상당한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2018년 5월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낙태죄' 합헌에 대한 공개 변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
이에 앞서 헌재는 2018년 6월 28일 병역의 종류를 한정해 놓은 병역법 5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결정으로 감옥살이를 하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대부분 가석방된 상태며, 국회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양심의 자유와 국방에 대한 의무의 충돌을 막을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2018년 12월 28일 대체복무제도를 입법예고했다. 종교 등의 사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역 복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육군 복무기간의 2배인 36개월을 교정시설 합숙 근무를 시키겠다는 내용을 담았으나, '징벌적 대체복무제'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정 위헌'은 법의 적용 범위를 축소시켜 위헌성을 제거하는 결정이다. 일례로 임신 초기에 해당하는 1~12주에 한해서만 임신중지를 허용해 줄 수 있다.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하게 된다면 임신 12주 이내 임신중지가 전면 허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2018년 5월 2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 법률에 대한 공개법률에서도 찬반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의사 A씨의 대리인들은 태아의 생명권은 이미 태어난 사람과 똑같이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더 존중돼야 하는 이유로, 낙태 허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낙태죄 합헌을 주장한 법무부 측은 "태아는 8주만 돼도 중요 장기가 형성되고, 16주가 되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태아도 독립된 생명권의 주체로 낙태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강변했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15~44세 인공임신중절 건수는 약 5만건으로 2005년 조사 이후 감소 추세이다. /뉴시스 |
젊은 층을 중심으로한 여성 사이에서는 낙태죄 개정 찬성여론이 우세하다. 70% 이상이 인식을 같이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 의뢰로 '인공임신중절 실태'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결과,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한 여성은 74.5%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온라인에서 2018년 9~10월, 만 15~44세 여성 1만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2011년 이후 7년만에 이뤄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임신중절 허용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응답도 48.9%로 절반에 가까웠다. 다만 40.4%는 이 법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모자보건법 제14조 및 시행령 제 15조에 따르면 강간이나 중간강으로 인해 임신이 된 경우나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는 우려 등이 있을 때는 임신중절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2017년 낙태죄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에 23만명 이상이 동의한데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현행법에) 국가와 남성의 책임이 빠져 있으며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우려가 있다"고 답변하는 등 분위기는 7년 전 '합헌' 결정 때와 달라졌다. 유남석 헌재소장도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초기 임신중절을 허용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happ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