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 비자금 횡령 및 삼성 뇌물 등 혐의로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지난 6일 보석 석방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에 관한 12차 항소심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
"또 말하면 퇴장시키겠다" 재판부 주의 후에야 "네"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은화 기자] "피고인이 뭐 어쨌다구요?"
6일 보석으로 풀려난 지 10일 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1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 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의 증인 심문이 진행되는 동안 변호인과 몇 차례나 대화를 나누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검찰이 이런 이 전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재판장님, 피고인이 검사가 말하는 중에 자꾸 말하면서 증인신문을 방해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이 전 대통령은 "피고인이 뭐 어쨌다구요?"라고 즉각 받아쳤다. 강훈 변호사도 "방해한 바 없습니다"라고 이 전 대통령을 변호했지만 정준영 부장판사는 "피고는 재판 중에 의견을 이야기 할 순 있지만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줬고, 이 전 대통령은 수긍한 듯 따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횡령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 내려 이동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
이날 이명박 전 대통령과 처음으로 법정에서 대면한 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2010년과 2011년 각각 청와대에 지원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원 전 원장은 변호인이 "2억원을 전달한 것이 대통령 지시냐"고 묻자 "그런 것을 대통령이 말하겠냐"며 이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에 선을 그었다. 또 해외 순방을 앞두고 이 전 대통령에 전달된 10만 달러도 "대북 접촉 활동 명목으로 준 것"이지 뇌물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원 전 원장은 또 반대 신문 때 "검찰 조사에서는 '남북 접촉이든 해외 순방이든 대통령이 필요한 업무에 사용하라고 전달한 것이지 실제 어떻게 사용했는지 전혀 모른다'고 진술하지 않았느냐"고 검찰측이 따지자 "당시에는 빨리 조사를 끝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진술한 것 같다"고 입장을 바꿨다.
본격적인 재판 시작에 앞서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은 국가 안보상 비밀 유지를 이유로 원 전 원장을 한 차례 더 불러 비공개 재판으로 증인 신문을 진행하고 싶다고 재판부에 요청했고, 검찰 측은 그 부분은 제외하고 진행하면 된다고 맞섰다. 재판 과정에서도 원 전 원장이 국가 안보상 비밀을 유지해야 하기때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며 진술을 얼버무리자 검찰 측과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양측의 신경전은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에 대한 증인 신문에서 더욱 격화됐다.
김 전 실장은 원세훈 전 원장 전임인 김성호 전 국정원장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을 독대해 국정원 자금을 용도 외로 쓰는 건 문제가 있다고 의견을 개진한 인물이다.
이날 김 전 실장은 이날 "음으로 양으로 사방에서 국정원 돈을 보태달라고 해서, 그런 건 곤란하지 않느냐"고 본인이 생각한 바를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김 전 실장이 검찰의 신문에 비교적 구체적으로 답하자 옆에 있던 변호인에게 "천재네"라고 말했다.
이에 검찰 측은 "피고가 맞은편 검찰석까지 다 들리게 말하고 있는데, 피고인은 증인의 상급자였고 현재 재판 상황에서 증인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재판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즉각 제지했다.
재판부도 이 전 대통령이 거듭 재판을 방해하자 "피고인은 절대로 말하지 말고 그냥 듣고 계시라. 그게 안되면 여러차례 재판부에서 검토한 바대로 피고인을 퇴장시키거나 차단막을 치는 등 조치를 해야 한다"며 "다시 검찰 측에서 이의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당부했고, 이 전 대통령은 "네"라고 답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이 열리는 날, 법원앞에서 기다리는 이재오 전 의원 |
앞선 두 차례 재판에도 참석한 이재오 전 의원은 이날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MB맨'으로 불리는 이 전 의원은 15일 재판에서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임을 증명했다. 방청석 첫 줄에 앉아 재판을 지켜보던 이 전 의원 역시 3차례나 법원 보안요원의 제지를 받은 것. 이 전 의원은 4시간 가량 진행된 이 전 대통령 재판을 지켜보면서 원 전 원장과 김 전 실장의 진술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법정 첫 줄 의자에만 붙어있는 책상 위를 툭툭 쳐 요원들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한편 이날 재판부터는 법정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 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13일 고법 홈페이지를 통해 15일 이 전 대통령 재판부터는 방청권을 배부한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 재판은 서울고법 서관 제 303호 법정에서 진행되는데 방청석 좌석이 총 34석에 불과해 기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재판을 보기 위해 좁은 법정에 몰리면서 재판 진행에 지장을 주자, 이같이 결정했다.
방청권 배부 결정에도 불구하고 15일 재판에는 관계인을 비롯한 60여명의 사람들이 이 전 대통령 재판의 재판을 보기 위해 법정을 찾았다. 예상보다 재판이 지체되자 피곤한 내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끝까지 재판을 방청했고, 일부는 4시간 가까이 진행된 재판의 내용을 모두 수첩에다 꼼꼼히 적기도 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0일 오후 2시 5분부터로, 이병모 청계재단 국장의 증인 신문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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