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르포-응급실 24시] '삐--' 삶과 죽음의 숨가쁜 교차로 <상>
입력: 2019.02.23 00:06 / 수정: 2019.02.23 21:31
응급센터의 24시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전쟁터와 같다. 119 구급대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이동률 기자
응급센터의 24시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전쟁터와 같다. 119 구급대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고대구로병원=이동률 기자

국내 응급의학계의 큰 별이었던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지난 설 연휴 근무 중 갑자기 숨지며, 열악한 응급의료 환경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환자는 많고, 의사는 적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응급실에 대한 인식 및 운영 등 다양한 문제로 응급의료 체계는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더팩트>가 국내 응급의료 현황과 문제, 개선이 더딘 이유를 집중 조명했다. 또한, 서울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과 함께한 24시간 동행 취재로 '전쟁터'와 같은 응급의료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한다. 나아가 전문가를 만나 우리나라 응급의료가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편집자주>

고려대구로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24시간 현장 취재

[더팩트ㅣ고대구로병원=임현경 기자] "사망하셨습니다."

영화에서나 듣던 '삐-' 소리가 그치고 환자 가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의사는 그들이 오열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당직실에 들어간 그는 잠시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떨궜다. 표정은 덤덤했지만, 한숨과 함께 내려앉은 한 마디는 무거웠다. "보낼 사람은 보내드려야지." 의사는 벌떡 일어나 환자들에게 돌아갔다.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그곳 '응급실'에서, 그가 숨을 고른 시간은 겨우 2분이었다.

'힘들다', '쉴 틈이 없다',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응급실 환경의 열악함은 각종 보도와 영화, 드라마 등 매체를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더팩트>는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실태를 보다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지난 19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을 찾았다.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중증응급환자 중심 진료와 재난 대비 및 대응을 위한 거점병원의 역할 등을 수행하는 곳이다. 보건복지부가 응급의료법 제26조에 따라 지정한 권역응급의료센터는 권역 내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 다른 의료기관에서 이송되는 중증응급환자 수용 등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는다. 취재진은 19일부터 20일까지 문자 그대로 '24시간' 응급센터에 머물며 응급의료 종사자와 환자들이 처한 현실을 체험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전공의는 주기적으로 24시간 당직을 선다. 휴식공간 내에서도 CCTV 모니터를 통해 센터 상황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동률 기자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전공의는 주기적으로 24시간 당직을 선다. 휴식공간 내에서도 CCTV 모니터를 통해 센터 상황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동률 기자

"새벽엔 몸에 식칼이 꽂힌 채 실려 온 환자가 있었어요."

오전 9시 30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의료진은 이날 오전 한 중년 여성이 부부 싸움 중 남편이 휘두른 식칼에 찔려 사망했다고 전했다. 왼쪽 겨드랑이 아래에서 심장을 정조준한 칼날은 환자의 주요 혈관들을 관통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의료진은 이를 'DOA(Dead on Arrival, 병원 도착 전 이미 사망한 경우)'라고 표현하며 "드물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센터에는 총 30개의 침대가 있고, 그중에서도 1번~16번 침대는 '중증응급환자진료구역'으로 집중 처치가 필요한 중증 환자들이 사용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몰리는 주말 저녁, 명절 연휴, 방학철 등에는 여분의 보조 침대를 꺼내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경증 환자들은 TR로 분류해 침대 대신 따로 마련된 대기실과 진료실을 이용한다. 일반격리실과 음압격리실, 소생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한 소생실, 외상에 대해 간단한 시술 및 수술을 할 수 있는 처치실도 있다.

소생실에는 체격이 아주 작은 남자아이가 누워있었다. 기껏 해봐야 4살 정도로 보였지만, 아이는 9살이었다. 통통한 젖살은 찾아볼 수 없이 비쩍 마른 몸, 발목·발등·무릎 뒤·손목 등 혈관이 보이는 모든 부위에 꽂힌 주삿바늘,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인공호흡기까지, 단번에 상태가 위중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전공의는 뇌에 있던 암세포가 뼈, 장기 등 다른 곳까지 전이된 상태라고, 집에서 꾸준히 통원 치료를 받았는데 오늘 새벽 '심정지 직전'에 이르러 실려 왔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이별하실지를 결정하실 때인 것 같습니다." 소아과 전문의가 환자의 증상, 예후, 의식 상태 등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두 발로 서있을 힘조차 없는 환자의 어머니는 등을 벽에 기대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DNR(Do Not Resuscitate, 소생 포기)'은 생명 연장이 오히려 환자의 고통을 지속한다고 판단할 때, 환자 또는 보호자는 소생술을 포기하는 경우를 말한다. 보호자는 이날 의사와 긴 상의 끝에 DNR 동의서를 작성했다.

응급센터에서는 CT를 주로 촬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MRI 촬영 도중 환자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환자가 CT 촬영을 위해 이송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응급센터에서는 CT를 주로 촬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MRI 촬영 도중 환자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환자가 CT 촬영을 위해 이송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오전 11시 45분 의료진은 1번 환자의 전원 준비로 분주했다. 당뇨 합병증으로 위독한 1번 환자는 응급 상황을 넘기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고대구로병원에는 빈자리가 없었고, 주변 여러 병원에 문의한 끝에 서울 중구에 있는 한양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수용하기로 했다. 의료진은 해당 병원 감염내과에 전화를 걸어 환자 상태와 주의할 점을 알리는 한편 인턴에게 구급차 내에서 이뤄져야 할 처치를 설명했다. "눈이 많이 와서 큰일이네. 차라리 내가 가고 싶다." 인턴을 혼자 보내는 레지던트(전공의)의 마음은 무거웠다.

아픈 사람은 쉼 없이 나타났다. 오전 11시 50분 28번 침대에 다리 저림과 복통을 호소하는 16세 환자가 왔다. 지하철에서 내리던 중 갑자기 실신했다는 것이다. 전공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실신 당시 의식을 잃었는지, 과거에 어떤 병력이 있었는지를 묻고 실신할 수 있는 이유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앞으로 받을 검사 종류와 그 이유에 대해 알렸다. 보호자(어머니)는 환자의 발에 핫팩을 대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윤영훈 센터장은 당직실에서 레토르트 컵밥으로 대충 점심을 챙겨 먹었다. 당직실 한쪽엔 컵라면, 컵밥, 초콜릿 등 비상식량들이 쌓여있는데, 어디 나가서 끼니할 겨를이 없을 땐 이곳에서 후루룩 허기를 달랜다. 이조차 환자들이 몰리는 때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윤 센터장은 재난 대비훈련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다. 권역 내 다른 병원과 함께 재난 상황에 대비한 응급의료 훈련을 하는 것도 권역센터의 몫이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1번 침대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잠시, 이번엔 근처 목재 공장에서 부상을 입은 환자가 실려 왔다. 처치실에 누운 그의 왼손에는 노란색 박스테이프가 칭칭 감겨있었다. 공장 동료들이 해줄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었겠으나, 본드가 얇게 발린 테이프 접착면이 상처에 좋을리 없었다. 허광렬 치프(Chief, 레지던트 4년차)가 가위로 테이프를 잘라내자, 깊은 상처가 검붉은 피를 쿨럭였다.

목재를 자르는 톱날이 그의 손을 벤 것이다. 신경은 살아있지만, 힘줄이 다 끊어진 상태였다. 간단한 응급 수술 후 정형외과에 입원해 정밀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응급구조사가 상처에 식염수를 붓고 지혈하기를 반복할 때마다 환자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상처보다 더 아픈 것은 그가 닥친 현실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놈인데 이래서야... 공장은 보험도 안 들었을텐데......." 홀로 누운 그가 허공에 힘없이 던진 말이었다.

응급센터 의료진의 옷과 신발에서는 혈흔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종종 갑작스러운 출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동률 기자
응급센터 의료진의 옷과 신발에서는 혈흔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종종 갑작스러운 출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동률 기자

"보호자 연락 닿았어요?" "10분 뒤 도착이요!" 1번 침대에 다른 병원에서 이송된 새 환자가 들어왔다. 체온, 심박 수(HR), 호흡수(RR), 혈압(BP), 산소포화도 등 바이털 사인이 엉망이었다. 기기가 요란하게 울어대며 그의 상태를 알렸다. 환자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이나 진료 내역 등을 물어도 돌아오는 것은 거친 숨소리뿐인데, 대신 대답해줄 보호자는 10분 뒤에야 도착한단다.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의료진은 옷을 자르고 약물을 주입하기 위한 관을 연결하고, 초음파로 의심스러운 질환 등을 살폈다. 다른 한쪽에서는 쇄골 밑으로 긴 관을 삽입했다. 쇄골하정맥을 통해 삽입한 관은 우심방에 닿아 각종 약물을 빠르게 주입할 수 있도록 한다. 1시 20분 1번 환자의 보호자가 도착했다. 의료진은 그에게 남편이 평소 음주나 흡연을 했는지, 가족 중 관련 질병을 앓다 돌아가신 분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울먹이며 고개를 젓기만 하던 보호자는 잠시 뒤에야 "몇 년 전 건강검진에서 '불규칙하게 뛰는 게' 있었다고 했다"고 어렴풋이 회상했다.

"응급의학과는 병을 찾아내는 탐정"이라던 허 치프의 말이 떠올랐다. 의료진은 환자가 기존에 진료받았던 병원 기록을 살피고 CT, 혈액검사 등 각종 검사를 시행했다. 일단 '불규칙하게 뛰는 것'이 부정맥이라는 데에 무게를 두고 본격적인 처치에 힘썼다. 내과 전공의가 보호자에게 예상되는 병명과 증상, 그에 필요한 처치 등을 설명했다. 의사는 가족관계를 물었고 보호자 는 "제가 아내고 딸이 두 명있다"고 답했다. 의사는 "한 가정의 가장인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며 보호자를 안심시켰다.

중증 환자실에 있는 모두의 이목이 1번 침대에 쏠렸다. 한쪽에선 처치를, 한쪽에선 바이털이 떨어지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그때 근처를 배회하던 또 다른 보호자가 퇴원을 독촉했다. "쟤는 낫는 병도 아니고 뭐 정신병인데 빨리 퇴원 좀 시켜봐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15번 침대. 한 중년의 여성이 몸 곳곳에 호스를 꽂은 채 고통스럽게 누워있었다. 정신질환일리가 없었다. 나중에 전공의에게 들은 바로는 '요로 감염으로 입원이 시급한' 상태였다. 그런데 왜 퇴원을 요구하느냐 묻자 전공의는 한숨을 뱉었다. "흔한 일이죠. 그런 보호자는 이상한 축에도 못 껴요."

일반 병원 및 외래 진료가 가능한 낮 시간에도 응급센터는 환자 맞이로 분주했다. 한 남성이 응급센터에 실려왔다. /이동률 기자
일반 병원 및 외래 진료가 가능한 낮 시간에도 응급센터는 환자 맞이로 분주했다. 한 남성이 응급센터에 실려왔다. /이동률 기자

1번 환자의 병명은 급성 심근경색, 관상동맥이 막히거나 좁아지면서 심장 근육이 괴사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보호자 말에 따르면 환자는 평소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았고 특별히 격하게 움직이는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전공의는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걸릴 수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환자가 조금만 늦게 도착했어도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1시 36분 생후 4일 된 아기가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병원에 왔다. 첫째가 아이를 미는 바람에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부모의 학대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호자가 나쁜 사람이라고 의심하긴 싫지만,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 등 선례가 더러 있었다고. 의료인은 현행법상 '신고 의무'가 있어서 아동 학대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는다. 고심하던 담당의는 보호자에게 관련 제도를 설명한 뒤 경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했다.

경찰 조사관은 오후 3시께 센터에 찾아왔다. 그사이 짧은 여유가 생긴 덕에 일부 의료진은 일찍이 주문해서 식어가고 있던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그들은 젓가락을 움직이면서도 전공책을 뒤적이고 환자 차트를 살폈고, 오전에 어떤 환자들이 왔었는지 상황을 공유하며 처치 방법을 고민했다. 그것도 잠시, 누군가 "7번 환자 멘탈이 처진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까지 안정적이었던 7번 침대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것이다. 모두가 허겁지겁 달려나갔다.

'어레스트(Cardiac Arrest, 심정지)'였다. 소생실로 옮겨진 7번 환자의 낯빛은 검붉게 변해있었다. 의사들은 번갈아 가며 침대에 올라가 심장 마사지를 반복했다. 침대에서 내려온 전공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환자의 기도를 막았던 피를 뽑아내자 바이털 사인도 점차 제자리를 찾았다. 허 치프는 "식도에 있던 암 세포에서 발생한 출혈이 문제였다"며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고, 이젠 피가 저절로 멎길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나 시계는 이제 겨우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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