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응급실②] 응급의료체계가 개선이 더딘 이유
입력: 2019.02.20 05:00 / 수정: 2019.02.20 05:00

응급의료 체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관련자가 체감할 정도의 변화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뉴시스
응급의료 체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관련자가 체감할 정도의 변화는 '아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뉴시스

국내 응급의학계의 큰 별이었던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지난 설 연휴 근무 중 갑자기 숨지며, 열악한 응급의료 환경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환자는 많고, 의사는 적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응급실에 대한 인식 및 운영 등 다양한 문제로 응급의료 체계는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더팩트>가 국내 응급의료 현황과 문제, 개선이 더딘 이유를 집중 조명했다. 또한, 서울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과 함께한 24시간 동행 취재로 '전쟁터'와 같은 응급의료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한다. 나아가 전문가를 만나 우리나라 응급의료가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편집자주>

의료인도 환자도 힘든 상황…"정부, 센터·기관 수와 배치 조정해야"

[더팩트ㅣ허주열·임현경 기자] 응급의료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시장실패 영역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대표적 사회안전망이지만, 수익성이 낮아 민간영역의 적정 공급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탄탄한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또한, 현장(응급환자 발생)부터 최종 치료까지 참여 기관 및 참여자의 신속하고 유기적 연계도 필요하다.

여기에 고령화 및 1인 가구 확대로 응급의료 취약계층이 증가하고 있고, 재난·자살률 증가, 신종 감염병 등으로 새로운 응급의료 수요도 발생하고 있다. 양질의 응급의료 서비스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 쪽에선 인력 부족, 다른 쪽은 널널

먼저 환자 수요를 쫒아가지 못하는 '의료인력'에 대한 문제가 거론된다. 지난 2013~2017년 응급실 전담 응급의학 전문의는 916명에서 1228명으로, 전담 간호사는 5899명에서 6889명으로, 응급구조사는 2만2458명에서 3만2523명으로 늘었다. 타 과의 상대적 몰락, 취업난 등 여러 이유로 인력 자체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의료인력이 부족하고,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응급구조사는 권한과 역할에 대한 논란 등으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응급실을 찾는 환자 수와 증가폭 등을 감안하면 응급의학 전문의 수가 지금의 두 배 이상 돼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응급의학회 관계자는 "전문의 수 증가는 다른 의료인력 양성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전반적인 응급의료 개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응급의학 전문의 수가 지금의 두 배 정도는 돼야한다"고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의료기관과 인력 배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국내에서 응급환자가 많아서 응급실이 과밀화되는 병원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50여 곳 중 20곳 내외"라며 "나머지는 환자가 적다. 시골 병원 응급실에 당직을 설 의사가 없는 것은 센터·기관을 너무 많이 지정하고, 배치를 효율적으로 안 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센터·기관을 현재의 3분의2 정도 수준으로 줄이고, 지역별로 거리 등을 감안해 위치를 재배치하면 해결될 문제"라며 "언론에서 응급실 의사가 부족하다고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은 큰 병원만 가서 그런 것이다. 센터·기관 중 연간 환자가 만 명도 안 오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덧붙였다.

미래의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전공의 배치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 소재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전공의는 "전공의 TO 배분을 보면 환자가 적은 병원급에도 TO가 있고, 상급종합병원도 환자 수 편차와 무관하게 TO가 배분된 곳이 많다"며 "환자가 많이 몰리는 곳에 TO를 늘려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근무 강도의 문제를 떠나, 환자가 적은 병원에서 수련을 한 전공의는 전문의가 돼서도 실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윤 서울의대 교수는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간에도 환자 수 편차가 크다며 재배치 및 지정 병원 수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시스
김윤 서울의대 교수는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간에도 환자 수 편차가 크다"며 "재배치 및 지정 병원 수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시스

◆낮은 중증환자 비율…개선책 미비

응급실에 대한 인식, 운영, 체계 홍보 등도 문제로 지목된다. 매년 1000만여 명이 응급실을 이용하는데, 2017년 기준 권역·지역응급센터 내원 환자 중 경증 또는 비응급환자는 57.3%, 중증응급환자는 7.1%에 불과하다. 특히 119 구급차를 이용해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중 중증응급환자 비율은 18.2%에 불과하다.

사실상 응급실을 찾을 필요가 없는 환자가 스스로 방문하거나, 구급차를 타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이러한 문제 등을 보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8~2022년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보면 성과지표 목표치대로 순탄히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개선이 이뤄질지 의문이다.

이를테면 중증응급환자 적정 시간 내 최종치료기관 도착률 목표치는 2017년 52.4%에서 2022년 60.0%로, 10명 중 4명은 적정 시간 내 도착이 어렵다. 또, 권역·지역응급센터는 중증응급환자 위주로 진료한다고 했지만 목표 비율이 7.1%에서 10.0%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응급의학 전문의 등 인력 확충과 관련해선 '하겠다'는 언급만 있고, 구체적 수치가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는 2013년부터 매년 1800억 원의 재정을 응급의료 체계 개선에 투입하고 있다"면서도 "운영의 비효율성, 전문인력 부족, 응급의료 질 강화 등은 아직 개선이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전반적 열악 속 지방은 더욱 취약

지역별 의료 편차가 큰 것도 개선이 시급하다. 이는 지역사회의 대응 능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구수 10만 명을 기준으로 할 때, 서울의 응급차 보유수는 8대 정도다. 반면 강원지역은 10만 명당 54.2대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응급차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산간지역이 대다수인 강원의 특성상 구급차는 이동 시간이 많이 소요돼 '골든타임'을 지키기 어렵다.

충남, 전북, 전남 등 섬이 많은 지역 역시 구급차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응급의료 전용헬기로 이동 시간 단축과 이동 중 처치를 동시에 이룰 수 있지만, 현재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는 전용 헬기는 인천, 전북, 전남, 강원, 경북, 충남에 각 1대씩 총 6대 뿐이다.

특히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중증응급환자 비율이 높아 지방에도 수준급 인력과 시설을 갖춘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일례로 2016년 9월 전주에서 중상을 입은 남아가 일대 병원 13곳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전북대를 비롯한 여러 병원이 소아외상 환자를 기피했고, 경기 수원에 위치한 아주대병원이 헬기를 동원해 환자를 수용했지만 끝내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

직후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이 취소된 전북대병원은 지난해 5월 조건부로 재지정 됐다. 지역거점병원으로서 응급의료 의존도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항목 6개 중 5개를 통과하지 못함에 따라 지난달 발표된 권역응급의료센터 명단에서 제외됐다. 전북은 현재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없는 지역이다.

김윤 교수는 "응급의료 체계를 현재와 같이 시·군·구로 짜고 권역응급의료센터만 정부가 지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우리 인구(약 5000만 명)를 감안하면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를 50여 개 줄이고, 지역 단위 배치 계획을 다시 세우는 센터·기관의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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