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디지털 '무인화' 시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입력: 2019.02.11 05:00 / 수정: 2019.02.11 06:09
정보 격차에 따른 노인 소외가 중요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에 위치한 영화관 두 곳의 풍경. 무인발권기로 영화를 예매하는 이들은 대부분 청년층이다. /임현경 기자
정보 격차에 따른 노인 소외가 중요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에 위치한 영화관 두 곳의 풍경. 무인발권기로 영화를 예매하는 이들은 대부분 청년층이다. /임현경 기자

"디지털화는 불가피…노인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도움줘야"

[더팩트ㅣ종로=임현경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노년층의 정보 소외와 불평등 심화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할수록 노인들은 '정보 격차'라는 절벽 앞에 내몰리고 있다.

자동·무인화 시스템이 확대됨에 따라 생활 전반의 편의성은 한층 높아졌다. 휴대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영화나 공연, 기차표와 항공권을 예매할 수 있고, 직원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음식을 주문거나 금융 상품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은행권은 무인화자동기기를 늘리고 인력을 감축해 효율성을 극대화시키자는 방침을 세웠다. 외식업계에서도 키오스크(Kiosk, 무인단말기)를 도입에 나서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9년 외식소비 트렌드'로 '비대면 서비스화'를 선정했을 정도로 카페, 식당 등에서 키오스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패스트푸드 전문점은 매장 회전율을 높이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키오스크를 이용 중이다. 롯데리아와 맥도날드는 전체 매장 중 절반가량에 키오스크를 도입했으며, KFC와 버거킹도 올해 안에 전 직영점에 키오스크를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키오스크는 작은 글씨, 음성지원 미비, 복잡한 인터페이스 등으로 인해 노년층은 물론 장애인이 이용하는 데에도 큰 불편이 따른다. 패스트푸드점과 카페에 설치된 키오스크. /임현경 기자
키오스크는 작은 글씨, 음성지원 미비, 복잡한 인터페이스 등으로 인해 노년층은 물론 장애인이 이용하는 데에도 큰 불편이 따른다. 패스트푸드점과 카페에 설치된 키오스크. /임현경 기자

이러한 편리함은 노인들에게 큰 불편함으로 작용한다. 7일 <더팩트>는 노인 인구가 많은 서울 종로 일대를 찾았다. 종로2가에 위치한 모 패스트푸드점에는 키오스크 두 대가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매대에 선 직원은 한 명으로, 완성된 음식을 나르느라 정신없이 바빠보였다.

가게에 들어선 노년 남성 두 명은 잠시 키오스크를 살핀 뒤 "커피 한 잔씩만 주문하면 되는데 뭐 이리 복잡하느냐"며 점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글씨와 그림이 작아서 뭐가 뭔지 보이지도 않는다"며 불평하기도 했다. 영수증에 출력된 번호에 맞춰 음식을 가져가는 시스템이지만, 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노인들은 드물었다. 이 때문인지 해당 매장은 모니터에 번호를 띄우는 대신 직원이 직접 목청껏 번호를 부르며 손님들을 안내했다.

종로 3가에 있는 모 극장 역시 키오스크는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다. 극장을 가득 메운 노인들은 '무인 예매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70대 노인은 "기계 앞에서 허둥대는 것 보다 줄을 서서 기다려서라도 직원에게 표를 사야 마음이 편하다"며 "무슨 영화가 몇시에 하는지, 어떤 내용인지 알려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의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 기준, 50대 이상 장노년의 '생활 서비스 이용률'은 59.9%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70대 이상의 경우는 10% 미만이었다. 이는 교통정보 및 지도, 제품 구매 및 예약, 금융거래, 행정서비스 등의 인터넷 이용 여부 비율을 측정한 것으로, 일반 국민의 생활 서비스 이용률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의 값이다.

시민들이 지난달 9일 설 기차표 예매를 위해 서울 용산역에 방문한 모습. 줄을 서서 대기하는 시민 대부분이 노년층이다. /문혜현 기자
시민들이 지난달 9일 설 기차표 예매를 위해 서울 용산역에 방문한 모습. 줄을 서서 대기하는 시민 대부분이 노년층이다. /문혜현 기자

디지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시간과 돈, 즉 비용적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노인들은 각종 은행에서 어플로만 가입이 가능한 금융상품, 상품 예약 및 구매시 제공되는 온라인 할인 혜택 등을 누리기 어렵다. 교통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인들은 고속버스, 기차 등 교통 수단을 예매할 때도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달 8일 시작된 코레일 설 기차표 예매 비율은 온라인이 93%(77만석)를 차지했다. 온라인 예매 서비스 이용방법을 모르거나 속도에 밀린 이들은 역에 직접 방문해서 예매, 불가피할 경우 입석으로 기차에 올라야 한다. 좌석을 가장 필요로 하는 노약자가 장시간 서서 이동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다.

정보통신 환경은 빛과 같은 속도로 변화하고 있지만,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한 움직임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다. 관계 부처 관계자는 "키오스크의 경우 제대로 실태와 이용 현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며 "지난해 국정감사는 물론 여러 언론에서 지적한만큼 올해 처음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관련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 전했다. 종로종합사회복지관 스마트폰 교육 담당자는 "인터넷 뱅킹 서비스나 구매 같은 경우, 공인인증서 발급 등 복잡한 사전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어렵고 번거로워하셔서 애초에 수요가 잘 없다"고 설명했다.

장노년, 특히 고령 노인층의 인터넷 이용률은 일반 국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자료 갈무리
장노년, 특히 고령 노인층의 인터넷 이용률은 일반 국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자료 갈무리

주윤경 NIA(한국정보화진흥원) 수석연구원은 "이전까지는 기본 활용 중심의 교육이 이뤄졌다면 올해부터는 고령층이 실생활에서 이용할 수 있는 교육을 준비 중"이라며 "올해는 특히 취약계층 중에서도 고령층에 집중하는 해가 될 것"이라 밝혔다. 관공서 등에서 자체적으로 장애인·노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민간 영역과 협업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 연구원은 "고령층 정보화 교육은 오래 전부터 추진됐지만, 주로 '어디에 가면 무슨 어플을 다운받을 수 있다'는 식의 강의 위주였다"며 "이제는 함께 코레일, 모바일뱅킹 등의 어플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 강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개인마다 교육에 대한 수요가 달라서 집합 교육이 세심하기 이뤄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NIA서 발탁한 노인들이 동년배에게 IT 분야를 교육할 수 있도록 하는 '어르신 IT 봉사단' 등은 노인에게 사회공헌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적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라 강조했다.

또한, 올해 안에 VR 등을 이용한 체험형 교육이 시행될 것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주 연구원은 "노인분들이 VR을 이용해 은행 가보기, 키오스크 이용하기 등의 간접 체험을 하면서 디지털 문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고 직접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며 디지털화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니 노년층의 도전에 도움과 용기를 주는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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