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타투는 절대 잊지 않아야 할 다짐을 남기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예술적 행위로 여겨진다. 타투이스트 독고가 이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배정한 기자 |
☞<상>편에 계속
타투이스트에게 직접 들어본 타투, 그리고 타투를 새겨넣은 '순간들'
[더팩트ㅣ마포=임현경 기자] "타투를 새기던 모든 순간을 기억해요." 타투이스트들은 타투를 몸에 새기는 행위가 오롯한 예술이라고 입을 모았다. 손님과 나눴던 이야기, 그날의 분위기, 그때의 감정과 결심들을 영원히 몸에 간직하는 일 자체가 그들에겐 절대 잊지 못할 기억이자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과거 조직폭력배들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 용이나 호랑이를 몸에 새겼던 행위로서의 문신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됐다. 오늘날의 타투는 망각하고 싶지 않은 마음가짐을 되새기게 하기도, 숨기고 싶었던 상처와 결점을 드러내고 싶은 매력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지난해 7월에는 한 소방관이 새긴 타투가 세상에 알려지며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선사했다. 당시 타투이스트 민솔은 자신의 SNS에 현직 소방관의 몸에 새긴 작업물을 공개했다. 손님의 왼쪽 가슴에는 심전도 곡선과 함께 'KOREA FIRE FIGHTER(대한민국 소방관)', '나는 장기/조직 기증을 희망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직업상 언제 어떻게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릴지 몰라, 최대한 남들이 빨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현행법상 타투는 불법이고, 타투를 몸에 지닌 사람은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새기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더팩트>는 지난 1일 타투이스트(Tattooist, 문신사) 지화, 독고와 함께 3시간가량의 긴 인터뷰를 진행했다. 타투에 대한 편견부터 합법화를 위한 움직임, 타투이스트로서 이루고 싶은 꿈까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타투이스트 지화는 부득이한 개인사정으로 인해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
타투이스트 독고는 무조건 "안 된다"는 말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타투이스트 독고의 손. /마포=배정한 기자 |
# 타투, 사람과 사람 '상호작용'으로 빚어낸 예술
-두 분이 타투를 배우기로 결심했을 땐 지금보다도 인식이 좋게 바뀌기 전이었을 텐데, 타투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지화 그냥 매력 있었어요. 보자마자 '해보고 싶다'해서 바로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작했어요. 회사는 다시 들어가면 되니까. 이만큼 잘될 거라고 생각은 안 했어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잘 돼서 다행이죠. 그림 그리는 건 원래 좋아했어요.
독고 저는 원래 꿈이 초등학교 때부터 화가였는데, 늘 '안 돼'의 연속이었어요. 집도 그랬고 선생님도 그랬고. 초등학교 땐 그나마 자유로웠는데 중학교 때부터 '아 난 화가를 못 하겠다' 느꼈죠. 경쟁에서 졌구나.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들이 제가 그리는 걸 존중하지 않았고, 그림의 방향을 잡아주기 시작했고. '실력'이라는 게 뭔지 답이 정해져 있었고요. 늘 '안 된다' 속에서 살다가 조금 거친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또래들이 문신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너무 마음에 드는 거에요.
그 당시에는 "안 돼"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계속하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저도 안 된다고 하면 '왜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이니까. 이거는 내가 할 수 있겠다. 잘할 수 있겠다. 저 어른들도 '안 된다'는 말에도 납득이 되지 않으니 계속하고 있구나. 나랑 잘 맞겠다. 그래서 시작을 했죠. 또, 멋있었어요. 피부 위에 그림을 그리다니. 화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타투에 대한 타인의 편견을, 타투를 통해 뒤바꾼 경험이 있을까요?
지화 제가 일단 그랬어요. 타투를 배우기 전에 제가 아는 타투라곤 딱 하나, 이레즈미(일본 전통 문신)였어요. 저도 타투에 대해 전혀 몰랐거든요. 모르니까 편견을 갖고 있었고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타투를 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접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자라왔으니까요. 그런데 서울에 오고 타투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타투 종류가 되게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구나, 나쁜 게 아니구나, 느끼게 된 거죠. 또, 제 주변에서 '지화님 작업 통해서 편견이 바뀌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독고 지화 누나 타투는 진짜 예뻐서. 누나 등장 이후에 국내에서 타투를 받는 여성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사람들이 타투에 대해 갖는 이미지의 성향이 '세고 무서운 것'으로 기억할 거예요. 그런데 누나 같은 경우는 작업물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런 공격적인 게 하나도 없어요. 뾰족한 게 없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180도로 바꿀 수 있어요. 분명 누나의 작업물을 보면 '예쁘다'란 감상이 드는데, 예쁘다는 건 '타투도, 타투를 하는 사람들도 무섭다'는 기존의 생각들을 완전히 깨는 거니까요.
지화 타투는 절대 혐오적인 게 아니거든요. 타투를 했다고 피해를 주는 것도 없고요. 그저 만들어진 안 좋은 편견일 뿐인데. 예를 들면 부모님 세대도 저랑 같은 경험을 하신 거예요. 딸이 타투를 받고 왔는데, 우리가 아는 타투 외에도 다양한 타투가 있구나, 긍정적으로 '생각보다 괜찮네?' 생각하신 거죠. 나쁜 게 아니라, 타투는 타투일 뿐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봐왔어요.
독고 그래서 SNS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작업물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길, 예술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림, 디자인의 형태만 본다면 그건 어디에 그리든 예술일 거예요. 게다가 타투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예술적이라고 생각해요. 시(詩)적이죠. 평생 남는 것이고, 스스로가 작품을 갖고 다니는 전시장이 되는 거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타투의 의미를 설명해줄 수도 있고, 타투를 보며 당시의 의미를 되새길 수도 있어요. 잠시 향수에 빠질 수도 있겠죠. 행위가 가진 메시지 그 자체가 굉장히 시적이라고 보는데, 그걸 좀 이해시키고 싶어요.
지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타투는 단순히 그림을 새기는 행위가 아니에요. 저는 타투를 해줬던 모든 순간을 기억해요. 그때 했던 이야기, 어떤 이유로 우리가 이 그림을 남겼는지. 그건 손님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의미를 부여하고, 그 순간의 이야기와 마음가짐을 담아 평생 간직하는 거죠. 사람이 냄새만으로도 사람을 기억하고 추억하는데 타투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게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절대 아니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이게 왜 의료행위로 빠지는지도 모르겠고, 타투를 받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질 텐데 언제까지 이걸 막아두기만 할 건지.
-최근 유튜브,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타투 관련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인식 전환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지화 그런 분들도 다 어느 정도 위험부담을 갖고 하는 거예요. 시대에 맞춰가려면 저희도 유튜브를 고려해야 하고, 최근엔 타투를 다루고 싶어 하는 기획사들도 많대요. 다양한 타투이스트의 목소리가 더 나와야 해요. 저 같은 경우는 타투스티커를 통해 간접적인 체험을 선사해요. 이를 통해 실제로 타투를 받기도 하고, '우와 이런 타투도 있네' 하며 인식의 전환이 시작되니까요. 타투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고,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니까. 제가 4년째 하고 있는데, 처음엔 거의 드물었지만 지금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타투스티커는 동네 문구점, 마트 등에서 어린이들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타투스티커를 통한 간접 경험은 타투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타투이스트 지화 제공 |
#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연대하는 작업
-지금까지의 타투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나요?
지화 당연히 있죠. 솔직히 모든 작업이 그렇지만, 최근에 가장 의미 있었다고 느꼈던 건 '소녀상' 작업이에요. 손님이 제주도 분이었는데, 이왕 첫 타투를 받는 거라면 제주도 사람에게 받고 싶으셨대요. 저도 제주도 사람이거든요. 그분은 절대 잊어선 안 되는 역사적인 사건, 4.3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저를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소녀상 실루엣에 '순수'라는 꽃말을 가진 데이지와 제주도의 동백을 새겼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인 것 같아서, 이 비용을 받기보다는 관련 단체에 기부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죠. 그분의 타투 비용에 제 사비를 보태서 관련 재단에 기부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 있었고, 저도 손님도 뿌듯하게 끝냈던 작업이었어요.
독고 저도 소녀상을 작업한 적이 있어요. 재작년 3.1절, 일제강점기에 맞서 싸웠던 역사와 이야기를 주제로 '다시, 봄'이라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70명을 모집해 무료작업을 하고, 전시회를 여는 거였죠. 결과적으로 한 달 반 동안 총 78명을 작업했어요. 그중 한 분이 소녀상을 새겼고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로 기억해요. 3일간 전시를 하면서 굿즈 판매 비용으로 380만 원을 벌었어요. 처음엔 유공자들께 드리고 싶었는데, 관리를 사립단체가 하더라고요. 직접 전달할 수 없고 오직 단체를 통해서만 전달할 수 있다고 해서, 시선을 돌려 찾은 곳이 조손 가정이었어요. 3명의 아이에게 기금을 나눠 전달했어요.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은 '기부하길 정말 잘했다', '나약한 소리 좀 그만해야겠다' 였어요. 앞으로 더 도와주자 결심했고요.
독고 저도 모든 손님이 다 기억나요. 왜냐면 작업 방식 자체가 대화 시간이 길거든요. 일단 손님이 오시면 3시간 정도는 대화를 해요. 타투 얘긴 안 해요(웃음). 그다음 디자인을 2시간 정도, 작업을 3시간 정도 하죠. 그래서 하루에 한 분씩만 작업하는데, 당연히 모든 손님이 기억이 날 수 밖에요. 최근에 기억에 남는 작업은 친구 허벅지에 한 'life'라는 제목의 작업이에요. 4년쯤 된 손님이자 동생이었는데, 그 친구가 원래는 손등에 작업을 받으러 왔었어요. 그런데 대화가 길어지다 보니 이전에 하지 못했던 대화를 많이 했어요. 당시 제가 많이 변했던 시기여서 나를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많이 내려놓고 대화했거든요. 그랬더니 그 녀석이 4년 동안 꺼내지 않았던 자신의 아픈 상처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걸 듣다 보니 머릿속에서 작업이 그려졌는데, 손등보다는 허벅지에 어울리는 도안이었어요. 그래서 허벅지에 하게 됐죠. 아침에야 작업이 끝났어요. 그 친구가 아침 9시 출근이었는데 작업이 10시에 마무리됐어요.
-네? 그럼 회사에 늦은 건가요?
독고 그 과정에서도 제가 부탁을 했어요. "미안하다. 그런데 난 이 작업을 대충 하기 싫다. 만약 네가 회사에서 잘리면 내가 널 먹여 살릴 테니까, 그냥 가자." 이렇게. 미안해서 돈도 안 받았어요. 친구가 이후 연락이 왔어요. 지금까지 회사에서 지각한 적이 없어서, 오늘 늦은 이유를 솔직히 말하니까 봐줬다고.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됐죠. 저마다 다 사연이 있어요. 각자 다 슬프고 행복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끄집어내다 보니 손님의 얼굴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이야기는 떠오르죠. 이걸 왜 그려야 했는지.
타투이스트 지화는 유방암 환자들을 돕는 커버업(흉터 등을 덮는) 타투 재능기부를, 타투이스트 독고는 대통령과의 작업을 이루고 싶은 목표로 꼽았다. /배정한 기자 |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떤 손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타투이스트로서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을 것 같아요.
지화 저는 옛날부터 생각했던 게 두 가지가 있어요. 일단 첫 번째는 상처 커버업 작업이에요. 단순 상처 커버업은 아니고, 유방암 수술하신 분들이 수술 부위의 상처를 타투로 덮는 경우가 많아요. 이 작업을 정말 하고 싶거든요. 작업 자체에 의미를 두고,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이런 분들을 위해서 무료로 작업을 하고 싶어요.
두 번째는 타투스티커. 스티커는 항상 혼자 생각했던 건데, 제가 봉사활동을 조금 했었어요. 그때 보면 자폐 아동이나 치매 노인들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목걸이나 팔찌를 착용해야 하는데, 몸에 뭔가 닿는 걸 싫어하더라고요. 잘 잃어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타투스티커를 제작해 관련 시설에 기부하면, 그분들이 외출하거나 행사를 참석하거나 할 때 손이 닿지 않는 부위에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예를 들면, 본인은 보이지 않는 목 뒤에 숫자 스티커로 연락처를 남기는 거죠. 목걸이나 팔찌처럼 신경 쓰이지도 않고, 긁어서 없어지지도 않고. 항상 생각만 하고 있어요.
-굉장히 공익적이네요.
지화 남을 도와주면서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느끼게 돼요. 정신적으로도 저한테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항상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신조를 지니고 있어요.
독고 저는 대통령? 단순히 대통령이 제일 높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갖잖아요. 그런 사람이 타투를 새긴다면, 그날이 온다면 대한민국은 굉장히 많이 바뀌어있지 않을까요. 억지스럽지 않게 제가 해왔던 패턴대로. 그 상대가 대통령이 왔으면 좋겠어요. 원래 이런 꿈은 허망할수록 좋잖아요.
지화 크면 클수록 좋죠(웃음).
타투이스트들은 모든 작업의 순간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긴 대화를 통해 도안을 고르고 타투를 새기며 깊은 교감을 나눴기 때문이라고. /타투이스트 지화 제공 |
-정말 긴 인터뷰였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독고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게 목적인데,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태도를 제대로 취하지 않으면 결코 들리지 않는 메아리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감히 독자께 부탁을 드리자면, 앞으로 이 내용뿐 아니라 모든 사회 이슈나 문제를 받아들일 때 자신의 기준 안에서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 본인에게 질문하고 사회적으로 말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모든 판단과 결정은 자기의 기준과 신념 안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거죠.
제가 사실은 이런 인터뷰를 많이 거절해요. 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논리보다는 감정이 80% 더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텍스트로 옮겨지는 경우 아무리 육성을 실으려 해도 담기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런 감정적인 부분들이 빠진 채 들어본다면 그저 개인의 주장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내용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사람들은 화자를 보고 그 사람의 말을 평가하기 때문에, 만약 언행 불일치의 모습이 영상이나 과거의 기록을 통해 느껴진다면 사람들은 쉽게 판단을 돌리잖아요. 글로써 전달되는 과정에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살짝 무섭긴 하네요. 그래도 잘 써주실 거라 믿어요(웃음).
지화 저도 공감이 가요. 상처받을 순 있지만 어쨌든 목소리는 내야 하니까 인터뷰는 거의 다 응하고 있지만, 기사와 영상은 와닿는 게 다르더라고요. 글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