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들에게 '공부 자체'도 중요하지만 여럿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취업 정보를 공유하는 '스터디'는 필수적이다. 이들에게 스터디는 어떤 의미일까. /취준생 '경영' 제공 |
'합격' 경험 있어야 스터디 들어간다? 구성원 '자격 요건' 있어
[더팩트|문혜현 기자] 취업 스터디.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청년이 꼭 하나쯤은 하고 있다는 그것. 백과사전은 취업 스터디를 '취업을 목적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취업에 대한 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 준비에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보 교환을 위한 오픈 채팅방에서 '비공개'인 정보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만 아는 걸 안다'는 사실을 과시할 뿐 절대 말해주지 않더라. 공개를 요구한 일부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도 해서 놀랐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정보의 희소성이 부각되다 보니 스터디의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 스터디를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류 합격 경험', '면접경험' 심지어 '정규직 근무경력'을 묻기도 한다."
"기업에서 신입을 채용하면서 인턴 경험이나, 아예 경력이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취업 세계에서 말 그대로 '생초짜'는 스터디를 시작도 못 한다."
직업과 직무를 막론하고 모두 '무조건 한다'고 말하는 스터디, 실제 취준생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더팩트>는 기자 지망생 (이하 언론), 유통업계 지원자(이하 유통), PD 지망생(이하 TV), 영업 관리 지원자(이하 영업), 경영직 지원자(이하 경영)와 함께 냉혹한 '스터디'의 세계에 들어가 봤다.
◆ 스터디는 '제2의 학원'…? 취준생들 "동아줄이나 다름없어"
기자_여러분들한테 스터디는 어떤 것인가요?
영업 : 스터디는 '정보의 장'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취준생들 사이에서 정보 격차도 어마어마하거든요. 저는 그 정보의 '비대칭성'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질 좋은 정보를 취득하는 사람은 자기소개서와 인적성, 면접 등을 준비하고 그렇지 못한 취준생들은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 못하는 걸 자주 봐왔거든요.
언론 : 맞아요. 저한텐 스터디가 '제2의 학원'과 같아요. 언론 고시를 혼자 준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90% 이상은 스터디를 하지 않으면 합격이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혼자 배우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어서 다른 사람 의견도 들어야 해요. 진짜 '학원가는' 느낌? 일반 취준 스터디랑 다른 게 그저 문제 풀이가 아니라 제삼자의 시선을 얻으러 가는 거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내 글을 냉정하게 평가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글을 발전시킬만한 창구가 없는 거죠.
TV : 저는 그런 점에서 '동아줄'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웃음) 왜냐? 믿을 게 이거밖에 없어요. 썩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우선 잡아야 하는 거죠.
기자_스터디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왜 그런 건가요?
유통 : 원하는 지역대, 시간대가 모두 일치해야 하고, 같은 직무인 경우 정보공유를 꺼리는 경우가 있어서 (직무가) 최대한 중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기 때문이죠. 그뿐만 아니라 스터디원의 인원 제한이 있기도 해서 면접이나 인적성검사 경험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우선 모집하기도 해요.
TV : 학교를 마치고 졸업예정자 신분에서 스터디를 시작하게 되면 출신학교를 물어보진 않지만 '필기 합격' 경험을 봐요. 그런데 서류를 넣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필기 합격 경험이 있겠어요? 대부분 스터디에서 조금 더 잘하는 사람들을 변별하는 수단이 '필합 경험'이 되더라고요.
영업 : 이쪽 직무도 비슷해요. 스터디를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서류 합격 경험이나 면접경험, 심지어 정규직 근무경력을 묻기도 하더라고요.
언론 : 비슷하네요. 언론 고시는 준비한 지 1, 2년이 넘은 장수생들도 많아요. 준비생들도 연차가 쌓일수록 실력이 느는 편이죠. 그래서 스터디를 하려면 냉정하고 잘 피드백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필요한데, 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주면 의미가 없잖아요. 또, 면접이나 필기, 실기 시험 경험이 있는 사람의 의견은 공신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같은 구직자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스터디를 들어갈 때 과도하게 시험 경험, 언시 경력, 작성한 글을 요구하기도 해요.
경영 : 저는 이제 스터디 같은 거 안 하려고요. 작년까지만 해도 스터디에 대해 긍정적이었고 다양한 스터디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제가 강제적인 환경에서 더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기도 했고요. 상식 스터디, NCS 스터디, 면접 스터디 등 다양한 스터디를 했지만, 항상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스터디 시작 날만 다들 열심히 하고 두 번째 날이 되면 한 명, 두 명씩 빠지면서 저를 포함한 다른 스터디원들도 공부할 의욕을 잃기도 했고, 공부보다는 사람을 만나거나 놀기 위해 참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어요. 차라리 혼자 공부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어요.
기자_그렇다면 취업 과정에서 스터디는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친다고 보나요?
유통 : 우선 공채 비시즌에는 자소서(자기소개서) 스터디를 구해서 서로 기업/산업/뉴스기사 분석 및 공유를 하고, 공채가 가까워오거나 서류 발표가 나기 시작하면 인적성 스터디를 구해요. 인적성이 끝나고 나면 면접 스터디를 구하죠. 매 공채 순서마다 스터디를 구하는 게 '당연한 일'이에요.
언론 : 언론 고시의 특성상 좋은 스터디를 만나느냐 마느냐가 당락을 결정하기도 해요. 사실 '언론 고시'라고 부르는 것도 시험이 완전 깜깜이라 그런거에요. 따로 기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물어물어 아는 거죠. 그래서 스터디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에요.
중심이 되는 종합 스터디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의 합이 잘 맞으면서 피드백도 잘해주게 되면 팀 전체가 다 잘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솔직히 필기합격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뽑고 싶어 하는 마음도 이해해요. 저도 도움 되는 사람이랑 같이 하고 싶거든요. 그야말로 '약육강식'이죠.
취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스터디'는 들어가려고 하는 취준생의 '서류 합격' 경험을 묻거나 심지어 '정규직 경력' 유무를 묻기도 한다./취준생 '영업' 제공 |
◆ '정보 경쟁'이 곧 '취업 경쟁'…치열한 그들의 '물밑 다툼'
기자 :취준생들의 '정보 경쟁'에 대해서도 들어봅시다. 실제로 어떤가요? 견제가 있나요?
유통 : 정보 경쟁이 심해요. 간혹 같은 직무끼리는 정보를 잘 공유하지 않으려는 '묘한 분위기'도 감지되더라고요. 저는 주로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얻는데, 공유되는 정보 양이 많은 만큼 찌라시도 많아서 알아서 잘 걸러 봐야 해요.
TV : 스터디 들어가는 게 힘들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카페도 하나고, 딱히 경쟁은 없는 것 같아요. 시험이 어렵지만 해야하는 일이 정해져 있어서 그런지 정보가 불평등하다는 느낌은 안 들어요.
언론 : 저도요. 일반 기업이라면 '지난 면접에서 이런 걸 물어봤다더라'라는 게 있을 수 있지만, 언론고시에선 사실상 알아도 별 소용이 없어요. 매번 시험 문제가 바뀌기도 하고 알려준다고 해도 각자 '어떻게 써나갈지'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우직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어요"
경영 : ○○ 기업을 준비하면서 정보 교환을 위해 오픈 채팅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지역별 채용 인원이 비공개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인이나 인맥을 통해 지역별 인원 정보를 아는 사람이 몇 명 있더라고요.
하지만 그 정보를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점만 과시할 뿐 절대 알려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런 정보를 물어보면 화를 내거나 채팅방에서 강퇴(강제퇴장)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치열하구나' 생각했어요.
◆'취준생'이란? "'불쌍한 영혼들'·'시대를 잘못 타고 난 엘리트들'"
기자_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취준생이 바라보는 취준생의 모습'이 궁금해졌어요. 어떤가요?
언론 : 미디어의 주입도 있겠지만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주변에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이대로 죽어도 안 슬플 것 같다', '아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해요. 저만해도 주기적으로 한 번씩 강한 우울감이 와요. 학교라는 소속감이 있어도 이런 상황인데, 사회에 던져진 사람들은 얼마나 우울할까 싶어요. 우리나라가 '공백기'를 인정하지 않는 점도 그래요. 준비하는 시간이 분명히 필요한데도 어른들은 그저 '백수'라고만 보죠.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지고, 그런 점들이 슬프게 다가와요.
경영 : '청춘 포기자'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대부분 취준생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에서만 보더라도 취업하기 전까지 연애도 하지 않고, 여행도 가지 않고, 취업 준비만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이해하지만 '과연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러니한 점은 일찍 취업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언젠가 취업하니까 놀 수 있을 때 놀아라"고 말하더라고요.
영업 : '시대를 잘못 타고난 엘리트들' 같네요.(웃음) 사실 지금 대부분의 회사 일은 교육 수준이 높아진 우리 20대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봐요. 그런데 시대가 달라져서 일자리가 희소하다 보니 이런 말단사원 일에 교육 수준이 높은 20대가 목숨 거는 느낌이 들어요.
경영 : 과도한 스펙 전쟁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때문에 계속되는 학원비 지출, 취업 교재 비용으로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요. 아르바이트를 통해 충당하는 데에도 한계가 느껴져요.
TV : 그래도 기승전결 확실한 해피엔딩은 있다고 믿어요. 제 주변을 보면 2년을 꼬박 준비해서 대기업에 간 사람도 있어요.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은 맞지만 절정의 시기에 '버닝'하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저런 모습을 보면 학교나 대학 교육에서 '취업에 견디는 법'은 안 배운 것 같아요. 기성세대는 '빨리 취업하라'고 등을 떠밀지만 사실 보면 진득하니 1년 반에서 2년은 준비를 해야 해요. 그나마 다행이라는 들지만 이제 저도 해야 하니 힘들것도 같네요.
안정영 취업 컨설턴트는 스터디를 '저비용 고효율'의 취업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스터디가 끝난 뒤에도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통해 배운 것을 익혀야 한다고 조언했다./창천동=문혜현 기자 |
◆ 취업 컨설턴트 "스터디, '저비용 고효율'…'정보 경쟁'은 어쩔 수 없어"
취준생들은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모아야 하는 '정보'와 이를 공유하는 '스터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안정영 취업컨설턴트는 "(스터디는) 취준생들에게 있어서 잘 쓰면 유용한 존재"라며 "같이 한다는 측면에서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될 확률이 높고 잘하는 친구와 함께할 경우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비용으로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다"면서 "다만 지식과 방법론을 공유하고 동기부여를 받는 차원일 뿐 그곳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밖에서 혼자 익히고 배우는 시간을 따로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취준생들 사이에서 과열되고 있는 '정보 경쟁'에 관해 안 컨설턴트는 "당연한 상황"이라면서 다만 "실제 핵심적인 정보가 당락을 결정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서류 통과는 어떤 경험이 있느냐를 평가받는 거고, 그걸 따라 할 순 없다"며 "기업에선 지원 직무에 대한 분석과 고민의 흔적들, 평소의 식견을 눈여겨볼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취업 시장 동향에 대해선 "학과 공부하기도 바쁜데 추가적인 경험을 의무적으로 해야만 경쟁력이 생기는 게 안타깝다"면서도 "잘하는 사람은 여기도 붙고, 저기도 붙는 것처럼 경쟁력을 갖추면 되는 구조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외부적인 여건들 때문에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않는 게 좋다"고 응원했다.
'우울증'을 호소하고 자신을 '불쌍하다'고 여기면서도 담담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이들의 길 끝엔 어떤 취준생의 말처럼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래야만 한다. 치열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다가오는 설에 '인·적성 시험'을 느긋하게 준비하거나 '개인적인 책 읽는 시간'을 갖고, '가족'을 만나기로 했다는 이들의 계획이 순탄히 이뤄질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