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마포대교, '자살명소' 오명 지워낸 시민들의 한 마디
입력: 2019.02.02 00:02 / 수정: 2019.02.02 00:02
<더팩트> 취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대교를 직접 걸으며 자살 명소라는 오명과 서울시의 대안을 살폈다. 마포대교 전경. /마포=임현경 기자
<더팩트> 취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대교를 직접 걸으며 '자살 명소'라는 오명과 서울시의 대안을 살폈다. 마포대교 전경. /마포=임현경 기자

마포대교 위를 직접 걸어봤더니

[더팩트ㅣ마포=임현경 기자] "마포대교에서 만나자." 온라인커뮤니티 게시물과 댓글,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쉽게 쓰이는 말이다. 당장 포털사이트에 '마포대교에서 만나'까지만 검색해도 다수의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시험을 망쳐서, 사놓은 비트코인이 폭락해서, 애인이 바람이 나서, '죽고싶다'는 절망감을 가볍게 또는 우습게 표현한 것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마포대교를 걸어본 적이 없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거나 근처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하염없이 다리를 바라본 적은 있었지만, 정작 그 위에 올라선 경험은 전무했다.

마포대교를 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한 명의 캐나다 청년의 투신 사실을 접한 순간이었다. 한 청년이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38분께 몸을 던져 교각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됐다. 현장에는 청년이 벗어둔 옷가지와 영문으로 적힌 유서가 놓여있었다.

청년은 사고 경위를 묻는 경찰에게 "서울로 온 목적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전날 묵은 숙소 주인에게도 "다시는 캐나다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왜 극단적 선택을 위해 1만km를 날아왔을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달 28일 직접 마포대교를 찾았다.

마포대교는 서울의 한강다리 중 자살시도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 최근 6년간 신고된 자살시도자만 989명에 달한다. 여의도 한강공원 부근 마포대교 초입. /임현경 기자
마포대교는 서울의 한강다리 중 자살시도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 최근 6년간 신고된 자살시도자만 989명에 달한다. 여의도 한강공원 부근 마포대교 초입. /임현경 기자

막상 찾아간 마포대교는 온라인상에서 보던 유머와 같이 가볍거나 우습지 않았다. 예상보다 훨씬 차갑고 공허했다. 다리 양쪽으로는 '리버뷰'를 갖춘 고가의 아파트가 빽빽하게 서있었고, 저멀리 금융사들의 뾰족한 고층건물과 국회의원들이 업무를 보는 국회의사당의 동그란 지붕이 보였다.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에 홀로 선 스스로가 아주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한강이 시작되는 지점부터는 난간 하단에 발을 딛지 못하도록 덧댄 철판과 1m의 추가 난간이 있었다. 2016년 설치 이후 자살시도를 26.3% 줄였다는 고마운 시설이다. 또, 마포대교에서 얼마나 많은 자살시도가 발생하는지를 실감케 하는 섬찟한 시설이기도 했다.

2013년부터 2018년 11월까지 6년간 한강다리에서 총 2575명이 자살을 시도했다. 그중 마포대교는 989명으로, 서울에 있는 모든 한강다리 중 가장 자살시도자가 많은 곳이다. 다만 이는 신고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치인 까닭에, 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건을 감안하면 실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행자 도로를 따라 몇걸음 옮기니 '생명의 다리'가 나왔다. 생명의 다리는 2012년 서울시가 삼성생명, 제일기획과 함께 기획한 시설물로, 유명인사 또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문구와 조명이 설치된 1.9km 길이의 난간이다. 칸 국제광고제 등 유수의 광고제에서 39개상을 휩쓸며 '광고'로서 호평받았지만, 설치 이후 자살시도자 수가 16배가량 급증하며 '자살 방지'에는 실패했다.

생명의 다리에는 센서가 달려있어 밤에는 행인의 걸음에 맞춰 해당 위치에 있는 글귀에 조명이 들어온다. 그 덕에 '인증샷'을 남기는 관광명소가 되기도 했지만, 이에 드는 운영비가 연간 1억5000만 원이 넘는다. 결국 삼성생명 측은 지난 2015년 운영비 지원을 중단했고, 서울시는 고심 끝에 해당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고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과거 보도를 통해 생명의 다리를 접하고선 운동선수, 가수, 배우 등 '이미 성공한' 이들의 말이 적힌 것을 두고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한다고 툴툴거렸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는 시민들의 '손글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챙겨나온 것인지, 마침 주머니에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다들 굵은 펜으로 난간에 낙서를 해놨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하트 놀이도 있었고, 꼭 다시 만나자는 친구들의 다짐도 있었다.

잠시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폭포는? 나이아가라 폭포', '자가용의 반대말은? 커용' 따위의 농담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그보다 빛났던 건 색이 바래고 스티커가 벗겨진 자리를 채워준 시민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였다. "그냥 넌 너라서 아름다워.", "그래도 열심히 살자."…"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생명의 다리에는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행복한 미소를 짓는 시민들의 사진이 실렸다.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생명의 다리. /임현경 기자
생명의 다리에는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행복한 미소를 짓는 시민들의 사진이 실렸다.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생명의 다리. /임현경 기자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고 다리 위에 설 어느 누군가를 위해 남긴 말이었다. 문구 자체보다는 타인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인 글 너머의 사람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아까까지 텅비어 차갑고 쓸쓸했던 마음이 따뜻하게 덥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부·권력·명예의 한복판에서 꽁꽁 얼어버렸던 몸에 온기가 도는 듯했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고진선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팀장은 자살예방을 위해서는 고립감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민간 위탁 하에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며 24시간 상담전화와 함께 자살시도자를 위한 의료·심리 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 팀장은 "한 60대 노인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빠져 자살시도를 한 일이 있었다. 보건복지에 대한 기대가 없었고 어떤 서비스도 신청하지 않고 고립되어 정신질환이 있었지만, 치료받지 못했다"며 "저희 센터에서 의료 연결 및 치료비를 지원했다. 이후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셔서도 취업을 하셨다고, 고맙다고 연락을 해오신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층 같은 경우, 상담만으로도 '이야기를 들어주니 도움이 많이 됐다'며 마음을 많이 터놓는다"며 "청소년들은 '살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자해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팀장은 "자살시도자의 신체 손상이나 부상이 경미한 경우에는 경찰을 통해서 센터로 연결된다"며 "정신질환 유무와 상관없이 위험성이 높은 분들을 집중적으로 상담하는 '위기 개입' 기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위험성이 높을 땐 1주일에 3번, 상태가 좋아지면 1주일에 1번씩 진행한다"며 "상태에 따라 8주보다 더 짧거나 길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이 직접 펜으로 적은 글씨. 그냥 넌 너라서 아름다워, 열심히 살자 등이 적혀있다. /임현경 기자
시민들이 직접 펜으로 적은 글씨. '그냥 넌 너라서 아름다워', '열심히 살자' 등이 적혀있다. /임현경 기자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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