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구속됐다. 양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대기장소인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모습. /의왕=김세정 기자 |
법원,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 발부…옛 사법부 수장의 몰락
[더팩트ㅣ임현경 기자] 법원이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로써 양 전 대법원장은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헌정 사상 최초 구속'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법원은 23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께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명재권 영장전담판사 심리로 영장실질심사(피의자 심문)를 진행한 끝에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사유에 대해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의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은 피의자 심문을 마치고 이동했던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그대로 수감됐다. 판사 시절 피의자 및 피고인을 보냈던 구치소에 직접 머무는 곤욕을 치르게 된 셈이다.
검찰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만나 강제징용 소송에 대해 직접 논의한 점, 특정 판사의 이름 옆에 'V' 표시를 해 인사 불이익을 준 점 등을 들어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관련 사건을 총지휘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세 차례의 검찰 조사에서 관련 판사들의 진술이나 물증과 어긋나는 진술을 한 점을 근거로 증거인멸 가능성을 제기했고, 앞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상급자였던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한 검찰은 이날 오후 안태근 전 검사장이 1심 공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안 전 검사장은 지난 2010년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 보복을 한 것과 관련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안 전 검사장과 마찬가지의 혐의를 받는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훨씬 많아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정숙·김병성 변호사 등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실무진에서 한 일을 알지 못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의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으며, 일부 직권남용 혐의는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이 2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모습. 수십 대의 카메라가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해 있다. /뉴시스 |
그러나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던 법원이 이날 이례적으로 검찰의 손을 들어주면서, 양 전 대법원장은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됐다.
일각에선 사법부 수장이자 국가의전 서열3위 대우를 받았던 인물이 피의자 신분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것 자체가 사법부의 권위를 떨어트린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법조인은 "불구속 수사·재판이 원칙이나, 국민정서와 사법부를 둘러싼 여론을 의식한 결과"라며 "사법부가 가진 권위가 무너지면서 3권 분립이 흐려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이 그간 '제 식구 감싸기'로 비판을 받았던 법원의 신뢰도를 회복시켜줄 것이라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법원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계기로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민사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심판 관련 내부정보 유출 △법관 사찰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해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문건을 보고 받았으며 직접 승인 또는 지시했다는 의혹 등 40여 개 혐의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