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박소연의 '구조→안락사→구조' 농락…구조(救助)의 딜레마
입력: 2019.01.19 00:00 / 수정: 2019.01.19 14:02
박소연 케어 대표 불법 안락사 논란은 동물을 둘러싼 구조의 딜레마를 시사한다. 케어가 지난해 9월 경기 부천의 한 개사육농장에서 식용견 40마리를 구조한 모습. /동물권단체 케어 제공
박소연 케어 대표 '불법 안락사' 논란은 동물을 둘러싼 구조의 딜레마를 시사한다. 케어가 지난해 9월 경기 부천의 한 개사육농장에서 식용견 40마리를 구조한 모습. /동물권단체 케어 제공

'노킬 쉘터(No-kill Shelter)' 표방 박소연 케어 대표, 충격의 안락사 파문

[더팩트ㅣ임현경 기자] "안락사로 죽이는 게 어떻게 동물 사랑입니까. 우리는 겨울엔 전기장판, 여름엔 선풍기를 틀어주고 사료도 고기만 먹이며 정성 들여 키웁니다. 구조한 개를 안락사시키는 '케어'에 비하면 우리가 더 동물을 사랑합니다."

임춘영 대한육견협회 관리이사가 지난 15일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외친 말이다. 포격당한 연평도에서 고양이들을, 개농장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개들을 구조했던 동물권단체 케어는 개농장주, 번식장 운영자 등에게 '우리가 더 동물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 대표는 과거 동물사랑실천협회 시절 동물들을 부분별하게 안락사시킨 뒤 암매장을 자행했으며, 케어를 운영하면서도 독단적으로 수백 마리를 안락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구조 활동을 펼치는 한편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동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케어는 2011년 이후 '안락사 없는 보호소', '노 킬'(No-Kill)을 표방하며 다른 보호소 및 동물권단체와의 차별화 전략을 사용했고, 이에 공감하는 이들의 많은 호응과 후원을 받아왔기에 큰 충격을 안겼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지난 11일 입장문을 통해 "이제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2015년부터는 단체가 더 알려지면서 구조 요청이 더욱 쇄도했다"며 "일부 동물들은 극한 상황에서 여러 이유로 결국에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 '노 킬(No-Kill)' 애초에 불가능…수많은 자문과 고민 필요

박 대표는 앞서 동물 구조에 있어서 절대 실현 불가능한, '죽음 없는 낭만'을 약속했다.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모든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수많은 동물들이 유기되고 심각한 질병과 학대에 노출된 상황에서 안락사는 사실상 불가피하고, 다만 그 과정과 사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17년 한해 동안 전국에서 구조된 동물은 10만2593마리에 달하며, 이 중 20%인 2만768마리가 안락사했다. 해외 동물보호소에서도 안락사는 이뤄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 소동물수의사회 등 국제 단체들이 연합한 ICAMC(International Companion Animal Management Coalition)는 이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도 했다.

동물권단체 '동물자유연대'의 채일택 사회변화팀장은 17일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우리 단체가 안락사를 절대 안 한다, 이런 것은 아니다. 홈페이지에도 공개한 부분으로, 수의사 2명 이상의 판단, 담당자와 팀장의 논의를 거쳐 결정,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닌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진다. 또, 그 과정에서 고통을 최소화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 팀장은 박 대표가 건강한 동물들을 안락사시켰다는 보도에 대해 "사실이라면 '안락사'라는 용어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인간의 존엄사와 동물의 안락사 개념은 다르지 않다"며 "박 대표가 행한 일은 분명히 안락사와는 '다른 종류의 죽임'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호하는 동물들에게 최대한 인도적인 대우를 하는 게 우리 단체의 목표다. 무조건적으로 구조를 진행한다면 '애니멀호더(Animal Hoarder, 동물을 잘 돌보는 게 아니라 동물의 수를 늘리는 데에만 집착하는 사람)'와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다"며 "고통당하는 아이들을 데려와 또다시 고통을 당하게 한다면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라 강조했다.

케어 측에서도 '노킬'이 안락사가 전무하다는 의미가 아님을 피력했다. 박소연 대표 사퇴를 위한 직원연대 소속 김태환 PD는 "사실 우리 단체가 내걸었던 '노킬'에 불가피한 안락사는 포함됐다고 본다"며 "'부당한 안락사'가 없는 보호소라는 의미임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동물 구조에 대한 낭만적인 인식은 지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은 참혹하고 죽음이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안락사를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러한 인식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물보호법 제22조는 동물의 인도적 처리에 대해 △동물이 질병 또는 상해로부터 회복할 수 없거나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으로 수의사가 진단 △동물이 사람이나 보호중인 다른 동물에게 질병을 옮기거나 위해를 끼칠 우려가 매우 높은 것으로 수의사가 진단 △기증 또는 분양이 곤란한 경우 등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 등의 경우에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케어가 지난해 6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개도살 금지 동물보호법 개정안 발의 환영 기자회견을 연 모습. 박소연 케어 대표가 가운에 서서 피켓을 들고 있다. /더팩트 DB
케어가 지난해 6월 국회의사당 앞에서 '개도살 금지 동물보호법 개정안 발의 환영 기자회견'을 연 모습. 박소연 케어 대표가 가운에 서서 피켓을 들고 있다. /더팩트 DB

◆ 사설보호소 동물보호법 적용 대상 아냐…"박 대표 허술한 법 잘 알고 있었을 것"

허술한 법률 또한 이번 사건을 가능케 했다. 박 대표는 2011년 다른 개들이 보는 가운데 진돗개 20마리를 안락사시킨 혐의로 기소 유예, 2008년 지자체 보조금을 부정수급한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아무런 제약 없이 단체를 운영하고 동물 관련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동물권 연구 변호사 단체 PNR 공동대표인 박주연 변호사는 이에 대해 "규정이 진작에 마련됐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박 변호사는 "동물보호법에는 동물 관련 전과자에게 동물보호활동이나 보호소 관련 자격을 제한하는 내용이 없고, 동물 학대 자체도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동물보호법 자체가 굉장히 미비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전과자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은 헌법 위헌 소지가 있어 조심스럽지만, 혐의와 관련한 행위를 제약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로서는 비영리단체나 법인 등록을 막는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동물 보호 활동은 제한할 수 없다"며 "비영리단체로 등록시 지자체는 관리·감독 권한이 없기도 하고,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실태조사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현행법상으로는 박 대표를 동물 학대 등의 혐의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봤다. 사설보호소는 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안락사를 규정하고 있는 동물보호법 제22조가 지자체 직영 또는 위탁 보호소에만 적용된다.사설보호소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였다"며 "동물보호법 제8조 동물학대 등의 금지를 적용할 수는 있겠으나 범죄 성립이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 관련 법은 너무나 허술하기 때문에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 박 대표 역시 이러한 법의 허점을 잘 알았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건 단순 개인 일탈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앞서 여러 의원들이 이에 관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진전 없이 계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발의한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임의도살금지법)은 △축산물 위생관리법·가축전염병 예방법·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법률의 규정에 의해 동물을 도살하거나 살처분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방지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동물의 습성 및 생태환경으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해당 동물을 다른 동물의 먹이로 사용 △수의학적 처치로서 불가피한 경우 등을 제외하면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수백 마리의 동물들을 안락사시킨 박 대표의 행위는 범죄에 해당한다. 공교롭게도 박 대표는 표 의원이 이 법안을 발의했을 당시 "큰 틀에서 봤을 때는 동물학대도 근절되고 동물의 존엄성, 동물권, 생명 존중에 관한 인식들이 훨씬 향상할 것이다. 국민을 위한 환경권과 건강권이 지켜지길 바란다"며 환영 의사를 표한 바 있다.

한 동물단체 관계자는 이를 두고 "임의도살금지법이 실제로 통과됐더라면, 박 대표는 자신이 주장했던 법에 의해 처벌받았을 것"이라며 "해당 단체가 이제껏 스스로 지향하는 바와 실제 행동하고 있는 바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있었을까 회의가 든다"고 비판했다.

박소연 케어 대표 논란은 동물권단체 전반을 향한 불신을 야기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케어 사무실의 문이 굳게 닫힌 모습. /이선화 기자
박소연 케어 대표 논란은 동물권단체 전반을 향한 불신을 야기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케어 사무실의 문이 굳게 닫힌 모습. /이선화 기자

◆ 동물권단체 불신 팽배 부작용 우려…모두에게 남겨진 과제

"데려다 죽이려고 구조한 거냐" "내가 구조한 아이는 어디로 갔느냐" 케어 사무국에는 이같은 내용의 전화가 빗발친다.

케어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대표 관련 보도 이후 2분에 한 통꼴로 회원 탈퇴 및 후원 철회 신청 전화가 온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800여 명에 달하는 회원이 이탈했고, 후원금 1500만 원이 날아갔다. 지난달 10톤의 사료 지원을 약속했던 기업마저 기부를 취소한 상황이다.

다른 단체의 사정도 케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50명 이상의 회원이 후원 취소를 요청했고, 동물자유연대는 이번 주에만 100명 정도가 후원을 해지했다. 박 대표를 둘러싼 논란과 배신감은 동물권단체 전반을 흔들고 있었다.

카라 관계자는 "'동물권행동 카라'와 '동물권단체 케어'가 이름이 비슷하다보니 사건 이전에도 두 단체를 혼동하는 분들이 있었다"며 "카라가 케어라고 생각해서 연락하는 분들, 동물보호단체는 모두 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동물 관련 단체 자체에 실망하신 분들 등의 연락을 받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동물권단체의 후원금 모금 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개농장·번식장·애견숍 운영자 등으로 이뤄진 반려동물협회는 지난 14일 성명문을 통해 동물권단체의 '동물을 이용한 감성 포르노'와 '깜깜이 운영'을 지적했다.

해당 단체는 "빈곤이나 질병으로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일으키고 모금을 유도하는 광고 방식 '빈곤 포르노'의 동물판"이라며 "수년 전 부터 후원금 모금을 위한 동물 이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는데 철저히 무시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물보호단체들의 깜깜이 운영은 아직 어떤 대책도 찾아볼 수 없다"며 "후원금을 모금하는 모든 동물보호단체의 후원금 사용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법적 강제 조항이 신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 논란을 핑계삼아 동물권 전체를 탄압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한 동물 보호 활동가는 "개농장이나 애견숍 운영자가 '포르노' 문제를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참한 현장을 누가 만들었냐 하면, 바로 그들"이라며 "불법 영업과 도살을 일삼고 비윤리적이고 생명을 경시하는 행위를 하는 업자들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고 역설했다.

수의사신문 '데일리벳' 이학범 대표는 "동물권단체들이 운영 투명성과 안락사 기준 등을 자성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일부의 잘못을 전체의 잘못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모든 동물권단체의 후원을 끊는다면 남아있는 동물들에게는 치명적일 것"이라 우려했다.

이 대표는 "후원 문화를 바꾸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저 '후원하고 땡'이 아니라, 단체를 잘 선별하고, 활동에 관심을 갖고, 감시할 필요하고 있다"며 "이번 케어 사건은 이러한 지점들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라고 강조했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이에 대해 "이제는 내부의 시각만이 아닌 시민의 눈높이에서 우리를 투명하게 보여드리고자 한다. 지금껏 우리가 해왔던 일들이 시민들에게는 미흡하게 보였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고 있다"며 "보완을 통해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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