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 눈] '몰카범' 변호사 등록 파문...'성범죄' 변호할 수 있나
입력: 2019.01.14 05:00 / 수정: 2019.01.14 06:29
대한변호사협회는 최근 몰카 촬영 이력이 있는 전직 판사와 후배들을 성추행한 전직 판사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 이덕인 기자
대한변호사협회는 최근 '몰카' 촬영 이력이 있는 전직 판사와 후배들을 '성추행'한 전직 판사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 이덕인 기자

현행법상 변호사 등록 제한 근거 없어… "법 개정 않는 한 내부 규정 강화 어렵다"

[더팩트ㅣ임현경 기자]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윤리장전에 적힌 첫 문장이다. 9일 세상에 알려진 두 명의 '신입' 변호사는 이같은 직업 윤리 강령에 물음표를 던졌다.

판사 출신인 자유한국당 중진 의원의 아들이자, 성범죄 전담 재판부 판사 A씨는 2017년 서울지하철 4호선 전동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여성의 신체부위를 3회 촬영하다가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붙잡혔다. A씨는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고, 이후 대법원으로부터 감봉 4개월 징계 처분을 받았다.

사직서를 내고 스스로 법원을 나온 A씨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다. 이에 변협 등록심사위원회는 지난 8일 A씨의 신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찬성 7명·반대 2명)했다. 마침내 A씨는 변호사가 됐다.

2013년 군 법무관일 당시 여자 후배를 유흥업소로 불러 성추행, 2014년 판사로 임용된 뒤 다른 여자 후배를 음식점과 노래방 등에서 수 차례 성추행한 B씨도 지난달 변협 등록심사(찬성 6명·반대 3명)를 통과해 변호사가 됐다.

B씨는 지난 2015년 재판에 넘겨졌고, 대법원은 징계 없이 그가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 B씨는 벌금 700만 원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받았다. B씨는 현재 모 대형로펌에서 성범죄 분야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전직 판사의 성범죄에 경징계 처분을 내리거나 징계 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정의의 여신상이 있는 대법원 전경. /더팩트 DB
대법원은 전직 판사의 성범죄에 경징계 처분을 내리거나 징계 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정의의 여신상이 있는 대법원 전경. /더팩트 DB

이러한 상황은 현행법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변호사법 제5조(변호사의 결격 사유)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의 변호사 활동을 2~5년 제한하고 있다. 검사·판사 등 공무원 재직 중 정직 징계처분을 받은 자라도 정직기간이 끝나면 결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A씨와 B씨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판사 재임 당시 정직 처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직한 것이기에 결격 사유가 없었다.

변협 관계자는 이에 대해 "등록심사위는 비공개로 진행돼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정확히는 모른다"면서도 "A씨와 B씨는 피해자와 합의하고 그간 충분한 자숙기간을 가진 것을 감안해 심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여론이 좋지 않은 건 협회 측에서도 인지하고 있지만, 범죄의 경중에 따라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행법과 별개로 협회 내부 규정을 강화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변호사마다 생각이 달라 협회 내부 의견이 통일된 것도 아닌데, 회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바꿀 순 없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변호사법이 개정된다면 몰라도 (변호사들이) 스스로 나서서 하긴 어려운 상황이다"며 입법 기관에 책임을 돌렸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변호사의 자격을 부여하는 '법'에 따라, '몰카범'과 '성추행범'은 이제 신입 변호사가 되어 얼마든지 사건을 수임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는 성범죄 사건 조차도 말이다. 반복적으로 후배를 성추행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사람이 피해자의 무너져내린 마음을 위로하고 가해자를 향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변호사의 이익을 보호하는 규정과 법은 묘하게 변호사의 의뢰인인 국민을 등지고 있다. A씨, B씨와 같이 범죄 이력이 있는 이들의 실명은 인권 침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므로 공개하기 어렵다. 즉, 누군가는 변호사의 과거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법률대리를 맡기게 되는 것이다.

변호사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이 되기도 한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뉴시스
변호사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이 되기도 한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뉴시스

1990년대 후반 수임비리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변호사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자, 변협은 2000년 7월 '직업윤리를 확립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변호사로 다시 태어난다'는 취지로 변호사윤리장전 전문을 개정·발표했다. 가장 상단에 명시된 변호사의 윤리 강령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며 △성실·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명예와 품위를 보전하고 △법의 생활화운동에 헌신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의 봉사하며 △용기와 예지와 창의를 바탕으로 법률문화향상에 공헌하면서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힘쓰며 부정과 불의를 배격한다.

인권을 수호하고 불의와 투쟁하겠다 선언했던 이들이 현재 '누구를 위해' 법을 해석하고 변호하며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인지 돌아볼 일이다. 변호사 자격 등록을 위한 윤리 조건을 강화하는 것이 '회원들의 불이익'이자 '변호사끼리 의견 통일이 어려운 사안'이 되어버린 지금, 변호사윤리장전은 다시 쓰여야 하지 않을까.


ima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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