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를 상습 성폭행한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를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이 비호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스포츠계 전문가들은 빙상계 내 '카르텔'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남용희 기자 |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 "제도 개선 전에 사람 바뀌어야"
[더팩트|문혜현 기자] 조재범 전 한국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의 심석희 선수 성폭행 의혹을 시작으로 한국 스포츠계에 '미투' 파문이 일고 있다. 조 전 코치로부터 피해를 당한 심 선수의 고발 이후 2명의 선수가 추가 폭로를 예고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빙상연맹 내의 '카르텔' 문제를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17일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는 자신을 14년간 지도해온 조 전 코치로부터 받아온 폭행과 더불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14년부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한 달 여 앞둔 지난해 1월 중순까지 4년 간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했다. 미성년자일 때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파장은 더욱 컸다.
또한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건을 무마하려 한 스포츠계의 병폐도 드러났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빙상계만의 문제는 아니다"면서도 "한 마디로 지금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 체제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한 사람의 독재 권력이 있고, 그 기간 파생된 인맥이 자신들의 이익을 공유하면서 해왔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라며 "조 전 코치는 2년 전 승부 조작 사건이 있었음에도 전 전 부회장의 사람이기 때문에 국가대표 코치까지 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스포츠계 미투를 저지하고, 막고자 하는 세력의 배후에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의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실제 조 전 코치와 전 전 부회장의 '특별한 관계'는 사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빙상인연대 법률자문 박지훈 변호사는 한 매체를 통해 "수개월 전 성폭행 사건을 인지했을 때부터 전 전 부회장 측에서 선수들에게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왔다"며 "변호사 선임 등 움직임을 보일 때부터 압박이 시작됐고, 이번 폭로 직전까지도 계속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전 전 부회장이 심 선수의 고발 기자회견을 저지하려 했다는 녹취 파일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당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심 선수의 폭행 피해 고백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설지 모르니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겁을 줘서 동조하지 못하게 하라'는 전 전 부회장의 목소리가 담겼다.
이에 대해 최 소장은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며 "현재 제도와 시스템 개선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새로운 조직이나 단체를 만들어도 같은 사람들이 맡게 되면 전혀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이어 "지금 있는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범죄를)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인권센터, 비리신고센터 등이 모두 갖춰져 있지만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게 문제다. 체육계 내부의 인식 전환도 중요하지만 일종의 세대 교체, 주류 교체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경렬 체육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관계 기관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개인의 문제로 덮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 중심으로 원인을 귀결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코치 배정과 관리에 권한을 가진 상위 기관은 징계도 받지 않는다. 관계 기관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특히 빙상계가 예전부터 파벌 싸움이 심했다"며 "지도자나 코치에 대한 입김이 센 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젊은빙상인연대는 오는 14일 기자회견을 통한 추가 피해 사실 발표 계획을 주말 동안 재논의하기로 했다. 이들은 "고발 선수들 중 현역 선수들이 있는데다 피해자들이 심적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추가 폭로를 하는 것으로 논의가 귀결되면 스포츠계 미투와 빙상연맹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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