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후쿠시마 원전 사고 7년…국민 불안은 '진행형'(영상)
입력: 2018.03.22 05:06 / 수정: 2018.03.22 08:49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7년이 지났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일본산 수산물의 방사능 우려에 대한 불안감을 보였다. 사진은 손님이 줄어 텅 빈 노량진 수산시장의 모습./노량진=변지영 기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7년이 지났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일본산 수산물의 방사능 우려에 대한 불안감을 보였다. 사진은 손님이 줄어 텅 빈 노량진 수산시장의 모습./노량진=변지영 기자

국민의 87% "정부의 방사능 정보 신뢰 못한다" 밝혀

[더팩트 | 노량진=변지영 기자] "손님 없는 것 안 보이세요? 일본산은 취급 잘 안해요."

지난 20일 노량진 시장에서 10여 년 째 활어 도매를 하고 있는 김태일(39) 씨는 일본산 수산물을 판매하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 씨는 "원전 사고가 터진 뒤 오히려 더 철저히 검사한다는 인식 때문에라도 소비자들이 일본산을 조금씩 사는 분위기였는데, 최근 WTO 판정에서 패소하면서 분위기가 나빠졌다"고 토로했다. 또 김 씨는 "일부 상인들도 일본산이라고 말하면 물건을 사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해한다"고 말했다.

김 씨가 말하는 'WTO 패소'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우리 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조치에 대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WTO가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을 말한다.

지난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 7년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수입되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은 끝나지 않고 있다.

2013년 9월 도쿄전력이 원전 오염수 유출 사실을 발표했을 당시 우리 정부는 방사능 오염 우려가 있는 일본 8개현(후쿠시마,이바리키,군마,미야기,이와테,도치기,치바,아오모리현) 수산물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는 특별 조치를 내렸다. 또 일본산 식품에서 미량의 세슘이 검출될 경우 다른 핵종 검사증명서도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5월 우리 측 조치 중 일부 조항이 WTO협정 위반이라며 제소했다. 3년간의 분쟁 끝에 WTO가 우리 정부의 일본산 수산품 수입규제 조치에 대해 '협정 불합치'판정을 내리면서 재판에서 패소했다. 정부는 즉각 상소한다는 방침이지만 일부 일본산 방사능오염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마저 해제될까 하는 우려에 국민들의 불안감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 일본산 수산물 수입 재개 우려에 시장 발길도 '뚝' 끊켜

지난 20일 오후 4시경 <더팩트> 취재진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한산했다.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은 있었지만, 국내 여행을 하기 위해 들린 이들이 태반이었다. 오랜만에 들려온 인기척에 상인들은 가게에서 나와 중국어, 영어 등 각국의 언어를 쓰며 손님을 불렀다. 기자가 지나치자 실망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량진 수산 시장은 수도권 수산물 시장의 45%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수산물 유통 시장이다. 하지만 이날 시장은 옛 명성이 무색할 만큼 조용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기 지쳤는지 상인들은 서로 모여 늦은 점심을 해결하거나, 책을 보는 등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바빴다.

분위기가 보여주듯 이날 상인들의 목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았다. 이날 현장을 지켜본 결과,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소비자들은 상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또 상인들은 수산물 자체에 대한 우려로 고객이 줄어드는 실정에 생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40년째 생선회를 도소매하고 있다는 상인 이호준(42) 씨는 "회가 대중화됐지만 일본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전하다"며 "간간히 참돔, 줄돔 등 어종에 따라 일본산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이 전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아구 전문 도매 상인 이모(53) 씨는 "3월부터 갑자기 손님도 줄어 힘들다"면서 "좋은 제품을 권했는데, 고객들이 일본산인지 의심하는 시선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매상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도매보다 회를 잘 모르는 일반 소매에서 종종 수산물 원산지를 고지하지 않거나 속이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WTO에서 우리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에 대해 패소 판정하면서 일본산 수산물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마저 생기고 있다. /변지영 기자
지난달 WTO에서 우리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에 대해 패소 판정하면서 일본산 수산물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마저 생기고 있다. /변지영 기자

◆ 원산지 둔갑한 '日 방사능 수산물'에 수산시장 위축 우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시장 분위기는 일본산 수산물은 피하고 보자는 쪽이었다. 이날 수산 시장을 찾은 주부 한여진 (34)씨는 일본산 수산물을 살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일본산은 무조건 피한다면서 "표기한 원산지에 대한 믿음도 적지만 가능한 원산지는 따져 구매한다"고 대답했다.

실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지 만 7년이 되어가지만, 우리 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의원(국민의당)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방사능 국민 인식도 조사 위탁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성인 1023명을 대상으로 한 질문 중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산 수산물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5.3%, 일본산 수산물이 여전히 불안하다는 응답은 79.2%에 달했다.

또 수입규제를 지속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5.3%는 '수입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고 37.2%는 '매우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입규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일본산 식품 수입을 전면 금지해야 된다'가 45.5%, '적어도 특정 지역(현) 산물 또는 특정 품목(수산물 등)에 대해서는 당분간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가 39.6%로 전체의 85.1%가 강력한 금지 조치를 요구했다.

일본의 원전 사고 이후, 일본산 제품 구입 빈도를 묻는 질문에 수산물(55.3%)과 농산물(56.3%)을 '구입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일본산 수산물을 구입하지 않거나 빈도가 줄었다고 밝힌 응답자의 79.2%는 '여전히 일본산 수산물은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전했다. '일본산 수산물의 방사능이 거의 검출되지 않는 수준이라도 구입하지 않겠다'는 응답도 59.5%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 의원은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국민 불안은 여전하다"라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수입규제와 식품 방사능 관리를 철저히 하는 등 국민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눈에 띈 통계 결과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처 의견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식품 방사능 관리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0.7%에 불과했다. 방사능 정보에 대해 '정부를 신뢰한다'고 밝힌 국민은 16.2%에 불과했다.

일본산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심리로 상인들도 원산지 표기를 교묘하게 가리거나 원산지를 속이는 행태도 생겨나고 있다. /변지영 기자
일본산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심리로 상인들도 원산지 표기를 교묘하게 가리거나 원산지를 속이는 행태도 생겨나고 있다. /변지영 기자

◆ 국민들의 불안 확산…취약한 단속인원 수도 한몫

정부가 잇따른 해명과 WTO에 상소의사를 표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줄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소비자의 불신을 해소할 만한 단속 기구가 취약하다는 데 있다.

실제 팔리지 않는 일본 수산물을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하는 일부 업자들이 있음에도 원산지위반 여부를 단속할 전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지난 12일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수산물 원산물 위반 여부를 단속하는 전담 인력은 20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26개 기초단체를 관리하는데, 고작 20명의 인원이 투입된다. 이는 1인당 평균 13개 시·군·구를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서울에만 원산지표시 대상업소가 13만5496곳이지만 단속인원은 2명에 불과했다. 실제 지도·단속 비율은 연 11.2%에 그쳤다. 10년에 한 번 정도 조사한 수치다.

이는 농산물원산지표시대상 업소 134만곳을 단속하고 있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250명 전담인력에 배치된 것에 비해도 현저히 적다. 지도·단속 비율은 연 20% 수준으로 5년에 한 번 꼴로 전체 업소를 조사할 수 있는 인력이다.

이처럼 정부의 구멍난 단속조치 속에 유통단계에서 일본산이 국내산으로 둔갑해 판매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실제 지난해 수입수산물 중 일본산을 둔갑판매하다 단속된 건수는 모두 59건에 그치는 등 단속의 허점을 보이기도 했다.

소비자단체들은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통관 기준을 유럽기준으로 크게 강화하거나 전면적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산 수입 수산물에 대해 '전수조사'라고 표현하지만, 정확히 '전품목 조사'가 아니지 않느냐"며 현재 검사 방식에선 사실상 "'전수조사'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 최준호 사무총장은 "정부와 식약처 등 관계부처가 국민들의 신뢰를 해소시킬 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WTO 패소에 대해서도 "지난 정부의 대처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정부에서는 강력한 대처를 해야 하지만 아직 국민들이 체감할 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수입물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촘촘한 수산물 이력제를 통해 일본산 수산물의 반입 경로를 명확히 공개해야 하며, 상소를 통해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적극적으로 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hinomad@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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