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혐의 부인' MB, 조서 검토만 6시간 할애한 이유는?
입력: 2018.03.16 01:30 / 수정: 2018.03.16 05:47

15일 오전 6시 25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약 21시간의 조사를 마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사를 나서고 있다. / 문병희 기자
15일 오전 6시 25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약 21시간의 조사를 마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사를 나서고 있다. / 문병희 기자

역대 검찰 조사 받은 전직 대통령 중 두 번째 최장 조서 열람자

[더팩트|김소희·변지영 기자] 이명박(77) 전 대통령이 21시간가량 진행된 검찰 조사 과정 중 조서 검토에만 6시간 넘는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전해진다. 190쪽 분량의 조서를 하나하나 직접 검토하고 일부 진술 내용은 검찰에 수정 또는 추가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15일 검찰 등에 따르면 전날인 14일 오전 9시 22분 검찰에 출석한 이 전 대통령은 21시간 동안 검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는 14시간 소요된 반면, 조서 열람 및 검토는 6시간 30분가량 이뤄졌다. 통상 피의자 조서 열람은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4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과 비교된다.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조사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는 총 190쪽 분량에 달했다. 이 전 대통령은 조사에 입회한 강훈(64·사법연수원 14기)·피영현(48·33기)·박명환(48·32기)·김병철(43·39기) 변호사와 함께 자신이 피의자로 적시된 신문조서를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직접 조서를 여러 번 반복해 읽은 것은 물론, 자신의 진술 내용 중 일부에 대해서는 "이런 취지로 말한 것이 아니다"며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의 조사 시간과 조서 열람 시간은 검찰 조사를 받은 전직 대통령 다섯 명 중 두 번째 최장 시간을 기록했다. 지난해 3월 21일 검찰 조사를 받은 박 전 대통령도 22시간 가까이 진행된 검찰 조사 중 7시간가량을 조서 검토에 쏟았다.

앞서 지난해 2월 18일 특검 소환 조사를 받은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5시간 이상에 걸쳐 조서를 검토한 바 있다. 당시 13시간 40분 동안 조사를 받은 우 전 수석은 5시간 가까이 자신의 조서를 살핀 뒤 이튿날 오전 4시 45분 특검 사무실을 나섰다.

일각에서는 우 전 수석이 조서를 통째로 외워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나온 우 전 수석이 곧바로 자신과 근무했던 검사, 검찰 수사관들을 찾아가 특검이 조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구속영장에 담을 혐의 사실을 반박하기 위한 제3자의 진술서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법원에서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받아낸 것도 꼼꼼한 조서 검토 결과라는 추측도 나왔다.

'거물급' 피의자들이 조서 검토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재판에 있어 피의자가 진술한 조서가 재판 증거자료로써 혐의를 인정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조서에는 검사 및 사법경찰관 등 수사기관이 참고인이나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진술 조서'와 '피의자 신문조서'가 있다.피의자 및 참고인이 조서를 검토해 자신의 취지와는 다르게 기록된 부분이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면 수정할 수 있다. 더이상 이의나 의견이 없다고 생각되면 기명날인이나 서명을 하면 최종 마무리된다. 이에 '조서 열람·검토'에는 통상 2~3시간 이상 정도가 소요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및 횡령,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14일 오전 9시 22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및 횡령,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14일 오전 9시 22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특검과 삼성은 검찰 신문조서를 증거로 채택할지에 대해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2017년 10월 12일 열린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첫 공판에서 박영수(65) 특별검사팀과 이 부회장 측이 박상진(65) 전 삼성전자 사장의 일부 진술조서 증거 능력을 두고 다퉜다.

당시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의 피의자 신문 조서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독대 후 정유라의 지원 상황을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게 업데이트 해줬다"고 적시됐다. 특검은 이 조서 내용을 토대로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처음부터 정씨만 지원할 목적으로 승마훈련 자금을 댄 것 아니냐"며 이 전 부회장을 추궁했다.

이 부회장 측은 1심 재판 과정에서 박 전 사장의 특검 2회 진술조서에 대해 증거 채택이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진술거부권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부장검사 출신 김덕재 변호사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검사 작성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피의자가 직접 검사 앞에서 말한 진술이기 때문에 통상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고 있다"며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는 법정에서 부인해도 인정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에 조서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의도와 다르게 피의자 신문조서가 작성됐는데도 확인하지 않고 서명을 하면,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는 것으로 보여 죄질이 불량해 보일 수 있고, 양형과 향후 법정공방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검찰 안팎에서 이 전 대통령이 6시간 30분 넘게 조서를 검토한 것을 두고 평소 신중한 성격도 작용했겠지만 최측근이 최근 줄줄이 검찰 수사에 불려가는 것을 보면서 치밀하게 재판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김 변호사는 "꼼꼼한 조서 검토는 다음 재판 전략을 짜는 데 도움이 된다"며 "혹시 모를 기소에 대비해 검찰이 어떤 증거를 내놓을지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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