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5년 옥외가격표시제<상>] 미용실·식당 '꼼수', 불만 커지는 소비자(영상)
입력: 2018.03.09 05:08 / 수정: 2018.03.12 14:39

서울 구로구의 한 미용실이 올해로 5년째를 맞는 옥외가격표시제를 사실상 손님을 낚는 미끼로 활용하며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있다. /변지영 기자
서울 구로구의 한 미용실이 올해로 5년째를 맞는 옥외가격표시제를 사실상 손님을 낚는 미끼로 활용하며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있다. /변지영 기자

정부가 소비자의 선택권 강화와 요금 안정을 위해 2013년 1월부터 시행된 '옥외가격표시제'가 올해로 5년 째를 맞는다. 매장 면적 66㎡(약 20평)이상의 이·미용실과 150㎡(약 45평)의 일반음식점 및 휴게음식점을 의무 업종으로 외부에 5개 품목 이상의 서비스 가격을 표시해야 한다. 2016년 7월부터는 학원도 의무 업종으로 지정됐다. 이 제도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봤다. <편집자주>

[더팩트| 변지영 기자] "두 번 속이는 거 아니에요? 기분 더 나빠요."

지난 7일 서울시 구로구의 한 미용실을 찾은 강영미(36) 씨에게 외부에 고시된 가격에 맞게 서비스를 받았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돌연 이렇게 말했다. 강 씨는 "입구에 붙여놓은 가격은 미끼 아니냐" 면서 "고객을 두 번 우롱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강 씨는 "2달 전 바가지 비용을 내고 머리를 했다"며 "워낙 악곱슬이라 미용실에서 매직을 자주하는데, 입구에 세워 놓은 '매직 4만9000원'이란 입간판의 가격만 믿고 들어갔다가 낭패를 봤다"고 말했다. 이미 샴푸를 끝낸 상황에서 미용사가 '모질을 보니 단백질 함유량이 높은 클리닉을 받아야 한다'고 뒤늦게 고지해 울며 겨자먹기로 추가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외부 가격표는 믿지 않게돼 단골 미용실만 찾는다"면서 "명확한 제도 개선이 없다면 '충주 미용실 사건'처럼 부당한 요금을 내게 되는 건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라고 말했다.

강 씨가 말한 충주 미용실 염색 사건은 지난 2016년 5월 26일 충청북도 충주시에 위치한 한 미용실 업주 안모 씨가 고객에게 가격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상습적으로 부당 요금을 받아온 사건이다. 특히 해당 미용실이 과거에도 장애인, 새터민(탈북민),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을 상대로 230여만 원의 부당요금을 청구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의 공분을 더했다.

옥외가격표시제도가 알려진 데에도 당시 해당 미용실에서 뇌 병변을 앓고 있던 장애인에게 머리 염색 값으로 52만 원을 청구한 사건의 영향이 컸다.

◆"미용실, 음식점 옥외가격표시제…손님 유혹 미끼로 전락"

가격 비교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제도가 시행된 지 5년째지만, 가격표시 지침에 적합하지 않거나 형식적인 수준에 그쳐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일 <더팩트> 취재진은 직장인 손님들이 많은 서울시 구로구를 찾았다. 구로구에 위치한 대부분의 미용실에서는 옥외가격표를 게시하고 있었다. 구로구에 위치한 한 미용실은 오후임에도 시간을 내 찾아온 손님들로 가득했다. 입구 앞에는 '컷트(커트)', '셋팅(세팅)', 매직 등 각종 시술에 대한 가격을 책자로 고지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금방 실상이 드러났다. 미용사에게 앞의 가격을 보고 들어왔다고 하니, 머리가 반 이상 탔다며 단백질 함유량이 높은 4~6만 원의 클리닉 시술을 포함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도가 잘 이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다수 가격표가 그럴 듯하게 최저금액만을 고지해 고객을 호객하는 쇼윈도 광고판으로 전락한 실태를 그대로 보여줬다.

특히 게시한 가격표에는 요금 책정 기준을 모호하게 적은 뒤, 머리 길이, 숱 등에 따라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등 소비자에게 안내된 금액과 실제 금액이 다른 경우도 많아 소비자 선택권 강화와 업종의 신뢰도 증진이라는 도입 취지를 무색케 했다.

최종요금을 고지해야 함에도 미용실은 모호한 가격을 표시해 놓고 손님을 유혹한 뒤 실제로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추가 요금을 받고 있다. /변지영 기자
최종요금을 고지해야 함에도 미용실은 모호한 가격을 표시해 놓고 손님을 유혹한 뒤 실제로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추가 요금을 받고 있다. /변지영 기자

오죽하면 소비자들도 입구에 세워둔 가격표시를 미끼로 인식하는 등 가격표 자체에 신뢰를 하지 않고 있다.

이날 미용실을 찾은 김보람(29) 씨는 "그걸 누가 믿어요"라며 불신의 이유를 설명했다. "천차만별인 미용실 가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몇 년 전부터 가게에 들어가지 않고도 가격을 쉽게 비교할 수 있게 외부에 가격표가 배치돼 좋았다. 하지만 미용실 가격표에 적힌 가격만을 내고 나온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미용실 업주들도 할 말은 있다. 이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며 항변했다.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최종요금'을 미리 알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옥외에 공지한 가격과 실제 지불하는 비용이 차이 나는 이유를 묻자 4년 차 미용사 김모(31) 씨는 "음식처럼 눈에 딱 보이는 제품이 아닌 서비스라서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17년 차 미용사 송모(38) 씨는 "솔직히 최저요금을 고지해야 소비자들이 찾아온다"면서 "머리 길이나, 숱 등의 이유를 들어 추가비용을 높이는 게 각 디자이너의 실적에도 포함되기 때문에 홍보성으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미용실이 외부가격표에 표시해야하는 '가격'은 소비자가 해당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최종 가격으로, 부가가치세, 봉사료 등을 포함한 실제지불가격을 의미하지만 실제 미용실에 붙여 놓은 옥외가격표는 손님을 끌어들이는 미끼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이 전국 211개 미용실을 대상으로 옥외표시가격과 실제 지불금액을 조사한 결과, 추가요금이 발생하는 곳이 84.7%(179곳)에 달했다.

서울의 먹자골목 음식점 업주들은 가게 입구와 거리가 있는 중앙 통로에 가격표를 세워 광고판으로 활용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변지영 기자
서울의 먹자골목 음식점 업주들은 가게 입구와 거리가 있는 중앙 통로에 가격표를 세워 광고판으로 활용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변지영 기자

옥외가격표시제가 꼼수로 변질된 것은 음식점들도 마찬가지였다.

구로구를 비롯해 금천구, 경기도 동안구의 먹자골목에 있는 음식점들은 공통적으로 중앙 도로에 큰 현수판을 걸거나 입간판을 세우는 방식으로 옥외가격표를 업소 광고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 한식이나 분식집 등 단일 품목을 파는 업종은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횟집, 호프집 등에서는 외부가격표시를 한 가게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유독 음식점들이 업종별로 옥외가격표시를 이행하는 데 편차를 보이는 것은 제도가 업종의 메뉴에 대한 고민 없이 일괄적인 표시기준을 들이댔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정책경영국 김원식 과장은 "타 업종에 비해 음식점은 한식, 일식, 중식 등 메뉴가 다양하다. 한식당의 경우 5개 이상 표시는 간단하지만 호프집이나 횟집 등은 사실 술을 올려야하는지 안주를 내야하는지 실효성이 떨어지고, 횟집은 싯가에 따른 변동이 있어 최종가격고지가 애매한 것"이라면서 "업계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구분해 제도가 적용되야 한다"고 말했다.

구로구에 위치한 음식점들은 입구 앞에 가격을 표시하는 대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가격을 표시해 보행자의 통행과 건물의 미관을 해치고 있었다.

업소 입구에 옥외가격표시가 없는 이유를 묻자 족발집 업주 고모(62) 씨는 "아예 중앙 통로 앞에 크게 세워놨다"면서 "다른 업체들도 다들 광고 용도로 활용하는데 우리만 입구 앞에 표시하면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옆 건물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한모(58) 씨도 "A4용지로도 가능하다는데 이렇게 많은 음식들 중에 무얼 골라 적어야 하느냐"면서 "그림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입구에서 떨어진 중앙에 현수막으로 세워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음식점은 업종별로 옥외가격표시제 이행률에 차이가 발생했다. /변지영 기자
음식점은 업종별로 옥외가격표시제 이행률에 차이가 발생했다. /변지영 기자

이를 단속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실제 시행법규에는 '외부가격표시물은 영업소의 입구나 주출입문 주변 등 소비가가 외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여야 한다'고 공시돼 있어 법에 명시된 게시 위치의 기준이 모호해 단속을 한다 해도 행정처분을 받을 일은 희박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다수의 업주와 소비자들은 옥외가격표시제도가 의무인지조차 모르기도 했다. 이는 시행 후 5년이 흘렀음에도 제대로 된 점검과 홍보가 이뤄지지 않아 업주와 소비자들의 인식에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음을 방증했다.

이날 호프집을 찾은 김모(26) 씨 "단순히 홍보를 위한 가격표시인줄로만 알았다"며 "밖에 있는 가격표를 보고 들어가면 가게에서 점심 메뉴와 가격이 다르다고 말해 비싼 값을 낸 적이 있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위한 것이라면 단속을 제대로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관계부처의 '형식뿐인 단속'에 꼼수 가격표 늘어

이처럼 옥외가격표시제가 고객을 호객하는 미끼로 전락해버린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미용업계와 요식업계는 정부의 미비한 점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용업계 측은 이 제도가 시행될 당시부터 의견 수렴과정이 체계적이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지자 우후죽숙 허위 요금을 기재하는 미용실들이 판치게 됐다며 허울뿐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미용사회중앙회 서영민 홍보국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현장의 미용실 가격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커트의 경우만 해도 큰 미용실 같은 경우는 원장님의 경력 등에 따라서 책정되는 비용이 다르다. 궁여지책으로 옥외에 가격을 써두지만 그 간극이 너무 커서 크게 의미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 국장은 "제도가 도입될 당시 현장 업주들이나 중간 의견 수렴인인 미용업계의 여론 수렴도 없이 공문이 내려와 법이 시행됐다"고 전했다.

서 국장은 "청주에서 장애인을 상대로 폭리를 취했던 한 명의 미용사가 문제가 되면서 복지부에서 성급하게 부랴부랴 도입한 측면이 있다. 만드나마나 한 법이라면 시장에서 호응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주무부처 공무원들이 정책을 알고 대화를 할 만하면 자주 바뀌면서 도돌이표처럼 현장의 반영이 헛돌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사회가 신뢰 사회로 구축되면 가장 좋겠지만 무엇보다 현장의 실태를 파악하고 목소리를 담은 관리 감독이 있다면 이 제도가 장기적으로 정착되는데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무부처의 열악한 점검 인원과 형식뿐인 점검 절차가 옥외가격표시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 /변지영 기자
주무부처의 열악한 점검 인원과 형식뿐인 점검 절차가 옥외가격표시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 /변지영 기자

보건복지부 구강생활건강과 이태호 사무관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제도는 입법예고를 거치고 절차를 밟아서 적절히 시행했다"면서 "미용실에서 소비자들에게 제대로된 가격을 고지하지 않고 부풀려 받는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을 위해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사무관은 "올해도 몇 차례 현장 점검에 나섰다"면서 "올 1월 서울, 경기, 충청권의 8개의 미용업소를 무작위로 방문해 이행 여부를 점검했지만, 적발사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자주 바뀌면서 업계와의 소통이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업무를 맡은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 2년 주기로 발령을 나가다보니까 어쩔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지자체는 한정된 인원으로 모든 업소들을 점검하기란 사실상 무리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구로구청 위생과 홍지숙 주무관은 "재작년 12명이 구로구 전체를 돌며 미용실을 점검했다"면서 "행정처분이라기보다는 시정조치가 가능한 부분을 계도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일일이 잡으면 업소 차원에서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홍 주무관은 "재작년 구청의 점검 결과 옥외가격표시제를 위반한 사항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사실상 고지한 비용과 내부에서 지불하는 비용이 같은지에 대해서는 점검 과정에서 확실히 알 수는 없다"고 말했다.

동안구청 환경위생과 식품안전팀 박직수 팀장도 "현재 동안구에만 380개 업종의 음식점들이 있다. 점검 결과 식당은 옥외가격표시제도가 잘 정착한 상태"라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안전정책과 김홍태 사무관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어떤 규제든 찬반이 나뉜다. 식재료 원료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나는데, 가격 표시의 효과가 있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기 때문에 여러 이야기를 수렴해 신중히 검토히 진행해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대답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특정 업소들이 옥외가격표시제를 홍보용이나 미끼 상품으로 변질해 활용하면서 경쟁이 치열한 중심상권에서는 업소가 소비자의 신뢰를 잃는 문제도 생기고 있다"면서 "단순히 표시했는지만을 확인하기보다 지불 비용이 같은지를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실효성 있는 옥외가격표시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가격표시 방법 및 형식의 표준화 방안 마련, 옥외가격표시지침 준수 지도 등을 관계부처와 각 지자체에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hinomad@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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