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각의 노동자⑤] 목숨줄 죄는 '살인 크레인'…"책임자는 없었다"(영상)
입력: 2018.03.08 05:00 / 수정: 2018.03.10 11:23
잘못된 건설현장 구조가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김소희 기자
잘못된 건설현장 구조가 노동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김소희 기자

대한민국은 안전한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가 안전이지만 사고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 제천 스포츠센터, 밀양 세종병원 등 잇단 화재 참사에 '안전 슬로건'은 오히려 무색할 지경이다. 특히, 대형 참사로 이어진 사건은 결국 '인재'로 인한 경우가 많다. 이는 제도적 허술함과 관리의 미숙함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여전히 안전을 위협 받는 노동자들을 취재했다. 이를 통해 제도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 | 김소희 기자] "무리한 작업이라고 판단돼도 말 못 하고 그냥 하는 거죠. '위험하다'고 말하면 해고 당하니까요."

27년간 크롤러크레인 기사 생활을 한 강동구(54) 씨는 6일 잇따른 크레인 안전 사고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강 씨는 "크레인 기사가 작업을 하다가 '여기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판단돼도 의견을 말할 수가 없다"며 "사용자는 '당신은 크레인에 앉아서 일이나 하라', '판단은 우리가 하니 간섭하지 말라'고 역정을 내기 때문에 기사는 무리한 작업을 하게 되는 거고, 사고가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라고 했다.

지난해 5월 1일 일어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도 '인재(人災)'였다.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친 삼성중공업 크레인 붕괴 사고는 800톤급 골리앗크레인과 32톤급 타워 크레인이 부딪쳐 건조하던 해양 플랜트 구조물 위로 떨어지면서 일어났다. 골리앗 크레인이 타워크레인 와이어와 도르래를 잇달아 충격했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타워크레인이 밑으로 떨어져 휴식을 취하던 근로자들을 덮쳤다.

당시 경찰은 크레인 안전관리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채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곳에서 크레인 기사와 무전과 수신호로 소통해야 하는 신호수의 미수행, 현장을 책임지는 안전관리자 부재를 사고 원인으로 봤다.

크레인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크레인 사고 사망자 수는 2014년 5명, 2015년 1명, 2016년 1명이었다가 2017년 20명으로 늘었다. 같은 달 22일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도 크레인 사고가 일어났다. 타워크레인이 부러져 아파트 11층 높이에서 추락해 하청노동자 3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다. 2015년 3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신축 공사장 크레인 사고도 크레인 기사의 '안전불감증'에 의해 크레인이 감당할 수 있는 '허용하중'이 초과돼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 "크레인 없으면 현장 올스톱…그래서 착취 당한다"

강 씨는 '살기 위해' 건설노조에 가입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현재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기계지부 크레인지회장을 맡고 있는 강 씨는 지난 2011년 1월 건설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부산지방 노동청 산업재해 명예산업안전 감독관으로 활동한 지도 어느새 3년이 다 됐다.

7년 전 크레인 조종사였던 강 씨의 동료는 열이 40도까지 오르는 상황이 됐다. 참다 못해 작업 교체를 요청했지만 크레인이 작업을 멈추면 모든 공정이 중단된다는 이유로 요청은 일언지하에 묵살됐다. 동료는 결국 피를 토하고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실려갔다. 병원은 강 씨의 동료에 대해 "폐가 다 녹아 없어졌다"고 진단했다. 결국 입원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동료는 사망했다.

강 씨는 건설현장의 적폐를 실감했다. 안전 관리 실태를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강 씨는 "당시 사망한 동료의 산재는 지금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 때부터 건설현장의 잘못된 적폐와 안전관리 실태를 알리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크레인은 언제나 돌아간다. 문제는 크레인 기사가 '잘못됐다'고 판단한 순간에도 작업은 강행된다는 것이다. 강 씨는 "크레인 기사는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여부, 장치들이 가까이에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며 "자체 판단으로 중량물을 인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8조는 40kg 이상의 중량물을 취급할 때 반드시 중량물 취급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작업회의를 토대로 작업해야 한다.

크레인 기사는 사용주의 요구에 따라 무리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강동구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기계지부 크레인지회장 제공.
크레인 기사는 사용주의 요구에 따라 무리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강동구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기계지부 크레인지회장 제공.

그러나 크레인 기사가 현장 위험을 인지해도 현장소장이나 안전관리자를 납득시킬 수 없다. 강 씨는 "현장에 있는 중량물은 대부분 40kg이 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일이 계획서를 작성하고 회의를 할 수 없다"며 "결국 현장소장이 크레인과 크레인 기사 안전 여부와 상관 없이 '더 더'를 외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산재는 대부분 노동자 과실로 결론이 난다. 건설노동자가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강 씨는 "건설사가 건설노동자에게 하는 안전 교육은 일하기 전 하는 안전 체조를 시키고, 구호를 외치게 하는 것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만연한 하도급…'안전 사각지대' 원인은 여기에"

현장에서는 '만연한 하도급'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건설현장에서 크레인 운용주체 간 안전관리를 미루는 관행이 이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타워크레인 사고는 26건으로, 사망자 수는 원청 1명, 하청 38명, 부상자 수는 원청은 없고 하청은 44명이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대형 건설사는 자체적으로 크레인을 운영했다.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크레인은 장비 임대 업체에 넘겨졌다. 현재 200여 개가 넘는 영세업체들이 난립한 상황이다. 문제는 하도급이다. 건설사는 임대 업체에게 하도급을 주는데, 임대 업체는 설치·해체 업체에게 재하도급을 준다. 세 사업자가 크레인을 운용하는 상황에서 관리 주체는 불명확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뒤엉킨 외주는 각종 '사각지대'를 야기했다. 하도급에서 재하도급까지 가는 과정에서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깎여버리는 탓에 기사 5~6명을 고용해 개인사업자 면허로 현장에 다니는 설·해체 사업주들은 임금도, 4대 보험도 줄 여력이 되지 않는다. 안전 사고는 여기서 발생한다. 장비 임대료는 20년 전 임대료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건설사는 신형 장비를 원하다보니 사업주는 자구책으로 검증도 안 된 중국산 장비를 싸게 수입해 현장에 꽂는다.

건설현장 안전관리 책임자는 건설사일 것 같지만, 원청은 책임이 없다. 강 씨는"건설현장에는 건설 자재와 전기·가스 등 각종 위험물이 도처에 있어 작업 순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모든 것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은 원도급자의 몫"이라면서도 "공기를 반드시 맞춰야 하는 건설사는 공정에 걸림돌이 되는 안전은 무시해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30일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크레인 사고도 만연한 하도급이 화근이 됐다. 당시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55톤급 크레인기사 자격으로 경상북도 상주시의 한 건설현장에 투입된 크레인 기사 장모 씨는 사고 당일 바이브레이터 공법으로 현장반장과 함께 파일박기 작업을 진행했다. 바이브레이터는 작업 특성상 매우 심한 진동이 발생한다. 장 씨는 이날도 심한 진동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후 4시 계속되는 바이브레이터 작업이 진행되던 중 장 씨는 큰 충격을 받고 의식을 잃었다. 바이브레이터 공법으로 심한 진동이 계속되자 작업하던 부품에서 부속장치가 떨어져 크레인 운전선 유리창을 뚫고 장 씨의 두부를 강타한 것이다.

건설현장 부속장치(왼쪽)은 크레인 유리를 뚫고 작업 중이던 장 씨의 머리를 강타했다. /관계자 제공.
건설현장 부속장치(왼쪽)은 크레인 유리를 뚫고 작업 중이던 장 씨의 머리를 강타했다. /관계자 제공.

직접적인 피해보다 장 씨를 궁지로 몰아넣은 건 '산업재해' 여부였다. 장 씨는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도중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현장소장 등의 진술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 부산중앙지사는 건설기계임대차 계약서 날인이 장 씨이기 때문에 장 씨를 노동자가 아닌 '사업주'로 판단했다.

장 씨 측은 "크레인 차주 박모 씨가 바쁘다는 이유로 장 씨에게 대신 사인을 하도록 지시했고, 장 씨는 확인 차원에서 사인을 한 것일 뿐 어떠한 뜻이 없었다"며 "산재는 물론, 후유증 및 장애에 대한 보상이 진행돼야 하는데 차주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크레인 운용에 관여하는 원청건설사, 크레인 임대업체, 설치·해체 작업자 중 작업 전반을 총괄 관리하는 주체는 없었다.

◆ "현장 책임자는 없어도 크레인 기사는 일한다…휴일 없는 '강행군'"

크레인 기사의 고용주는 원청 건설사가 아닌 설치·해체 업체 사업주다. 이 사업주와 1대 1로 계약을 한 크레인 기사는 계약이 끝날 때까지 차주에게 월급을 받고 수당을 받는다.

작업장 대부분 전체 노동자가 50인이 넘지만, 크레인 기사는 '수당'이나 '휴일'은 요구할 수 없다. 차주와 1대 1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아무리 수십 명의 작업자와 호흡을 맞춰도 '나홀로' 노동자 취급이다. 강 씨는 "현장에 있을 때 만큼은 원청에서 4대 보험을 해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차주를 비롯한 고용주가 책임을 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본인이 직접 크레인을 구입해 운전하는 기사들은 '사업주'로 규정되고, 이들의 안전은 특수고용노동자란 이유로 방치된다"고 덧붙였다.

휴식은 2~3주에 하루 있으면 다행인 처지다. 크레인 기사는 쉼 없이 일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현장 책임자는 현장에 없다. 많은 크레인 사고가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 등 휴일을 틈타 발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2월 30일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발표에 따르면 경기지청 관내인 수원과 화성, 용인 건설현장에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근로자는 모두 29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37.9%인 11명이 휴일에 사망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해 파묻혀 버린 크롤러크레인. /강동구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기계지부 크레인지회장 제공.
무게를 이기지 못해 파묻혀 버린 크롤러크레인. /강동구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기계지부 크레인지회장 제공.

고용노동부는 휴일작업의 경우 건설현장 책임자가 자리를 비워 사고가 일어난 것이라고 봤다. 지난해 2월 4일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로 근로자 3명이 사망한 사고와 12월 9일 용인에서 발생한 타워크레인 전도사고 모두 토요일에 발생했다.

강 씨는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대책을 강구한다고 하지만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비전문가의 형식적인 주입식 교육만 있을 뿐"이라며 "건설기계 구조나 위험성 관리는 국토교통부, 건설현장 안전과 사고는 고용노동부가 각각 관리하고 있으니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건설현장에서도 외부 안전전문가를 감리자처럼 고용하고 익명 건의함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위험 상황을 제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종석 CCTV 설치'가 정부 대책?…구조적 문제 외면

연이은 타워크레인 사고로 논란이 일자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1월 16일 '타워크레인 사고 예방을 위한 정부합동 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건설기계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등을 통해 타워크레인 조종석 내 CCTV를 설치하고, 조종사 면허 취소기준을 상향하는 것이 골자다.

그간 노동계는 줄곧 타워크레인 작업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해 왔다. 하도급과 재하도급 속에서 타워크레인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다, 이 업무 자체가 신고제로 운영돼 기본적인 교육만 받고 현장에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안전과 관련된 지속적인 요구들이 배제된 일방적인 대책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건설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고공으로 높이 30~40m를 오르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1평 남짓 되는 공간에서 노동과 식사와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생리현상까지 그곳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이런 조종석 내부에 영상촬영장비를 설치한다는 것은 조종사 개인의 모든 사생활을 공개하게 되는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38조에 따라 건설사는 중량물 취급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66조에는 관리 감독에 대한 규정도 있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는 규정은 거의 없다. 안전을 외치면서 안전을 위한 법은 지키지 않는 게 현실이다.

사건 경위서에 첨부된 장 씨가 날인한 건설기계임대차 표준계약서. /관계자 제공.
사건 경위서에 첨부된 장 씨가 날인한 건설기계임대차 표준계약서. /관계자 제공.

노조는 이어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노후 타워크레인 관리, 전문 신호수 배치 등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권한은 일절 없다"며 "지난해 타워크레인 사고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고의 원인은 조종사의 운전 능력과는 무관한 장비의 노후화, 허술한 안전 검사, 불량 부품 사용 등 조종사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발주처→원청→타워크레인 임대사→타워크레인 조종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문제와 고용불안 등 건설산업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담당자 이승현 정책국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건설현장에 계신 분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열악하신 분들"이라며 "건설현장은 워낙 위험하기 때문에 '아차'하면 사망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건설현장에 제대로된 안전 대책도 마련되지 않고, 일한 만큼 보상받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다는 건 슬픈 현실"이라고 했다.

노조는 산재를 막기 위해 ▲건설현장 중대재해 원청 발주처 책임 및 처벌 강화 ▲노동중심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건설기계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구상권 폐지 ▲타워크레인 조종석 CCTV 설치 철회 및 소형타워크레인 안전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강 씨는 "대한민국 건설현장은 시한 폭탄을 안고 있다. 언제 터지느냐가 관건"이라며 "건설노조의 주장은 말 그대로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을 보장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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