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사진만 찍는다고요?"…'F1 레이싱 걸 폐지', 국내 반응은…(영상)
입력: 2018.02.25 00:05 / 수정: 2018.02.25 00:05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이 소위 레이싱 걸로 불리는 그리드 걸(Grid girl)제도 폐지를 선언했다. /레이싱 모델 송수빈 제공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이 소위 레이싱 걸로 불리는 '그리드 걸(Grid girl)제도 폐지'를 선언했다. /레이싱 모델 송수빈 제공

레이싱 모델 업계, '성 상품화한다'는 부분 동의하기 어려워

[더팩트|변지영 기자] "사진만 찍는 게 아니에요"

지난 1일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이 일명 레이싱 걸로 불리는 '그리드 걸(Grid girl)제도 폐지'를 선언했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대회 홍보에 활용하는 것이 사회 규범과 상충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국내 모델업계 관계자들은 F1의 결정이 자칫 모델이란 직업 인식을 저하시켜 국내 시장이 위축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다.

F1은 '성 상품화'를 종결시키겠다며 이번 2018년도 월드챔피언십 시즌에서부터 레이싱 모델을 고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다음 달 25일 열리는 호주 그랑프리부터를 기점으로 그리드 걸을 볼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결정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성희롱, 성폭력 피해 사례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F1은 성명을 통해 "그리드 걸 모델 고용 관행은 수십 년간 F1 그랑프리의 필수 요소였지만 현대 사회 규범과는 상충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리드 걸 폐지 선언' 이유를 밝혔었다.

그동안 레이싱 모델은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자신이 맡은 레이싱 팀이나 후원업체 홍보 역할을 하면서 제품이나 팀을 돋보이며 '레이싱의 꽃'으로 불렸다.

하지만 화려한 모습 뒤로 레이싱 모델에게는 성 상품화, 성차별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젊은 여성으로 구성된 모델들이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는 등 자극적인 방식으로 대회를 홍보하는 이미지로 소비됐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대회에서는 카레이서 유망주나 남성, 어린이들을 대안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리드 걸 폐지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성희롱, 성폭력 피해 사례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레이싱 모델 송수빈 제공
'그리드 걸 폐지'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성희롱, 성폭력 피해 사례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레이싱 모델 송수빈 제공

◆ "'미투 운동' 확산에 직업 잃을 위기?"…불똥 튄 레이싱 모델들

F1의 '그리드 걸 폐지' 이후 국내에서도 레이싱 걸의 성 상품화 조장 비판 여론이 일자, 국내 모델업계와 레이싱 업계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현진 전 한국모델협회 레이싱모델분과장은 <더팩트>에 "과거 레이싱 모델이 야하게만 보이던 이미지는 기업에서 만들어낸 홍보 방식으로, 선입견에 불과하다"면서 "남녀 모두 할 수 있는 직업이기에 '레이싱 걸'에서 '레이싱 모델'로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된 것도 모델들의 사명감과 경기 현장에서의 역할을 넓히기 위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민형 한국레이싱모델협회장은 "그들은 단순히 '사진을 찍히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주장에 반대했다. 이 회장은 "전시산업이 활성화되면서 국내 자동차 경주에서도 나레이터 모델이던 전시 도우미가 레이싱 전문 모델로 바뀌기 시작했다"면서 "레이싱 모델들은 현장에서 경기의 원활한 진행과 선수의 컨디션을 돕는 보조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어 "F1이 그리드 걸을 폐지한다는 것은 홍보라는 측면에서 '상상력 부재'"라며 "이는 곧 그들이 정말로 여성들을 성 상품화의 역할로만 생각했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성 상품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국내에도 영향을 미치자, 국내 모델업계 전문가들은 직접 해명에 나섰다. /피트니스 모델 김정화 제공
성 상품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국내에도 영향을 미치자, 국내 모델업계 전문가들은 직접 해명에 나섰다. /피트니스 모델 김정화 제공

현업 모델들도 자신의 직업이 성 상품화를 조장한다는 비판과 성추행 및 성폭행의 피해자로 비춰지는 점에 대해 오해라고 전했다.

8년 차 피트니스 모델 김진희 씨는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직업이 성 상품화가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전문성이 없다는 것은 오해다. 피트니스 모델은 식단뿐 아니라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한 직업이다. 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아름다운 신체의 선을 보여준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4년 차 레이싱 모델 송수빈 씨은 "서킷(경기장, SIRCUIT)의 꽃은 레이싱 모델이 아니라 선수들"이라면서 "레이싱 모델들은 '사진'만 찍지 않는다. 행사 요원의 업무를 분담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맡은 팀과 자동차에 대한 정보와 선수가 편안한 경기를 진행할 수 있도록 컨디션 조절을 돕는다"고 전했다. 송 씨는 그러면서 "언제나 선수들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물론 틈틈이 팀과 행사를 돋보이기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이 부분만 부각되는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레이싱 모델들이 '성 상품화'를 조장한다는 오명(?)이 전반적인 모델 시장 축소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 F1의 '그리드 걸 폐지'선언 당시, 영국 여성단체인 우먼스포츠트러스트(Women's Sport Trust)는 "'환영한다"면서 "더 나아가 UFC, 복싱 등 여성 모델을 경기에 세우는 다른 '피켓걸' 등도 고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최근 세계적으로 '레이싱 모델 폐지'에 이어 각종 '걸'들의 직업 군을 없애자는 강경한 주장이 늘고 있다.

레이싱 모델 송수빈 씨는 언제나 선수들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물론 틈틈이 팀과 행사를 돋보이기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이 부분만 부각시키는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레이싱 모델 송수빈 제공
레이싱 모델 송수빈 씨는 "언제나 선수들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물론 틈틈이 팀과 행사를 돋보이기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이 부분만 부각시키는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레이싱 모델 송수빈 제공

국내 업계에서도 F1의 그리드 걸 폐지 선언과 맞물려 레이싱 모델이 경기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봤다. 레이싱 업계 한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바라진 않지만 레이싱 모델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며 "국내 모터쇼의 성향이 상위에서 진행하면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국내도 미투 운동의 영향과 사회적 분위기로 점차 여성성이 부각되는 노동시장이 위축될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점차 확산되는 '레이싱 모델 폐지' 찬반 논란에 대해 한국여성노동자회 김명숙 활동관은 "레이싱 모델이라는 직업이 문제라기보다 제품과는 무관하게 이들의 외모를 전시하듯이 활용하는 홍보 측의 시선이 문제"라면서 "특정 '성'을 상품화 시키는 홍보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지만, 어떤 직업 군이든 특정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hinomad@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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