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태움', 간호업계 고질적 병폐…대형병원선 '오픈 시크릿'
입력: 2018.02.20 00:00 / 수정: 2018.02.20 00:00

간호사 A(27·여)씨가 설을 하루 앞둔 15일 오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그가 간호사업계에서 만연한 태움문화에 시달리다 못해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pixabay
간호사 A(27·여)씨가 설을 하루 앞둔 15일 오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그가 간호사업계에서 만연한 '태움'문화에 시달리다 못해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pixabay

살인적 노동 강도에 퇴사, 인력 부족 등 반복된 악순환이 '태움'문화 키워

[더팩트|변지영 기자]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신입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일선 간호사 및 의료계가 군기 잡기 문화인 일명 '태움'의 고질적인 문제도 함께 터졌다. 이는 간호사업계에서 오래전부터 만연했던 사회적 문제다. 지난 2005년 폭언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지방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 2명이 연이어 자살한 것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던 임모(29·여) 씨는 19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자신이 지켜본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를 전했다. 임 씨는 "같은 나이의 간호사인데 후배라는 이유로 정강이를 맞기도 하고 볼펜으로 머리도 미는 것을 봤다"면서 "일은 힘들어도 적응하면 되는데 사람들이 괴롭히면 일단 나가는 것 자체가 싫어진다면서 '잠수'(연락하지 않고 출근하지 않는 것)타는 애들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간호사들 사이에서 영혼이 모두 탈 정도로 괴롭힌다는 의미로 통하는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방식을 뜻하는 은어다. '태움'에 인격 모독은 다반사다. 교육이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선배들의 '화풀이' 및 '감정 분출' 등 직장 내 괴롭힘과 다를 바 없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태움을 겪고 태워도 봤다(?)는 8년 차 전직 간호사 이모(32·여) 씨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태움이 어느정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태움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서는 "작은 실수도 생겨선 안되는 생명을 다루다 보니 긴장하기 위해 생긴 문화"라고 전했다. 하지만 "누적된 업무 가중으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사람이 미워 보여 괴롭히는 경우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온라인 상에서도 '태움'과 관련된 증언들이 이이지고 있다. 지난 15일 자살한 A씨가 다닌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4년 차 간호사 김모(31·여)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지금은 타 병원에 비해서는 오히려 낫다는 말도 나온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하지만 나도 3년 전에는 똑같았다"며 "초반에는 신입이란 이유로 교대 당시 선배가 인계 내용의 몇 가지를 일부러 알려주지 않아 환자를 돌보는 데에도 영향을 끼칠 뻔 했다"며 아찔했던 순간을 기억해냈다.

8개월 차 신입 간호사라는 이모(25·여) 씨도 "다른 동기들 앞에서 '일 못하는 애는 쓸모가 없다'는 말로 면박을 자주 받았다"면서 "간호학과 나오면 평생직장이라고 했는데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정말 하루에도 수도 없이 퇴사 욕구가 생긴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소재 한 대형병원에 재입사했다는 6년 차 간호사 김모(29·여) 씨는 "입사 초반에 '프리셉터(경력간호사, preceptor)한테 4년제 출신이 아닌 간호사와 같이 일한다는 게 억울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 후 서울에서의 2년 차 간호사 생활을 접고 4년제 대학교에 입학했다고 덧붙였다.

병원과 온라인 게시글에 따르면 중환자실에 근무하던 A씨는 지난 13일 환자의 배액관을 빠뜨리는 실수를 해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와 관련해 다음날 저녁 수간호사와 면담을 했다. A씨의 남자친구는 "수간호사 선생님과 사수를 보러 간다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안심을 시키기보다는 또 혼내지 않았을까"라는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자신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고 전했다. 퇴직을 하기 위해서는 순번을 정한 뒤 수간호사와의 수차례 면담 끝에서야 가능하다는 것. 그는 "먼저 퇴직한 간호사 동기들이 '적은 인력에 허덕이는 수 간호사는 면담이란 빌미로 무조건 어르고 달래니 꼭 퇴사 날짜를 명시하라'고 조언해줘서 3개월 뒤 겨우 퇴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태움 문화에 대해 간호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병원의 지원 부족 및 허술한 교육시스템 문제라고 지적한다. /pixabay
전문가들은 이 같은 '태움' 문화에 대해 간호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병원의 지원 부족 및 허술한 교육시스템 문제라고 지적한다. /pixabay

'지나친 업무'도 통과의례처럼 이뤄졌다. 6년 차 간호사라는 이모(31·여) 씨는 "나이트 근무에서 바로 오전 근무로 연장시키는 날에는 12시간 넘게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다. 인계를 줄 때 선배가 '딜레이되는 일들은 너가 다하고 가라'고 해서 2~3시간 늦게 가 쪽잠을 자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태움' 문화에 대해 간호업계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병원의 지원 부족, 허술한 교육시스템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개 신규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와 함께 다니면서 일을 배운다. 절대적으로 간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조직에 부담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2016년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지에 실린 '간호사의 태움 체험에 관한 질적 연구'(정선화·이인숙) 논문에 참여했던 한 선임 간호사는 "일을 잘 숙지하지 못하고 실업에 돌입하는 신규 후배와 일을 하면 사실상 신규의 일을 다 커버해주면서 해야 하니까 스스로도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경력 1년 미만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33.9%에 달했다. 신규 간호사들은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오는 업무 스트레스에 태움까지 더해져 3명 중 1명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것이다.

결국 엄격한 교육 수준을 넘어서 감정적인 방향으로 태움이 표출되고 선임의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후배 간호사들에게 푸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다.

연세대 간호대학 교수인 김소선 서울시간호사회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실습 미비 등으로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간호사들이 현장에 바로 투입되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이 때문에 금세 병원을 떠나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노출되는 구조적인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규 간호사에 대한 교육 기간을 확충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등 개인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19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간호사 A씨는 15일 오전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우선 A씨의 노트북·휴대전화 등을 수집한 후에 병원 관계자들도 불러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연휴 기간 1차 조사를 마친 병원 측은 감사팀을 주축으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hinomad@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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