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현장] 명절에만 '반짝' 보육원 봉사…"고맙지만 사양합니다"(영상)
입력: 2018.02.16 00:05 / 수정: 2018.02.17 01:00

서울시 상록보육원에서 3-7세 미취학원생들과 생활지도원이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 상록보육원에서 3-7세 미취학원생들과 생활지도원이 활동하고 있다.

겨울철·명절 쏠림 현상, 기업의 이벤트성 봉사 활동은 지양해야

[더팩트|변지영 기자] "명절 뒤에도 아이들에겐 특별하지 않은 날들이 수없이 지나갑니다"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로 민족 대이동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설날'은 우리 민족에게 큰 경사다.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치르고, 못다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명절 특수를 맞아 보육원에 닿는 온정의 손길도 넘친다. 하지만 명절이 끝난 뒤 사정은 다르다. 연휴 당일 일회성으로 방문한 기업들의 후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떠나고 나면 보육원은 썰렁하다.

<더팩트> 취재진은 설 하루 전인 15일 오후 1시께 서울시 관악구 소재의 상록보육원을 찾았다.

설 하루 전인 15일 오후 상록보육원에서는 아이들과 생활지도원들이 실내활동을 하고 있었다.
설 하루 전인 15일 오후 상록보육원에서는 아이들과 생활지도원들이 실내활동을 하고 있었다.

큼지막하게 열린 문 사이 보육원은 잠잠했다. 주변에는 귀경길에 오른 주민들이 많은 탓인지 주차된 자동차도 적었다. 보육원 입구에 붙은 '가족의 사랑으로 밝은 꿈을 가꾸자'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오후 1시 30분께 2개의 쌀 포대를 짊어진 젊은 남성과 한 노인이 보육원을 방문했다. 사당동 주민이라는 윤전자 할머니는 "집에 가는 길에 설 연휴 필요할 것 같아 사위에게 부탁해 쌀을 가져왔다"고 전했다.

15일 지나가는 주민 두 명이 상록보육원에 쌀 두 포대를 후원했다.
15일 지나가는 주민 두 명이 상록보육원에 쌀 두 포대를 후원했다.

윤 할머니 외에도 따스한 손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게 보육원 설명이다. 이날 부청하 상록보육원장은 "지난 13일 전후로 기업의 후원 및 서울대학교 및 따자모, 아기천사, 지실 등 정기후원 봉사단체의 방문이 이어졌다"며 "방문객들이 부담을 가질까 봐 작은 박스 하나라도 찍어 홈페이지에 게재한다"고 전했다.

사무실과 원장실, 엘리베이터 벽면마다 아이들의 작품들로 가득했다. 시설부터 운영방식까지 원생들의 마음을 우선으로 배려하고 있는 게 마음으로 전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오르자 조용했던 1층과는 달리 카랑카랑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머무는 각 방문마다 사진과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702호 방 안에선 생활지도원들이 아이들에게 바나나를 먹이고 함께 블록 놀이를 하고 있었다. 702호에는 3살배기 2명, 4살배기 9명으로 총 11명의 미취학 아동들이 생활하고 있다.

7년 차 정혜영(29) 생활지도원은 '이 방에 생활하는 원생 대다수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왔다'고 귀띔했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아이들은 짧으면 생후 하루부터 5일 이내에 보육원에 입소한다.

아이들은 지도원들을 '엄마'라고 불렀다. 정 지도원은 "설 연휴가 지나고 나면 일회성 봉사원들이 빠져 한동안 원내가 '썰렁'하다"고 전했다. 명절 특수 뒤에도 아이들은 특별하지 않은 '보통날'들을 수없이 보낸다는 것이다.

15일 기준 79명의 보육원생 중 29명은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러 나갔고, 50여 명이 남았다.
15일 기준 79명의 보육원생 중 29명은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러 나갔고, 50여 명이 남았다.

15일 기준 79명의 보육원생 중 29명은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러 나갔다. 50여 명의 보육원생이 보육원을 지키고 있었다.

설 당일인 16일에도 보육원생들과 함께하기로 한 지도원들은 입을 모아 "집에서는 서운해하시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알기에 고향을 가기보다 함께 있는 것이 좋다"고 대답했다.

눈길을 끈 건 휴일에 아이들을 집이나 고향으로 데려가는 지도원들이다. 19년차 현윤미(38) 생활지도원은 이번 설 연휴에 7살 상철, 6살 상혁 두 아동을 집에 데려왔다. '어떻게 휴일에 두 명의 원생을 챙길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현 지도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무안해했다.

현 지도원은 상철이 100일 되던 해 주말을 시작으로 꾸준히 연휴나 주말에 아이를 집에 데려왔다. 이미 7년간 원생들을 알고 지낸 남편도 아이와 함께 보내는 명절을 흔쾌히 허락했다고.

그는 "외부 활동을 쉽게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가정을 겪을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함께 연휴를 보내고 일요일에 두 아이와 함께 보육원으로 출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5년차 김유진(28) 생활지도원은 "물론 명절 특수 후원도 감사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단체 생활을 하면서 일회적 특수에 때론 상처받기도 한다"며 "명절에 오시는 자원봉사원들로 즐겁지만 이내 떠난다는 점에 익숙해지면 아동들은 오히려 원내 가족들과 지내기를 선호한다"고 전했다. 또 "설 연휴나 특수에 몰려서 반짝 후원하는 기업체들과 일회성 봉사자들로 평소와는 다른 온도 차를 느낀다"며 "어제는 처음 본 기업이 밸런타인데이 겸 설을 맞아 초콜릿들을 두고 사진을 찍어 갔다"고 전했다.

부 원장은 "올해에는 전국의 보육원들이 쓸쓸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지난해 연휴 후원금(약 3000만 원)과 비교해 올해 후원금은 지난해의 10% 수준이라고 밝혔다. 전국 보육원을 중심으로 매해 후원금이 감소하는 추세다. 아마도 평창올림픽이라는 큰 잔치에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 상대적으로 봉사 활동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그 무엇보다 아이들의 심신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2017년 설 명절에 하유생, 윤주홍 씨가 상록보육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세배 행사를 진행했다./상록보육원 제공
2017년 설 명절에 하유생, 윤주홍 씨가 상록보육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세배 행사를 진행했다./상록보육원 제공

최근 보육원들은 자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외부 봉사에만 기대지 않고 원생과 직원들이 한복을 입고, 다 같이 모여 세배를 하고, 명절 음식도 해 먹는 잔치로 즐겁다. 하유생, 윤주홍 씨는 11년째 설 명절이면 이 보육원을 방문해 아이들과 세배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설 연휴 일일봉사원으로 보육원을 찾은 이선영(22) 씨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설 연휴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아 일일 봉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시설 및 보육원을 방문해 월 1회(4주째 일요일)마다 봉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이해득(56) 씨는 "처음에는 봉사 활동 자체에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다"며 "설 연휴에만 반짝 나타나는 기업들과 봉사단체들이 진정한 의도로 봉사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면서도 "수 년 째 봉사 활동을 하다 보니 방식의 차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평소 낯을 가리는 아이들도 찾아온 봉사원들이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면 아이들 마음의 빗장이 풀린다"고 말했다.

3시간 남짓 지나 <더팩트>기자가 방에서 나오자 곧바로 엘리베이터에 따라 딴 한 미취학 원생이 기자의 다리를 두 팔로 꽉 안았다.

박정선 서울고려사이버대학교 전임교수는 "우리나라 봉사문화는 겨울철(12, 1, 2월)과 명절에 집중된 것이 문제"라며 "명절은 가족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시기로 보육원생들은 평소보다 더 허전함을 느낀다"면서 "이 기간 시설을 방문해 후원품을 전달하는 기업들도 '이벤트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일회성으로 더욱 허전함을 느낄 아동들을 위한다면 꾸준한 봉사 활동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hinomad@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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