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2030세대④] "'스튜핏' 인가요?"…마지막 희망 사다리 '가상화폐'(영상)
입력: 2018.01.22 04:00 / 수정: 2018.01.22 17:27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2030 세대들이 이 시대의 마지막 희망 사다리라며 가상화폐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pixabay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2030 세대들이 이 시대의 마지막 희망 사다리라며
가상화폐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pixabay

2030세대를 흔히 'N포 세대'라고 부른다.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은 물론 연애, 결혼, 출산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한다. 올해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시행됐지만 이들의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대다. 여전히 '을'의 위치에서 사회·경제적 '압박'을 견디고 있다. '서민 정부'를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각종 법안과 대책이 쏟아졌지만, 2030세대의 '삶'은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 하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2030세대들의 현 주소를 취재해 이들이 원하는 사회 방향과 가치를 알아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더팩트 | 김소희 기자] "모 기업 아무개가 코인으로 30억 원 벌어서 회사 그만 뒀대."

'비트코인(Bitcoin)'을 위시한 가상화폐 광풍(狂風)이 2030 세대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주변 누군가가 가상화폐 투자로 떼돈을 벌어 직장을 그만뒀다는 식의 루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온다. 직장인 평균 연봉이 3360만 원(국세청 '2017 국세통계연보')인 시대에 이같은 풍문은 직장인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주목할 것은 최근 방송인 김생민이 '돈은 안 쓰는 것'이라고 외친 이른바 '스튜핏(Stupid)' 정신이 2030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상황에 코인 열풍이 동시에 불고 있다는 것이다.

김생민의 'NO MONEY(노머니)'와 가상화폐의 '가즈아('가자'는 의미의 신조어로 가상화폐 투자자 사이에서 퍼졌다)'는 추구하는 결이 다르다. 언뜻 공통 분모가 없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두 가치가 공존하는 데에는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 '탕진잼' 버리고 허리띠 졸라 맨다…'욜로'에서 '스튜핏'으로

한때 인생은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현재의 행복을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라며 먹고 쓰고 노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졌다. 욜로 트렌드는 일종의 보상심리에서 비롯됐다. 팍팍한 삶을 살고 있지만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소소한 낭비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라는 것. 이에 '탕진잼(돈을 탕진하며 느끼는 재미)', '시발비용(비속어 '시발'과 '비용'의 합성어)' 등의 용어도 생겨났다.

김생민의 '스튜핏!' 한 마디는 2030 세대의 절약정신을 깨웠다. 김생민은 시청자가 사연과 함께 보낸 영수증에서 불필요한 지출이 발견되면 '스튜핏'이라고 외쳤다. 불필요한 소비를 지양하라는 일침이다.

김생민의 영수증을 진행하는 방송인 김생민은 시청자가 보낸 영수증을 검토하다 충동적인 지출이 발견되면 스튜핏이라 외치며 따끔하게 질책한다. /김생민의 영수증 캡처
'김생민의 영수증'을 진행하는 방송인 김생민은 시청자가 보낸 영수증을 검토하다 충동적인 지출이 발견되면
'스튜핏'이라 외치며 따끔하게 질책한다. /'김생민의 영수증' 캡처

김생민의 명언 또한 화제를 모았다. '커피는 누가 사줄 때 마시는 것', '햄버거는 명절에 먹는 것', '안 사면 100% 할인', '돈은 원래 안 쓰는 것' 등이 있다. 그렇게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지난해 지상파까지 진출했다.

실제로 스튜핏은 욜로를 누르고 2030 세대의 트렌드가 됐다. 소소한 낭비로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김생민의 "지금 저축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정신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욜로하면 골로 간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다음소프트가 인공지능(AI)를 기반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스튜핏'은 지난해 6월 1014건에서 9월 1만6283건으로 급증했다. '짠테크('짠돌이'와 '재태크'의 합성어) 언급량은 같은 기간 263건에서 550건으로 증가했다. 반면 '탕진잼'은 지난해 1월 694건에서 8월 505건으로, '시발비용'은 같은 기간 6442건에서 3255건으로 언급량이 줄었다.

◆ 이렇겐 못산다…'내 생애 마지막 동아줄' 가상화폐

가상화폐는 '수저 색깔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겨지면서 2030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941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27일 조사한 결과 응답자 31.3%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투자 이유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54.2%)'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평균 투자 금액은 566만 원이었다.

직장인 이모(30) 씨는 현재 3곳의 '코인 단톡방'에서 투자자들과 정보를 교환한다. 거래소에 접속해 실시간 가상화페 시세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씨는 지난해 11월 코인판에 합류했다. 여러 종목들을 사고 파는 식으로 1000만 원을 투자해 5000만 원을 번 상태다.

이 씨는 "솔직히 일확천금을 위해 가상화폐에 발을 들인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상화폐는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훨씬 더 크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솔직히 금수저가 아닌 이상 지금 받는 월급으로 결혼하고 집 사고 차 사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회사원이 10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서울에 내 집 하나 마련하기 힘들다고 하더라"라며 "개미인 내가 생각하기에도 가상화폐는 동등한 출발선에서 투자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23세 청년의 사례도 가상화폐 열풍에 힘을 보탰다. 방송은 분명 가상화폐의 위험성을 알리는 취지로 제작됐지만, 23세 미필 청년이 가상화폐에 8만 원을 넣어 280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게 됐다는 사례는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2시간 동안만 약 30억 원이 늘어나기도 했다.

급기야 '비트코인 블루'라고 불리는 '코인 우울증' 현상까지 생겼다. 가상화폐에 투자한 사람과 투자하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찾아왔는데, '한달 전에 나도 알았더라면'부터 '조금 더 넣을 걸', '나 빼고 다 돈 벌었다' 등 이유도 다양하다.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든 대학생 박모(27) 씨도 스스로를 '코인 우울증'에 걸렸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곤 한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비트코인을 포함해 리플, 퀀텀, 라이트코인, 이오스 등 다양한 가상화폐 시세 분석에 할애한다. 가상화폐 카페나 코인 단톡방을 통해서는 시세 분석 외에도 향후 전망 등에 대해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논의한다.

박 씨는 종잣돈이 부족해 더 투자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박 씨는 "자본금이 많은 사람들은 더 큰 수익률을 내는 것 아니냐"며 "가상화폐 등락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한다"고 말했다. 박 씨와 같이 가상화폐에 모든 정신을 몰입하는 이들을 '비트코인 좀비'라고 부르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한때 2500만 원을 돌파했던 비트코인 시세는 21일 오후 8시 25분 기준 1440만 원까지 떨어졌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세는 하루에도 수백 번 상승과 하락을 오가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홈페이지 캡처
한때 2500만 원을 돌파했던 비트코인 시세는 21일 오후 8시 25분 기준 1440만 원까지 떨어졌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세는 하루에도 수백 번 상승과 하락을 오가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홈페이지 캡처

◆ '김프' 빼고 투명성 확보할 전략은 거래소 폐쇄?…"공산주의 국가나 가능한 일"

업계에 따르면 가상화폐 투자자는 이미 3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하루 최대 6조 원을 거래하는 300만 투자자의 주력은 2030 세대다. 14일 글로벌 가상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7154억 달러에 달한다.

가상화폐 투기 열풍 과열로 국제시세보다 30%나 높다는 의미의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생겨나자 정부는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가상화페 거래 규제에 나섰다.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추진을 발표했다. 지난 18일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도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를 전명 폐쇄하거나 불법행위를 저지른 거래소만 폐쇄하는 두 가지 방안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며 거래소 폐쇄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 결과, 한때 2500만 원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 시세는 21일 오후 7시 기준 1430만 원까지 떨어졌다.

가상화폐 거래자들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가상화폐 규제 반대>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 본 적 있습니까?"라는 청원은 21일 22만 명을 돌파했다. 일부 투자자는 항의집회를 예고하기도 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한민국이 공산국가냐. 아마추어 정권의 불법적인 암호화폐 규제, 결사 반대한다. 가즈아! 청와대로! 가즈아! 광화문으로!"라고 적힌 포스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열풍을 시기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IT 업계 역시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술로 생겨난 만큼 블록체인 시장을 이해하고 가상화폐 거래를 제도화 하기 위한 지원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21일 "지금의 가상화폐 사태를 정부는 시장과 투자자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며 "청와대가 중심에 나서 사태 진정을 위한 일정을 제시하고,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무능과 무책임을 보이는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제대로 된 금융개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와 관련해서는 "시장폐쇄는 공산국가에서나 가능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한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비판, 분노를 일으킨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문제에 제대로 된 정책 방향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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