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2030세대②] 취업도 연애도 '퇴짜'…탈모에 더 서럽다
입력: 2018.01.18 04:00 / 수정: 2018.01.18 04:00

젊은 청년들의 탈모 현상이 또 하나의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젊은 층의 탈모는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지만, 청년들은 고가의 치료비 등을 이유로 병원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않고 있다. /pixabay
젊은 청년들의 탈모 현상이 또 하나의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젊은 층의 탈모는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지만, 청년들은 고가의 치료비 등을 이유로 병원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않고 있다. /pixabay

2030세대를 흔히 'N포 세대'라고 부른다.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은 물론 연애, 결혼, 출산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세대를 뜻한다. 올해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시행됐지만 이들의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대다. 여전히 '을'의 위치에서 사회·경제적 '압박'을 견디고 있다. '서민 정부'를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각종 법안과 대책이 쏟아졌지만, 2030세대의 '삶'은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 하고 있다. 이에 <더팩트>는 2030세대들의 현 주소를 취재해 이들이 원하는 사회 방향과 가치를 알아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더팩트 | 김소희 기자] "취업도 연애도 무엇 하나 되는 게 없네요. 머리숱도 없는데 돈도 없고 미칠 노릇이죠."

취업준비생 정모(30) 씨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길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취업 시장에 나온 지 3년이나 지난 지금도 번번이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는 탓도 있지만, 그를 지배하는 스트레스 주원인은 눈에 띄게 줄어가는 이마 근처 머리숱이다.

정 씨는 "보이지 않는 곳에 탈모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 이마가 휑해졌다"며 "취업도 해야 하는데, 면접 때문에 스트레스다. 정량적 스펙을 아무리 만들어도 면접에서 떨어지는 건 탈모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지어 최근 기업 면접장에서 "증명사진이랑 다르게 머리숱이 많이 없는 것 같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정 씨는 "탈모 치료를 받고 싶어도 돈이 있어야 받을 것 아니냐"며 "엄청난 비용 떄문에 엄두도 못낸다"고 하소연 했다.

탈모는 더이상 5060세대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2030세대 젊은층도 '탈모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20만2000명 수준이던 탈모 환자는 2013년 20만5000명, 2014년 20만6000명, 2015년 20만8000명을 기록했다. 2016년에는 21만1000명까지 늘어나 5년 사이 5% 가까운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나이대별로 보면 전체 탈모 환자 중 20대가 19.4%인 20만명. 30대가 24.6%인 25만4000명으로 나타났다. 10대 환자도 전체의 10.5%인 10만명에 달한다. 20대 탈모 인구는 매년 증가폭이 커지는 상황이다.

◆ '탈모 동지' 많다지만…유통 업계 효자 '탈모', 자존감은 도둑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업계 등에서는 국내 탈모 인구는 10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닐슨코리아가 지난해 23세부터 45세 사이 한국인 남성 8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7%가 탈모로부터 고통 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중 절반 이상이 30세 이전에 처음 탈모를 인식했다고 한다.

탈모 관련 사업은 계속해서 성장해 '블루오션'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을 정도다. 지난 2016년 탈모 관련 시장 규모는 약 4조 원으로 2004년에 비해 10배 이상 올랐다. 이는 식품업계에서 효자로 통하는 가정간편식 시장 규모(2조3000억 원)보다도 큰 규모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규모의 가발 생산업체 하이모의 매출 규모 역시 지난 2010년 530억 원에서 2014년 667억 원으로 5년 사이 25.8% 늘었다. 하이모 관계자는 "젊은층과 여성 탈모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가발에 대한 수요가 많다"며 "전체 고객 중 20~30대 고객 비율이 25%에 달한다"고 밝혔다.

"아무리 탈모가 흔해졌다고 해도 평생 감추고 싶다"는 게 탈모인들의 고백이다. 지난해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올라온 '탈모를 앓는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심각하게 고민된다'는 제목의 글에 "남자친구가 처음으로 가발 벗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50대 아저씨처럼 정수리가 둥그렇게 벗겨져 있었다. 남자친구를 사랑하지만 자식에게까지 대머리 유전자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사연이 담겼는데, 누리꾼은 탈모 고백과 관련해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국내 최대 탈모 커뮤니티에는 탈모 관련 고민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대다모 홈페이지 갈무리
국내 최대 탈모 커뮤니티에는 탈모 관련 고민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대다모 홈페이지 갈무리

국내 최대 규모 탈모 커뮤니티 '대다모'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고민 글이 올라온다. '저 대머리 맞나요?'라는 대머리 검증글부터 '내일 모발이식 합니다'와 같은 탈모 탈출 선언까지 다양한 사연들이 이 커뮤니티 안에 공존한다. 대다모는 월 방문자만 100만 이상에 달한다. 수많은 게시판 중 '19세-23세까지의 이른탈모 회원들의 공간' 게시판은 새내기 탈모인들의 고민들로 넘쳐난다. '젊은 탈모인'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탈모의 원인들을 탈모인이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탈모 부위가 작은 탈모인에게 모발이식술은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약, 이식술 등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탈모인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탈모로 고민하는 이들은 자신감 상실과 사회 생활이 위축되는 등 대인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대한피부과학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탈모 남성 284명 중 85%는 '탈모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신경 쓰인다'고 응답했다. 이 중 82%는 '탈모 때문에 나이가 더 들어 보이고 이로 인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답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탈모에 대해 지적이나 놀림을 받아 신경이 쓰인다'는 응답도 37%나 됐다.

또 탈모관리 전문업체 '지토'가 2030 탈모인 132명을 대상으로 '탈모와 정신적 장애'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90% 이상이 "탈모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이 중 40% 이상은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호소했고, 10%는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 머리 없으면 취업도 못하나…정부 대책 절실한 탈모인들

최근 탈모라는 이유로 채용하지 않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한 차별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권고가 있었다. 2015년 건물 낸난방기기 관리 직원을 뽑는 한 회사에 지원했던 최모 씨는 인사팀장으로부터 "대머리여서 일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6년 고급 호텔의 연회행사 관련 아르바이트에 채용됐던 권모 씨도 첫 출근날 자신이 탈모임을 안 채용담당자로부터 "근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탈모로 인한 대머리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자연적인 현상에 해당하는 신체적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채용에 불이익을 주거나 가발 착용 의사를 확인한 행위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고용 차별행위"라고 지적했다.

2030 탈모 인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적 관심은 턱없이 부족하다. /더팩트DB
2030 탈모 인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적 관심은 턱없이 부족하다. /더팩트DB

2001년 인권위 설립 후 이같은 이유로 시정권고가 내려진 것은 두 건뿐이지만, 취업 등에서 외모 영향이 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탈모에 대한 고민은 광범위하다.

닐슨코리아 조사에서 한국 남성의 85%가 외모가 '중요하다(60%)', '매우 중요하다(25%)'라고 응답했다. 특히 30대가 외모에 더 많이 신경 썼다. 모발이 '내 삶과 외모에 있어 중요하다(39%)', '자존감을 증가시키는데 중요하다(12%)'고 답한 비율도 높았다.

심리학자들은 탈모가 특히 젊은 남성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우울증과 심한 정서적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탈모 문제에 직시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런 가운데 앞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문재인 케어'에 탈모·피부 등 미용과 성형 관련된 항목은 제외한다고 발표되면서 탈모인들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탈모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모 씨는 "탈모를 치료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탈모는 보편적인 문제가 됐다"며 "학교와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를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해 탈모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법안들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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