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프리즘] 최저임금 갑질 백태…상여금 깎고 휴게시간 늘리고
입력: 2018.01.09 04:00 / 수정: 2018.01.09 07:52

올해부터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르면서 고용주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각종 편법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팩트DB
올해부터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르면서 고용주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각종 편법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팩트DB

[더팩트 | 김소희 기자] 2018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대폭 인상됐지만, 벌써부터 현장에서 고용주들이 근로자의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합법을 가장한 각종 '꼼수'를 쓰고 있다는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상여금을 줄이거나 각종 수당을 줄이는 꼼수가 횡행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지난 2~6일 시간당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른 뒤 56건의 '최저임금 갑질' 제보가 들어왔다고 7일 밝혔다. 직장갑질 119는 "최저임금 인상 후 휴게시간 강제 연장, 상여금 기본급 전환, 식대·교통비 삭감, 유급휴가의 연차휴가 대체 등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며 "이는 최저임금법 제정 목적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팩트>는 8일 현재 고발된 각종 꼼수들을 사례별로 정리하고, 근로기준법 위배 여부를 따져보았다.

◆ "증발한 내 상여금!"…기본급에 포함하고 깎고

서울 강남구로 출근하는 직장인 여성 이모(29) 씨는 지난 2일 회사로부터 "올해부터 상여금을 600만 원에서 400만 원으로 줄인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급 방식도 바뀌었다. 분기마다 지급되던 상여금이 이제 매달 월급과 함께 나온다고 했다.

이 씨는 "분기마다 받은 상여금을 매달 지급하는 것으로 바꾸는 건 겉으로는 월급여를 높이는 척 하고, 결과적으로 임금 자체를 줄이려는 꼼수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직장갑질 119에 제보된 사례 가운데 절반 이상(30건·53.6%)이 상여금을 줄이거나 기본급에 포함하는 '상여금 꼼수'인 것으로 집계됐다. 상여금을 매달 지급하면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돼 기본급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 이에 한달 이상 간격을 두고 지급하던 상여금을 매달 지급하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최저임금에 딱 맞춰 지급했던 월급을 올리는 대신 연 400%의 상여금을 아예 없앤 곳도 있었다. 현행 최저임금 범위에는 기본급은 포함되지만, 매달 지급되지 않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기존에 지급하던 상여금을 축소하여 지급하는 것은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에 해당된다. 근로기준법 제 94조는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의 동의(과반수 노조가 없으면 노동자 과반수 동의)를 통해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기존에 지급하던 상여금을 전액 지급해야 한다.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지난 2~6일 최저임금 관련 제보 56건 가운데 절반 이상(30건)은 상여금을 삭감하거나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사용자의 꼼수에 대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과 기사 내용 무관함. /더팩트DB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지난 2~6일 최저임금 관련 제보 56건 가운데 절반 이상(30건)은 상여금을 삭감하거나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사용자의 꼼수에 대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진과 기사 내용 무관함. /더팩트DB

◆ 모든 수당 없앴다…"더이상 식대·교통비 없어요"

직장인 김모(31) 씨도 "올해 최저임금은 인상으로 월급여 상승을 기대했지만, 작년과 같은 액수의 월급을 받을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최저임금 인상 이후 실제로 주는 임금을 줄이기 위해 식대·교통비·근무평가수당 등을 없애 기본금에 포함시키는 '수당 갑질' 사례에 해당된다. 전체 신고 건수 중 12건(21.5%)이 '수당 갑질' 사례로 분류됐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고용주는 최저임금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수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 대신 일부 업주들은 매달 지급하는 최저임금에 각종 수당을 산입해 인건비를 줄이고 있었다. 또 공휴일을 유급휴일에서 제외하고 연차로 대체하도록 한 사업장도 있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기존에 지급하던 수당을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폐지하는 것은 근로조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할 수 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우에는 무효이므로 기존에 지급하던 수당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

◆ "좀 더 쉬세요"…근무 시간 줄이고 일당 줄이고

쉴 수 없는 휴식 시간을 서류상 늘려 근로시간을 줄이는 '휴게시간 갑질'도 8건(14.3%)에 달했다.

경남도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지난해 12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변경한다며 경비실 이용에 참고하라는 공지문을 붙였다.

근무 중간에 끼어있는 휴게시간은 시급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공지문엔 경비원의 점심·저녁 시간을 각 30분씩 늘려 최저임금 인상분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속셈이 담겼다.

한 학원은 강사들에게 50분의 수업시간 중 10분을 휴게시간으로 빼고 수업 당 40분만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최저 시급을 적용하겠다고 통보했다. 3조 3교대였던 근무체계를 4조 3교대로 바꿔 근로시간을 줄이고 휴무일을 늘린 회사도 있었다.

지역의 한 아파트에 내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비가 급격히 인상됨에 따라 부득이 경비원 휴게시간을 1월1일부터 변경한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붙었다. 경비원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늘렸고, 심야 휴게시간도 오후10시부터 오전6시 사이 5시간으로 늘려잡았다. /직장갑질 119 제공
지역의 한 아파트에 "내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비가 급격히 인상됨에 따라 부득이 경비원 휴게시간을 1월1일부터 변경한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붙었다. 경비원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늘렸고, 심야 휴게시간도 오후10시부터 오전6시 사이 5시간으로 늘려잡았다. /직장갑질 119 제공

한 프렌차이즈 업체도 직원들의 근무시간 중 휴게시간을 1시간 강제 연장했다. 주 5일 근무로 시간을 변경하고 야근수당을 없앤 커피전문점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시간당 최저임금은 올라도 근무시간이 줄어 월급은 오히려 삭감된다.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것도 근로조건 변경에 해당된다. 근로기준법 제17조에 따르면 근로계약 내용을 변경하려면 반드시 서면으로 이뤄져야 한다. 만약 근로계약 내용이 적법하게 변경됐다 하더라도 휴게시간에 사업주가 업무지시를 하는 등 휴게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경우라면 사실상 근로시간에 해당하므로 이에 대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 근로자는 '영원히 乙'?…고용부, 관리·감독 나선다

최저임금법은 상여금·수당·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할 수 없도록 하고, 최저임금을 이유로 종전의 임금수준을 낮춰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노동자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도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직장갑질119는 관련자 제보나 증빙 서류 등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사업장에 대해 피해자 동의를 얻은 후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을 요구할 계획이다. 단체는 "최저임금법과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각종 갑질 행위를 정부가 철저하게 단속하고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5일 관계부처들과 최저임금TF 회의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자행되는 편법과 꼼수를 막기 위해 현장 감독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이성기 고용부 차관은 "전 지방노동관서에 신고센터를 설치해 편법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사례 등을 접수받아 사실을 확인하고 시정해 나가는 노력을 하겠다"며 "우선 아파트·건물 관리업, 편의점 등 취약업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준수를 위한 공문발송, 간담회·설명회 등 계도활동을 3주간 실시한 후 1월말부터는 현장을 직접 점검하겠다"고 전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모든 업종을 조사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일부 취약업종을 대상으로 특별 관리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필요하면 현장에 근로감독관을 파견해 현장에서 벌어지는 편법을 꼼꼼히 챙기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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