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현장] '기부천사'가 사라졌다?…사실은
입력: 2018.01.05 04:00 / 수정: 2018.01.07 02:36
꽁꽁 얼어붙은 사랑의 온도탑.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4일 오전 9시 80.5도를 가리켰다. /광화문=김소희 기자
꽁꽁 얼어붙은 '사랑의 온도탑'.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4일 오전 9시 80.5도를 가리켰다. /광화문=김소희 기자

[더팩트 | 김소희 기자] "이 온도계는 언제 100이 되는 거예요?"

4일 오전 9시 출퇴근 시간의 복잡함이 조금은 소강된 시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위치한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놓여진 사랑의열매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는 80도 언저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한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사랑의 온도탑에 다가섰을 때, 엄마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6살 남짓한 꼬마 아이의 질문이 들렸다. 아이의 엄마는 대답 대신 "어머, 이게 뭘까?"라며 처음 본다는 듯 무심한 한 마디를 내뱉고 길을 재촉했다.

올 겨울 한파는 기부에도 불어닥쳤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범국민 모금 운동인 '희망 나눔 캠페인'으로 지난달 29일까지 3125억 원을 모금해 목표액(3994억 원)의 78.2%를 채웠다고 2일 밝혔다. 사랑의 온도탑은 1월 31일까지 목표액의 1%가 채워지면 1도씩 오른다.

올해는 특히 최악의 '기부 한파'가 불고 있다는 반응이다. 예년 이맘 때 사랑의 온도탑 수은주를 보면 2015년 79.5도였고, 2016년 82.0도였다. 다른 기간을 비교해 보아도 올해 수은주는 특히 꽁꽁 얼어붙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오는 31일까지 진행되는 캠페인 목표액을 채우지 못할 거란 가능성도 거론된다.

◆ 12월의 풍경 된 구세군…거리모금 줄어든 이유는?

구세군 자선냄비를 향한 시민들의 손길도 줄어들고 있다. 2016,17년 사용된 2015년 구세군 자선냄비 결산내역을 살펴보면, 총 모금액은 106억 여원으로 2014년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내역서'에 기재된 총 모금액 118억여 원보다 10억 이상 줄었다. 상세 모금 내역을 봐도 거리모금이 38억여 원에서 40억여 원으로 증가한 것 외에는 톨게이트, 후원금, 물품후원 모두 눈에 띄게 감소했다.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은 2017년 12월 31일 종료됐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 아직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 /김소희 기자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은 2017년 12월 31일 종료됐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 아직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 /김소희 기자

한국구세군 임효민 홍보부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구세군회관에서 <더팩트>와 만나 "기업모금이 증가해 전체 모금 액은 오를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거리모금이 줄어들었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거리모금 감소 원인으로 ▲경기 침체 ▲가짜 자선냄비 등장 ▲기부포비아 확산 등이 거론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2038명을 대상으로 한 '나눔 실태 및 인식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없다는 응답자 964명 가운데 기부하지 않은 이유로 '경제적 여유가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52.3%에 달했다. 임 부장은 "구세군 자선냄비는 서민들의 참여율이 높은 기부 행위다. 10원부터 단위가 시작되는 소액 기부 행위"라며 "여러 악재가 닥치고 경기 침체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보니 개인의 기부가 얼어붙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영학 사건, 일부 자선모금 단체의 기부금 유용 등도 '기부포비아'를 확신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0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딸의 치료비 명목으로 받은 기부금 12억 원을 외제차량 구매, 문신 비용 등으로 사용한 일이 알려지자 국민은 분노했다. 또 지난 8월 결손아동 돕기 단체인 새희망씨앗이 소외계층 후원 명목으로 2014년부터 기부받은 128억 원 중 2억 원만 실제 불우아동을 돕고 나머지는 직원들이 호화 관광, 고가 수입차, 아파트 구매 등으로 횡령한 일도 있었다.

임 부장은 "국민은 믿고 맡기는 식으로 기부를 한다"며 "서민, 중산층들이 안 쓰고 아껴서 보내준 후원금을 횡령하고 유용한 이영학 사건, 새희망씨앗 사건 등 때문에 기부 문화가 바뀔 거 같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기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들은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직장인 이슬기(28·여) 씨는 "언제부턴가 내가 낸 기부금이 실제로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진짜 신뢰할 수 있는 단체라고 느끼지 않는 이상 당분간 기부는 하지 않을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 기부금 걱정 없는 국제 모금기구?…주목할 건 '풍선 효과'

국내 기부단체에 모금액을 중단하는 대신 해외 기부단체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들도 있다. 직장인 변지수(31) 씨는 "지난해부터 유니세프에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며 "일부 단체지만 국내 모금단체의 횡령에 실망했다. 해외 단체는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기부금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왠지 모를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해외 기부단체의 개인 후원금은 2012년부터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유엔아동기금 유니세프가 공개한 유니세프한국위원회 결산 내역을 살펴보면, 2012년 832억여 원이던 '후원회원'들의 후원금은 2013년 988억여 원으로 증가했다. 2014년에는 개인기부금 명목으로 분류가 됐는데, 1059억여 원의 기부금이 개인 후원자를 통해 유니세프에 기부됐다. 2015~2016년 정기후원금 역시 각각 1127억, 1190억 원을 기록했다.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후원금액도 2012~2016년 상승 곡선을 나타냈다. 2012년 305억 원이던 후원금은 2013년 389억 원, 2014년 452억 원, 2015년 516억 원, 2016년 545억 원이다.

국내 기부 문화는 각종 이유로 얼어붙는 분위기지만, 해외 기부단체들의 기부금액은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유니세프 제공
국내 기부 문화는 각종 이유로 얼어붙는 분위기지만, 해외 기부단체들의 기부금액은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유니세프 제공

전문가들은 한쪽의 모금액이 감소하는 대신 다른 한쪽의 모금액이 증가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풍선 효과'라고 분석했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 비케이 안 소장은 <더팩트>에 "어느 한쪽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다른쪽으로 몰리는 현상은 기부 문화에도 나타난다"며 "그동안 개인 기부가 많이 이뤄졌는데, 이영학 사건 등으로 인해 개인 기부에 대해 신뢰를 잃은 이들은 다른 방향으로 기부를 할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코드'에 맞는 기구들이 될 것인데, 환경이나 동물애호 등이 한 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모금액 감소가 해외 기부단체 모금액 증가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안 소장은 "2017년은 그 어느 때보다 변수가 많은 해지만, '총량의 법칙을 무시할 수 없다"며 "일련의 사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부하겠다는 마음은 한결 같다. 한쪽이 밉더라도 다른 쪽에 사랑을 베풀고 싶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기부단체에 금액이 증가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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