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점령한 중국 유학생④] '따이공 알바' 中유학생, 면세품 불법유통 창구
입력: 2017.12.22 08:10 / 수정: 2017.12.22 10:15

2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면세점에서 국산 착압스타킹을 대량구매하고 있는 중국 관광객의 모습. /김소희 기자
2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면세점에서 국산 '착압스타킹'을 대량구매하고 있는 중국 관광객의 모습. /김소희 기자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중국 유학생의 수가 6만 명을 넘어서면서 대학가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일부 대학 인근에는 중국 간판이 넘쳐나고, 중국 유학생만을 위한 식당, 식음료점, 환전상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미니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학가 인근이 '중국화(中國化)'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팩트>는 중국 유학생들이 점령한 대학가의 변화와 이에 따른 명암을 취재했다. <편집자주>

[더팩트 | 을지로=김소희 기자] "구커 칭파이뚜이(顾客请排队)!"

21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면세점 10층. 한 매장 앞에 유독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 관광객은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면세점 직원은 유창한 중국어로 매장 앞에 모인 관광객들에게 "손님 줄을 서주세요"라고 외쳤다.

관광객들은 자기 차례가 되자 "박스"를 외쳤다. 단일 제품 구매가 아닌 대량으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들이 열띤 구매 욕구를 보인 상품은 다름아닌 국내 한 중소기업에서 생산하고 있는 '착압 스타킹'이었다. 베이징에서 왔다는 란란(25·여) 씨는 "친구들 부탁 때문에 대량 구매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란 씨는 이날 자그마치 200켤레의 스타킹을 구매했다.

이날 특정 상품을 눈에 띄게 대량구매하는 중국 관광객들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화장품·홍삼 등 중국 내 인기가 많은 제품이 판매되는 곳엔 어김없이 중국 관광객들이 넘실댔다. 그러나 면세점 매출을 늘려주는 이들이 모두 '평범한' 중국 관광객들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면세점 업계 등에 따르면 이들은 대체로 '유커(游客)'가 아닌 '따이공(代工)'으로 인식된다.

따이공은 본래 인터넷을 통해 선주문을 받고 한국에서 물건을 구매한 뒤 중국으로 전달하는 일종의 구매대행을 맡는 사람을 일컫는다. 요즘엔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전략적으로 물건을 사고 판다고 한다. 2014년 중국 정부가 따이공을 '밀수'로 규정하고 규제를 강화하자 중국 측 업자들이 택한 생존 전략이다.

착압스타킹 구매를 위해 줄을 선 중국 관광객의 모습. /김소희 기자
착압스타킹 구매를 위해 줄을 선 중국 관광객의 모습. /김소희 기자

특히 10억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애용하는 SNS채널인 '위챗'을 통한 따이공 아르바이트 제안은 빈번하게 이뤄진다. 또 중국내 한국정보 사이트에는 '개인 파트너를 구한다'는 아르바이트 모집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온다. 따이공 모집을 위해 "소개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글도 있다.

따이공 섭외 대상 1순위는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 유학생이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문지혜(32·가명) 씨도 '따이공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문 씨는 "얼마 전에 '위챗'으로 따이공으로 일해볼 생각 없냐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화장품만 대리 구매해주면 7만 원을 주겠다고 해서 솔깃했다"고 말했다. 문 씨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 상당수가 SNS를 통해 따이공 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모집된 중국 유학생 따이공들은 시내면세점에서 면세품을 구매하는 데 활용된다. 내국인은 공항 출국장에서 면세품을 인도받지만, 외국인일 경우 시내면세점에서 담배·주류를 제외한 한국산 물품을 구입하면 면세점에서 바로 건네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관세법은 면세품의 대리 구매, 재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이공을 통한 불법 유통 근절을 위해 시내면세점에서는 면세품 구매 고객의 항공권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지만, 항공권은 면세품을 사고 취소하면 그만이다.

이 때문에 비행기 표를 취소하는 일도 잦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T여행사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따이공들이 중국에서 판매할 수 없게 되면서 유학생을 동원한 면세품 구매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항공권을 취소하는 수법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외국인 면세품 구입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중국인 유학생에게 대리구매하게 한 수천만 원 상당의 면세 화장품을 중국으로 밀수출해온 중국인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중국인 일당이 대학교 주변에 마련한 창고형 사무실. /부산경찰청 제공
외국인 면세품 구입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중국인 유학생에게 대리구매하게 한 수천만 원 상당의 면세 화장품을 중국으로 밀수출해온 중국인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중국인 일당이 대학교 주변에 마련한 창고형 사무실. /부산경찰청 제공

지난 3월 감사원 조사 결과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시내면세점에서 면세품을 수령한 외국인 중 3회 이상 면세품을 구매하고 탑승권을 취소한 외국인은 8129명에 달했다. 이들이 구입한 면세품만 535억 원어치다. 7회 이상 구매한 사람은 1001명으로, 액수로는 219억 원이다. 이 중 180일 이상 출국하지 않고 면세품을 구매한 사람도 7322명으로 드러났다.

지난 4월 부산경찰청 관광경찰대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산 면세 화장품을 대리 구매하게 한 뒤 8000만 원 상당의 화장품을 중국으로 밀수출한 중국인 일당을 체포했다. 부산의 대학 2곳 인근에 창고형 사무실을 차린 뒤 중국인 유학생에게 일당을 주고 화장품을 대리 구매했다. 이 역시 시내면세점 규정을 악용해 면세품 구매 후 항공권을 취소하는 수법이 활용된 사례다.

특히 최근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심화되면서 한국산 화장품이 반입금지 물품 취급을 당하자 국내를 대상으로 한 따이공의 활동은 더욱 성행하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 면세점을 찾은 외국인 수는 106만 명으로 집계됐다. 1인당 구매금액은 654달러다. 지난해 7월 외국인 1인당 구매액 322달러에서 1년 사이 두 배가 늘어난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동원해 면세품을 구매한 따이공은 국내 상인들에게 물건을 되팔며 수익을 얻는다. 이 같은 면세품 불법 유통은 국내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비공식적 경로로 유통된 제품이 변질되거나 파손되면 브랜드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따이공은 국내 화장품을 면세점에서 구입해 국내 상인들에게 되파는 식으로 수익을 얻고 있다. /김소희 기자
따이공은 국내 화장품을 면세점에서 구입해 국내 상인들에게 되파는 식으로 수익을 얻고 있다. /김소희 기자

면세점 업계도 따이공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사드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국내 면세점의 매출을 견인하고 있는 따이공은 '필요악'이라는 인식이다. 면세점 구매액의 일부분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페이백(payback)' 제도를 고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22개 시내 면세점 사업자의 평균 매출 대비 송객수수료(여행사에 관광객 유치 대가로 지급하는 수수료) 비율은 2013년 7.3%에서 지난해 10.9%로 급증했다.

이 같은 '따이공 모시기'는 독이 됐다. 사드 제재 기간 따이공 유치를 위해 업체간 송객수수료 지불 경쟁이 벌어지면서 수수료 지불 규모가 커지게 됐다. 업계에서는 면세점이 올해 송객수수료로 쓴 비용만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내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 업계가 불황인 상황 속에서 따이공까지 오지 못하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따이공을 의식한 마케팅을 고려하는 것도 매출 때문"이라며 "국제 분위기를 비롯해 전반적인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따이공의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ks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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