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순의 길거리 사회학] '홍일점'에서 '청일점'의 시대로
  • 박순규 기자
  • 입력: 2017.12.19 05:00 / 수정: 2017.12.19 09:39

컴퓨터 교육 현장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부문에서 청일점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평균수명이 5~6년 더 길어 어디서나 필연적으로 여초현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픽사베이 컴퓨터 교육 현장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부문에서 청일점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평균수명이 5~6년 더 길어 어디서나 필연적으로 여초현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픽사베이

청일점을 지나면 '얹힌회 회원'?, 갈수록 '여초 현상' 심화

[더팩트 | 임태순 칼럼니스트] 구청에서 실시하는 컴퓨터 기초교육을 배우고 있다. 컴퓨터를 켤 줄도 모르는 완전 초보는 아니지만 컴퓨터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는 만큼 처음부터 배워보자는 심산이다. 16명이 정원인데 남자는 나와 할아버지 두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성이다.

남성들 속에 있는 여성 한 명을 홍일점(紅一點)이라고 하고 반대로 여성들 속에 끼여있는 남성 한 명을 청일점(靑一點)이라고 한다. 그러니 준 청일점이 된 셈이다. 할아버지가 결석하는 날에는 명실상부한 청일점이 된다. 돌이켜보니 나이가 들면서 이런 경험은 여러 번 있었다. 방송통신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여성이 다수였고 남성은 소수였다. 은평구청 평생학습관에서 실시하는 합창수업을 참관했을 때도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은 할머니, 아줌마 등 여성들이었고 남자들은 극소수 였다.

장노년층만 여초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젊은이들도 기업체 면접장에 가면 청일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집단 면접에 들어가니 4명은 여자이고 남자는 자신뿐이었다는 글을 쉬 볼 수 있다./임세준 기자
장노년층만 '여초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젊은이들도 기업체 면접장에 가면 청일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집단 면접에 들어가니 4명은 여자이고 남자는 자신뿐이었다는 글을 쉬 볼 수 있다./임세준 기자

베이비 부머 이상의 세대에서 배움의 장에 여성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을 책임지느라 여성들은 뭔가를 배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만 해도 남성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접하게 됐으나 주부들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자식들 교육시키고 이제 여유를 찾은 어머니들은 또 음악, 미술, 양재, 바리스타 등 각종 취미교육에도 열성적이다.

장노년층만 그런 게 아니다. 젊은이들도 기업체 면접장에 가면 청일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집단 면접에 들어가니 4명은 여자이고 남자는 자신뿐이었고, 게다가 면접위원들은 여성들에게만 질문을 했다는 글을 쉬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청일점 현상은 교직 등 이미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에도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다.

베이비 부머 세대는 홍일점의 시대였다. 남아선호사상에 따라 남자들이 교육을 더 받고 직장생활도 온통 남성 일색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여성들도 결혼을 하면 퇴사해 가정에 들어앉았다. 대학에 다닐 때 우리 과에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홍일점인데다 행동도 발라 인기짱이었다. 그녀는 1년간 커피, 점심이 공짜였다고 털어놓았다. 다방이나 식당에 가면 남학생들이 돈을 냈기 때문이다.

홍일점에 익숙했던 필자로선 청일점 상황에 처하는 게 좀 낯설고 어색하다. 중고교 시절 남자 여자로 나뉘어 공부한데다 사회생활도 남성중심의 마초(macho)문화 속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아직 함께 배우는 동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지 못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정도다.

시니어 세대들에게 청일점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평균수명이 5~6년 더 길어 어디서나 필연적으로 여초현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 나이가 들면 여자에게 수염이 난다고 한다. 여성에게 남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고 남성에겐 반대현상이 일어나 여성이 남성화되고 남성은 여성화돼 여성들의 대외활동이 활발해진다. 이래 저래 남자는 소수가 된다.

몇 년 전 책에서 읽은 ‘얹힌회 회원’이라는 말이 기억이 난다. 퇴직하고 집에 있는 남편은 아내를 바라보고 지내는데 아내는 연일 약속이다 뭐다 해서 바쁘다. 어느 날 아내에게 비용을 부담할 테니 모임에 끼워달라고 제안한다. 그래서 차값을 내는 조건으로 아내 동창모임의 준회원으로 얹혀 여기저기 따라다니며 재미있게 지낸다는 내용이다.

노후에는 청일점이 되고, '얹힌회 회원'이 되는 게 행복의 지름길인지 모르겠다.

the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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